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대학가의 목소리, 함께 키워나갈 수 있을까
분노한 대학가의 목소리, 함께 키워나갈 수 있을까
  • 이지윤 기자
  • 승인 2016.11.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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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대학사회의 움직임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면서 들끓어 오른 국민적 분노는 이후 대학가, 종교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시국선언의 불꽃으로 번져갔다. 지난달 29일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 행사에서 경찰 추산 1만 2천여 명, 주최 추산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선 각 대학 총학생회의 깃발 아래 모인 대학생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대학가의 분노

최순실 자녀 정유라의 입학·학사관리 특혜 의혹을 제기해 총장 사퇴까지 이끌어낸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6일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후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고, ‘청년하다’의 전국시국선언지도에 따르면 5일 현재 108개 대학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세월호 참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국면에서 일부 대학의 시국선언이 이뤄지긴 했으나 전국적으로 100여 곳 넘게 그 흐름이 확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우리의 역사에서 가졌던 의미는 작지 않다.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의 흐름 속에서 이뤄진 대학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직선제 개헌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끌어냈다. 서울대는 지난달 28일 시국선언을 통해 “1987년 이후 또 한 번의 역사적 순간”인 이 시국에서 “국민을 기만하고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처럼 대학가의 시국선언문은 공통적으로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적 없는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은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의 가치와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3일 서울대 시국대회에서 한 발언자는 현 사태를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닌 정의와 불의, 정상과 비정상의 싸움”이라고 규정하며 “역사의 순간에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시국선언이 진행되기도 했다. 한국외대는 지난달 28일 시국선언문을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10개 언어로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31일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시굿선언’을 열어 굿판을 벌이고 예술인으로서 불의에 항거하겠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같은 계열의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 뜻을 모아 전국 단위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신학생시국연석회의’는 성경일화를 끌어와 “이제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신공양 사교의 무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신전을 폐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냈다. 2일 전국의 17개 대학 사회과학대학이 모여 ‘전국대학 사회과학도 합동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3일엔 전국 11개 교육대학과 22개 사범대학이 참여한 시국선언 성명이 있었다. 이들은 “아이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지켜낼 책임이 있는 예비교사”로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눈감고 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국선언에서 드러난 열기가 집회참여로 고스란히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청계광장에서 있었던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 행사에는 각 대학 총학생회의 주도로 많은 학생이 참여했다. 서울대에서도 총학생회 추산 400여 명의 학생이 이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소비자아동학부·12)은 “과거 세월호 추모제 때보다 200여 명 이상 더 참여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 참가자는 “세월호 추모제 때도 (학내 참가자가)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촛불행사에 비하면 게임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학생들의 높아진 시위 참여를 증언했다.

시국선언을 둘러싼 학생사회의 불협화음

시국선언의 움직임이 전국 대학가로 번지면서 학생사회 내부에서 몇 가지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려대에선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총학생회장단의 탄핵안이 발의됐다. 총학생회 이름으로 발표된 시국선언문에 전 통합진보당 세력을 비롯한 각종 ‘운동권’ 단체의 이름이 병기됐고,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는 문구가 특정한 정치적 의도에 따라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 부산대에서도 총학생회가 민중연합당 등의 단체와 함께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다. 이들은 부산대 총학생회가 ‘정치색을 띤 외부단체’와 함께 해 시국선언의 의미를 퇴색시켰다고 비판했다. 청년 미디어 프로젝트팀 ‘청춘씨:발아’에서 활동한 대학 전문블로거 하이네(필명) 씨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학생회와 학생들 사이에 거버넌스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고 분석했다. 스스로를 학생들의 ‘대의기구’라고 생각하는 학생회와 학생회를 자신들의 ‘대리기구’라고 생각하는 학생 간의 입장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국선언문 발표과정에 학생회와 학생들 간 충분한 사전협의가 부재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편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시국선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 인제대 총학생회는 “학생회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시국선언을 진행하지 않았고, 울산대도 “시국선언 진행이 모든 학우의 의견이 아닐 수 있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결국 인제대와 울산대에선 학생회가 아닌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자발적 연서명을 통해 시국선언이 이뤄졌다. 배재대는 400명이 넘는 학생이 서명을 통해 총학생회에 시국선언을 요청했으나 총학생회는 정치적 중립 훼손을 문제 삼아 이를 거절했다. 이에 배재대 역시 총학생회 없이 학생들의 연서명을 통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겠다며 현재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일부 대학에서 학생회가 학생들의 요구를 검토조차 하지 않고 회피하는 현상에 대해, 대학서열화에 따른 지역 대학 활동의 위축문제가 시국선언의 확산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하이네 씨는 “지역 거점 국립대학인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및 각 교육대학과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이 시국선언에 빠르게 참여한 반면, 이외의 지역 대학들은 학생운동의 붕괴와 학생회 행정능력의 저하로 학생회가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대학 간의 온도차가 존재했음을 설명했다. 또한 지역 대학 학생들 사이에서 “지방대인 우리가 해서 뭐 하냐”는 식의 자조적 분위기도 감지됐다. 페이스북 페이지 ‘울산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엔 “평소 정치사회면 기사 하나 안 읽다가 명문대가 시국선언 하니까 갑자기 정치병에 걸렸다”며 “시국선언은 다른 대학들이 훨씬 더 잘해줄 것”이니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각지에서 모인 대학 학생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대학 안의 메아리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학생사회 내부의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전국 100여 개가 넘는 대학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활발한 흐름 속에서 각 대학 차원의 개별적 행동을 넘어 연합체를 구성해 공통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지난달 30일 전국 대학 학생회 30여 곳과 ‘416대학생연대’ ‘청년하다’ 등 학생 단체가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를 결성했다. 이들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각 대학별 시국선언의 흐름을 전국 단위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5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수도권 지역 전국 동시다발 대학생 시국대회가 있고 민중총궐기가 개최되는 12일에는 민중총궐기 사전행사로 전국 대학생들이 모여 청년총궐기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수도권대학 동시다발 시위 TF’의 활동도 주목된다. TF 결성엔 지난달 30일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한 글이 기폭제가 됐다. 작성자는 광화문이나 종로일대에 집결해 청와대를 향하기보다는 강남, 신촌, 여의도 등 번화가에서 낮 시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에 공감한 학생들이 쪽지를 통해 연락을 시작해 초기 6명이 모였고, SNS 홍보를 통해 모집을 계속해나가 ‘수도권대학 동시다발 시위 TF’가 꾸려졌다. 이들은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와의 협력을 모색하며 활동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지며 대학가에선 시국선언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학생들은 ‘민주적 주권자’로서 시위에 참여해 정권 퇴진을 외쳤다. 대학 간 연합체를 구성해 개별 대학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 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이네 씨는 “선언 이후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며 대학이 “학내나 인근 지역에서 집회를 계속하며 시민사회와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일회적 ‘선언’을 넘어서 시민사회와의 연계를 통한 꾸준한 ‘행동’을 통해 움직임을 한층 더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2일 있을 민중총궐기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에 속한 전국의 대학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의 목소리가 대학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사회와 결합해 유의미한 정국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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