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미루고 미루다 결국 10월 중순이 다 돼서야 여름철 쓰던 선풍기를 정리했다. 선풍기를 정리하며 나는 쌀쌀한 아침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에 와서는 이젠 꿈만 같은 그 무더웠던 올여름을 회상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여름에 방문한 선풍기가 많았던 한 어르신의 단칸방이 떠올랐다.

그 방을 처음 간 건 폭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초여름, 봉사활동으로 사회복지사 분과 함께 독거노인 방문을 하던 때였다. 언덕을 오르고 좁은 길을 빠져나온 그곳에 보인 것은 어르신께서 키우시는 듯한 파릇파릇한 상추가 심어져 있는 작은 화분, 그리고 그 바로 옆 녹슨 철문이 우리를 맞이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복지관에서 왔다고 설명드릴 때만 해도 응해주실까 걱정했지만 어르신께선 삐걱대는 문을 힘겹게 열고 나와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문을 통과한 우리는 경사가 급한 계단을 내려가 지하에 있는 어두컴컴한 어르신 방으로 갔다.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어르신은 여기까지 오느라고 덥지 않았냐며 좁은 방에 네 대나 있는 선풍기를 모두 틀어주셨고 나는 그런 어르신의 배려가 우리를 환영해주는 것 같아 기뻤다.

우리는 어르신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어르신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계를 잘 만져서 젊어서는 기계공을 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기계를 주워 와서 고쳐 쓰다 보니 선풍기도 많아졌다는 것 등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우리는 그 방을 뒤로 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어르신 댁에 방문했다. 그때마다 여러 이야기를 들었고 그를 통해 어르신의 사정을 하나하나를 알아가며 나는 어르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다시 찾아간 철문 앞에서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르신이 집을 비우셨나하고 떠나려던 찰나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르신을 불렀고 그러자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른 것이었다. 어르신은 다소 힘없는 목소리로 우리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오셨다. 그런 어르신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어르신과 대화를 시도해봤으나 실패하고 결국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발길을 돌릴 때 눈에 들어온 화분에 심어진 상추는 시들시들해져 예전과 같은 파릇파릇한 빛깔을 잃고 있었다.

왜 어르신께서 철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르신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어르신 맘 속 문은 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수차례 방문하며 어르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느낀 것도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단순히 어르신에 대한 정보만을 알면 어르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터인데 나는 내 마음 속 문을 열지 않고 어르신 마음 속 문의 초인종만 계속 눌러댄 것이다.

올여름 사용했던 선풍기는 상자 속에 넣어 정리했지만 선풍기가 많았던 그 방에 남겨 둔 무거운 짐은 아직도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언젠가 어르신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그 방에 남겨둔 짐을 가져와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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