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주용 강사 국악과

흔히 10월을 문화의 달이라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 건의 음악회가 이곳저곳에서 열리며, 각종 국내외 음악축제 또한 10월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음악인들 사이에서 10월을 ‘황금의 달’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이렇다 할 고정된 직장이 없는 프리랜서들에게 공연이라는 소중한 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연이 많은 만큼 특정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 또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클래식, 오페라, 전통국악, 창작국악, 현대음악,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 영미권 팝, K-Pop, 에스노팝, 월드비트, 대중가요, 세미클래식, 팝페라 등 우리가 정의하는 음악의 영역과 종류는 전 지구의 인종, 언어, 문화 그리고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근래 필자는 어느 한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사회를 맡게 됐다. 미국, 프랑스, 헝가리, 일본, 한국의 음악을 한 무대에 소개하는 자리였다. 애초에 2시간으로 계획됐던 이 공연은 관중들의 열띤 환호 속에서 3시간을 훨씬 넘겨 진행됐다. 앙코르를 연이어 외치는 관객, 이에 화답하는 연주자들! 한국의 월드뮤직 공연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무대 뒤에서 즉흥멘트를 구상하며 생각했다. 관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공연에 쏟아진 예상 밖의 뜨거운 반응에 ‘내가 아직도 한국 청중의 기호를 파악하지 못했던가!’ 싶어서 조금 창피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일까?

월드뮤직! 이는 인간이 만드는 세상의 모든 소리, 즉 세계인의 음악을 이른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그럴싸하나 너무 광범위해 막상 어떤 음악을 월드뮤직의 범주에 넣어야 할 지 난감한 문제가 생긴다. 한때는 ‘월드뮤직’을 ‘비 서구(West and the Rest)의 모든 음악’이라 정의했다. 이런 정의는 지극히 서양의 제국주의적 사고를 반영한 결과인 듯 보인다. 실제로 월드뮤직은 1980년대 영국의 한 음반레이블에서 클래식과 영미권 팝음악을 제외한 나머지 음악 장르를 분류하면서 우연히 만들어진 상업적 마케팅 용어다. 그래선지 월드뮤직이란 용어가 귀에 거슬릴 때가 많다. 서양의 잣대로 봤을 때 ‘나머지’란 ‘이국적’ 향취가 듬뿍 풍기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세계 공통어’란 명제 또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음악이 생성되는 특정 지역의 언어나 문화적 맥락을 간과하고, 음악을 단순히 만국에 통용될 수 있는 ‘소리’로만 접하려 할 때 청자는 종종 거부반응 내지는 불쾌함을 느낀다. 낯설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익숙함에 안락함을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우리는 서구의 음악에서 안락함을 찾곤 한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전통을 해체해 놨다.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는 우리 전통의 노래보다 서양의 노래를 부르고 배우며 자라고,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배운다. 그래선지 서양음악은 우리에게 마치 모국어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은 미국의 재즈, 프랑스의 에스노팝, 헝가리의 집시음악, 일본의 세미클래식, 한국의 퓨전음악으로 이뤄졌다. 이 음악 장르들은 모두 우리가 자랄 때 의도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어디선가 들어왔던 친숙한 것들이다. 이날 공연이 부담 없이 관객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친숙하지 않은 한국 전통음악 또는 아프리카의 율루레이션을 들었더라도 과연 관객은 환호했을까?

음악은 문화다. 클릭 한 번으로 세계 각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나! 대학의 지성인으로서 관심을 갖고 문화의 다양성을 바라보길,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거부감 없이 흡수하길 바란다. 오늘은 저 멀리 있는 남미의 에콰도르로 ‘월드 뮤직’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유투브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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