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대(大) 자부터 뭉게버려. 대학은 빅맥이 아니야”
“대학의 대(大) 자부터 뭉게버려. 대학은 빅맥이 아니야”
  • 이승엽 편집장
  • 승인 2016.10.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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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70주년 특별 인터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평론가, 교수, 언론인, 문화부 장관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이 시대의 석학 이어령. 어느 한 직함에 가둘 수 없는 그가 본 서울대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 소장으로 재직 중인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서울대 70년을 되돌아봤다.

 

서울대의 학풍은 강한 자의식과 아카데미즘

▹오늘 이렇게 찾아뵌 것은 서울대가 개교 70주년을 맞이해서 입니다. 선생님 재학 시절 서울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내가 입학한 것이 단기로 4285년이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52학번 입학생이었지. 그때는 학번도 없었어. 학교 건물도 6.25전쟁 통에 부산 대신동에 있었지. 언덕 위에 가건물인데 우리는 그걸 ‘마의 산’, 카프카의 ‘성’이라고 불렀지. 쇠 철망에 플라스틱을 대서 반투명 유리처럼 보이는 벽에, 일본식 우동가게에 있는 탁자같이 생긴 나무판자 있잖아, 그거 놓고 강의 들었어.

난 노트 없이 산 사람이라 그 판자에다가 수업 들으면서 낙서를 했거든. 판자를 보면 거기 앉았던 학생들이 적어놓은 불어로 된 보들레르의 시, 라틴어로 쓴 격언 그리고 각자 인생론, 전쟁 비판, 허무주의 선언, 별난 글에다가 이과 애들이 무슨 수식을 써놓은 것도 있었지.

서울 수복 후에 동숭동으로 돌아왔지만 그것 역시 미군 부대가 사용했던 자리라 분위기는 가교사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어. 대학 본부이자 문리대 건물 자리에 지금 남아 있는 추억은 마로니에 나무뿐이지.

 

▹당시 학교 분위기는 어땠나요.

오늘날 상식의 잣대로 보면 전무후무한 일들이 일어날 정도로, 보편적 대학의 분위기나 학풍이라기보다 전시(戰時) 중 아주 ‘특이한’ 시절의 ‘특이한’ 서울대였기에 낭만과 괴짜들로 가득했지. 고등학교 때 전쟁이 나서 말만 서울대 신입생이지, 니나 내나 다 고등학교 제대로 못 다녔어. 학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있던 건 프라이드, 시대의식, 자의식뿐이었지. 자의식이란 말이 참 좋은 말이야.

그 자의식이라는 것이 일종의 대학생이나 직업으로서의 프라이드가 아니라 순수 학문의 세계, 아카데미즘의 프라이드였지. 신설대학이고 국립대학이지만 선배나 교수들로부터 가장 처음 배운 게 아카데미즘의 프라이드야. 이게 왜 중요하냐면 내가 오늘처럼 길을 걸어온 것도 서울대 아니었으면 나도 정치하고 별거 다했을 거야. 정치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다 무시했었어. 옆에 친구가 읽는 책 쓱 보고, 씩 웃으면서 ‘뭐 이런 걸 읽고 있어’ 한다든지, 곧 죽어도 영어나 불어로 된 원서 가지고 다니는 그런 것 말이야. 내가 22살 때 「우상의 파괴」 같은 글을 쓰게 된 것도 다 그거 때문이야. 내가 한 게 아니고 학풍이나 그때의 참 기고만장한, 근거도 없는 의식이나 마음만은 정말 세계 어디 갖다놓아도 되는 허황될 정도의 패기였지.

곧 죽어도 로맨틱한 대학생, 굶어도 기고만장한 자의식과 아카데미즘, 남들과 다르게 살려는 투철한 의식, 소위 근대적 자아를 가진 지식인의 상이라는 것이 전란 속에서도 있었어. 그런 분위기가 도서관이나 강의실에서 정말 공부만 하는 개성 있는 천재들, 괴짜들 사이를 떠돌아다닌 거였지. 참 최고로 가난하면서도 가난조차, 전쟁조차 우릴 지배하지 못했던, 총구조차 감히 댈 수 없는 그 힘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가장 행복하게 살았지.

그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똑똑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우리같이 못난 사람들만 살아남았는데, 그래서 이렇게 됐나 생각이 들어. 그 사람들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난 어떻게 됐을까.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 로봇이 될 수 없는 괴짜가 되라

▹그런 학풍을 서울대 고유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 강한 자의식이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지 않나요.

