정동연 박사과정 사회교육과

최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우리 역사를 소재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관련 서적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다음 달 치러질 수능에서는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고, 내년부터는 학교 일선 현장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도입된다. 식견이 일천하지만 현직 교사인 동시에 대학원생인 필자에게 최근의 이러한 역사 열풍은 일면 반갑기도 하지만 우려되는 면도 없지 않다.

먼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자국사인 한국사에 편중되면서 세계사는 소외됐다.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운 학생은 일부에 불과하고, 세계사를 수능 과목으로 선택하는 학생은 그 중에서 또 다시 일부일 뿐이다. 역사 공부는 나와 우리를 돌아보는 것만큼 타자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는 과거사가 현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다. 일본은 여전히 독도에 대한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센가쿠 열도, 난사 군도 등에서도 각국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고등학교에 ‘동아시아사’라는 선택 과목이 개설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때로는 자국사에 대한 강조가 배타적 태도로 흐르기도 한다. 지난 5월 어느 걸그룹 멤버들은 안중근을 모른 것 때문에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사과해야 했다. 물론 무지가 미덕일 수는 없겠지만 필지(必知)를 강요하는 것 또한 일종의 폭력이다. 하물며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를 ‘강요’당하며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현재 중·고등학교에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의 학생들이 꽤 많다. 이들을 무조건 비난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역사가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국가 권력이 역사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더욱 큰 문제다. 오늘날 역사 교과서를 검정 체제로 발행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인데, 이는 역사학이 기본적으로 해석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것은 특정 방향으로의 단일한 역사 해석을 강요함으로써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행위다. 더욱이 이번 파동은 역사 교과서를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는데, 이제는 각종 권력이 더욱 노골적으로 역사 서술의 칼자루를 쥐려할 것이다.

광복절을 즈음해 벌어지는 건국절 논쟁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올해 정부는 8월 15일을 ‘광복절이면서도 건국절’이라는 식으로 표현해 둘을 등치시켰다. 작년에는 2015 개정교육과정 개발진이 내놓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일방적으로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한 바 있다. 물론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을 금기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어떤 논의와 소통 없는 일방적인 역사 수정은 옳지 않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지금도 계속해서 돌고 있고,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과거의 역사가 돼 나름의 평가를 받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소유’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유’해야 할 것이 아닐까? 역사를 생산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 모두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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