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개교 이래 서울대는 우리나라가 걸어온 고난과 영광의 발자취와 고스란히 함께해 왔다. 전쟁의 참화와 독재정권의 압제 속에서도 서울대는 인재양성과 지식창조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분투했다. 서울대는 실로 지성의 요람일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을 이끈 행동과 실천의 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땅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이러한 위상은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도 수반한다. 우리 사회는 서울대가 다시 한 번 사회적 책무를 다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서울대는 연구역량과 교육역량에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앞에 놓인 길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2011년 국립대학법인화를 실시한 이후 우리 대학은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이제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나, 여전히 대학 자율성과 사회적 책무성 간 균형을 찾고 국립대학법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연구역량을 확보하는 것 역시 지금까지의 위상에만 안주한다면 오히려 퇴보할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서울대는 국립대학법인으로서의 장점을 활용해 학문 연구에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성과주의에 매몰돼 연구 윤리성을 해쳤던 과거의 오류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교육역량 면에서도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 사회가 요청하는 인재상은 개인의 성과와 업적만을 자랑하는 인재가 아니라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인재다.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도전에 응수하기 위해 무엇보다 대학 구성원 전체가 자신에게 맡겨진 몫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플라톤은 각 계층이 각자 ‘자기 일’을 할 때 가장 훌륭한 국가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이 원칙을 문자 그대로 오늘날에 적용하긴 곤란하지만 그 취지를 되살려 우리 대학에 적용해봄직하다. 학생·교수·직원이 자기 일을 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사고에 얽매여 구태의연한 행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다른 역할을 하는 이들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최근 시흥캠퍼스 이전 문제와 관련해 대학본부가 학내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소홀히 해온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그러나 지난달 초 학내 구성원, 특히 학생사회의 주도로 ‘인권 가이드라인’의 초안이 마련된 것은 학내 소통의 좋은 사례다.

커다란 성취엔 늘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 선행한다. 우리 대학이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학내 구성원은 모두 새로운 각오로 서울대의 비전과 정체성을 세우는 노력에 동참해,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을 성실하고 묵묵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