단적인 예로 서울 수복 후에 가짜 학생인지 진짜 학생인지 구별하려고 학생증을 만들어야 하니까 요즘 말하는 ‘인증샷’ 있잖아, 그걸 찍어야 됐었어. 그 당시 사진사라는 게 흔치 않았으니까 대학들 돌아다니는 순회 사진사라는 게 있었어. 이 사람이 한 말 중에 유명한 말이 있어. “서울대 놈들은 사진을 찍어도 꼭 독사진을 찍는다”고. 고대, 연대는 그룹 지어서 스크럼 짜고 브이 이러는데 말야. 나도 교정에서 그룹 사진 찍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 창피해서 남이 보지 않을 때 몇 장 찍어 집에 보냈어. 여럿이 하는 걸 유치하다고 생각했었지.

서울대가 외부에서 볼 때는 굉장한 지적 공동체 같지만, 사립이 아니고 국립이라 자기 정체성은 희박하니 결국 모래알처럼 개인으로 흩어져. 하지만 개성 강하고, 배타적이고, 집단적이지 않고, 자기가 그냥 자기로서 서는 지적 오만과 지적 자존심이 강한 ‘서울대 기질’이 다소 오늘날 사회에 맞지 않고 구식이더라도, 학풍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 흔한 직업학교처럼 되어가는 오늘의 아카데미즘에 필요하다고 봐.

지금은 캠퍼스도 변하고, 내가 다녔던 문리대도 사라졌지만 가끔 서울대에 가보면 말야,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마마자국처럼, 분명히 남아있어. 다른 대학에는 없는 개성이.

 

▹당장 취업하고, 결혼하기도 힘든 사회에서 방금 말씀하신 그 서울대 학생의 개성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일본에 ‘동로보군’이라는 것이 있어. 동경대 로봇 군의 줄임말인데, 동경대에서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지. 그 로봇에 데이터를 다 집어넣어서 대학교 입학시험을 풀게 했는데, 동경대와 6개 대학만 떨어지고 어느 대학시험을 봐도 붙었어.

그러니까 허망하잖아. 수능 시험 볼 때까지 애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공부를 해. 앞으로 그런 인공지능 칩을 웨어러블처럼 몸에 이식하면 시험 감독은 어떻게 할 거야. 그 시대가 오면 서울대 시험 치고 들어가는 거 로봇이 다 할 거야. 그런 미래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지금 인간이 무엇을 해야 가장 귀한 것인가. 절대 로봇이 못하는 영역은 뭔가. 그것은 지능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인공지능에 시 하나 써보라고 해봐. 절대 못 써. 정말 초월적인 사고, 상상력, 메타포, 관계를 느끼는 것. 이건 로봇이 못해.

그러니 서울대에서는 지금 얘기한 절대 측정불가능한, 돈키호테적인 꿈을 좇는, 햄릿처럼 사색하는 그런 타입의 괴짜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보통 대학생하고 달랐으면 좋겠어. 아까 내가 얘기한 프라이드를 깊이 새겨야 하는 것은 가장 맑은 영혼에서 지적 자존심, 자기 존대심이 생기기 때문이야.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요새 우리나라 노벨상 왜 못 타느냐 하잖아. 나는 서울대에서 “노벨상 그런 거 뭐하러 받나. 먼 데까지 여행할 시간 없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

 

서울대 학생이면 항의도 지적이고 색다르게

▹현재 서울대 얘기로 가볼까요. 지금 서울대는 시흥캠퍼스가 가장 큰 이슈입니다. 학생과 본부의 소통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시흥캠퍼스 관련해서 자세하게는 모르니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어. 그렇지만 학교의 주인은 배우는 사람에 있어. 학생들이 자기 의사 표현하고, 학교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고, 이게 세계적 추세야. 상향식(bottom-up)이 아니라 거꾸로 하향식(top-down)으로 뷰로크래틱하게 주인이 결정되면 그건 학생이 소외되는 거지. 학생이 있어야 학교지. 가르치는 게 먼저냐 배우는 게 먼저냐. 이 둘은 상호적이긴 하지만 논어에 뭐라고 돼 있어. 학이시습(學而時習)이잖아. 학(學)이야 학. 배우는 거야.

지금 주목받는 인공지능을 봐. 딥러닝이라고 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시스템이야. 그래서 그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잖아? 지금 인공지능도 그런데 하물며 인간이라고 다르겠어. 서울대도 딥러닝이 돼야 해. 딥티칭 말고.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자기 신념이 꼭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자기 신념이 절대 진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가르쳐주는 사람이 돼버린 거지. 배우는 사람은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새로 알아가야 해.

그리고 적어도 서울대의 프라이드를 가진 학생이라면 물론 물리적 행위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이제는 항의하는 방식도 점거와 다르게 마지막까지 유머도 있고, 지적 풍자도 있으면서 대화하는 방식도 색다른 방식으로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미대 학생들이 학교 풍자만화를 학교 들어오는 도로의 가로수에 쫙 붙인다든지, 음대 학생들이 총장실 앞에서 아름다운 음악, 칸타타를 매일 밤 연주한다든가, 건축학과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은 골판지로 바벨탑같이 시위탑을 만들던가 말이지.

 

70년이라는 매듭에서 학생 스스로 학교의 정체성 세워야

▹2011년 법인화 논란이 있었을 때 본부 앞 총장잔디에서 ‘본부스탁’이라는 록 페스티벌을 열었던 적이 있어요.

그랬군. 역시 내 후배들이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내가 유신 시절 특파원 자격으로 프랑스 낭테르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 낭테르 대학 별명이 혁명대학이야. 아주 과격한 애들, 좌파가 많은 곳이거든. 낭테르 대학 총장을 만나러 총장실에 들어갔는데 방안을 학생들이 욕으로 아주 도배를 해놨더라고. 저거 왜 안 떼냐고 총장한테 물어보니까 그 총장이 “나날이 말이 과격해져서 떼어버리면 더 심한 욕이 붙는다”더라고. 내가 그거 보고 ‘이 총장 대단하구나. 학생도 대단하지만, 총장도 대단하구나.’ 이렇게 생각했지.

아니면 백남준처럼 퍼포먼스를 하던가. 1998년에 백남준이 클린턴 대통령 만났을 때 CNN 생방송 중이었는데 바지가 벗겨진 거 있잖아. 그거 늙어서 실수한 거 아니야. 계획적으로 한 거지.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알몸이 되니까 사람들이 엄청 놀랐잖아. 참 재밌는 친구였는데 어쩌자고 똑똑한 사람들은 일찍 떠나는가.

▹마지막으로 개교 70주년을 맞은 모교에 당부의 말씀 부탁드릴게요.

흔히 럭키 세븐이라고 하잖아. 무지개부터 월화수목금토일, 도레미파솔라시까지. 불교나 인도, 유럽 문화권에서는 7을 좋은 것으로 봐. 그런데 중요한 것은 7이 바로 꼬부라진 수, 매듭, 다시 말해서 절(節)이라는 거야. 인간은 약한 존재여서 매일 일하며 살 수 없으니 중간에 잠시 숨을 돌리면서 재정비하는 절이 있는 거지.

내 부탁하건대 50년도, 100년도 아닌 그 한가운데 반환점인 70주년을 맞이해서 서울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 국립대학 법인이라는 것은 사립대학하고 달라서 주인이 없어. 외국에서는 대학이 신학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지역 시민들이 손수 설립한 경우도 많은데, 서울대는 경성제대 시절부터 따져보면 참 자기 아이덴티티가 애매하고 부족해.

70주년을 계기로 그냥 떠들썩하고 돈 쓰는 일 말고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학교를 바꿔봐. 서울대 캠퍼스가 적어도 살벌한 취업공장이나 수용소 같은 이미지는 없어야지. 간판, 교통 신호는 미대 학생들이 색칠하고 꾸미고, 오후만 되면 음대 애들이 곳곳에서 음악회를 열고, 인문대 애들이 건물 이름, 강의실 네이밍해서 “학생들이 캠퍼스 싹 바꿔놨네” 이런 이야기 나오게 해야지. 또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 있잖아. 식당이나 강당. 이런 곳에 서울대 출신 중에 정말 존경받는 사람을 학생들이 직접 선정해서 초상화 걸어놓는 일부터 시작해. 나 같은 사람 말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 중에 정말 서울대를 대표할만한 그런 사람들 말이야.

그리고 70주년이면 기념식 축사 같은 거 하잖아. 그거 학생들이 원하는 사람 불러. 쓸데없는 사람들 부르지 말고. 입학식이나 졸업식도. 합격통지서에 그거 투표지를 넣어. 학생들이 강연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내가 서울대 몇 회 졸업식에서 강연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명예가 되는. 그렇게 지식인 파워, 계보가 생겨야지. 그게 대학이야.

그런 대학을 만들려면 대학의 대(大) 자부터 뭉게버려. 대학은 빅맥이 아니야. 소학부터 시작해.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나 땅만 보는 개미가 아니라 눈은 땅을 보고 꽁지는 하늘을 보고 난다는 전설의 새 메롭스라고 했던가. 그렇게 나는 거야.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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