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관 교수 (경제학부)

거리엔 음식점, 커피숍, PC방, 노래방, 당구장, 미용실, 약국, 여행사 등 수많은 간판이 널려 있다. 내걸린 간판은 몇 년이나 갈까. 여기서는 행정자치부가 보유한 자영업 인허가 전수 자료를 이용해 지난 15년간 우리나라 자영업 폐업률 실태를 분석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경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둔화된 성장, 제조업 고용 감소, 인구 고령화, 베이비부머의 은퇴 등으로 노동시장이 변하는 와중에 경험도 없이 창업하는 생계형 자영업자가 늘었다. 남녀 불문하고 50대와 60대의 자영업 창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40대 여성의 창업도 눈에 띈다. 결혼과 육아로 직장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기 어려워 자영업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자영업 비중은 2013년 기준 OECD 평균 15%에 비해 27%로 매우 높다.

2000년대 초반 감소세를 보이던 음식점 창업은 2008년을 반환점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기불황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치킨 집, 커피숍 등을 차린 탓이다. 쉽게 차리면 쉽게 망한다. 경험 없이 자영업에 뛰어 들면 망할 위험은 유경험자에 비해 13%나 높아진다. 창업 후 3년, 5년 이내 망한 업체 비율인 3년 폐업률, 5년 폐업률이 33%, 50%로 새로 생긴 음식점은 셋 중 하나가 3년 내 망하고 둘 중 하나가 5년 내 망한다.

3년, 5년 폐업률은 PC방이 67%, 84%로 특히 높다. PC방 간판을 내걸면 3년 내 셋 중 둘이 망하고 5년 내 예닐곱 중 대여섯이 망한다.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게임 및 영화감상이 가능해짐에 따라 PC방과 비디오방은 빠르게 문을 닫았다. 출판·인쇄업도 3년, 5년 폐업률이 54%, 73%로 아주 높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한 탓이다. 병원, 한의원, 골프 연습장은 폐업률이 낮으나 누구나 쉽게 차릴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폐업신고는 영업이 엉망이 된 뒤 취하는 최종 수단임을 감안하면 자영업자의 폐업 현실은 통계 수치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

저성장, 고용 없는 성장, 불안정한 고용,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준비 안 된 은퇴, 노후를 책임져주지 못하는 정부 등이 수많은 생계형 자영업자를 양산했고 이는 거리마다 빽빽한 간판으로 이어졌다. 내걸린 간판에 가족의 생계를 의지하는 자영업 종사자, 일하는 사람 네 명 중 한 명꼴로 우리 고용의 27%를 차지하는 자영업 종사자, 우리 가족이자 이웃인 570만 자영업 종사자의 운명이 너무나 위태롭게 빌딩 모퉁이 간판에 매달려 있다. 태풍이 불지 않아도 이들 간판 중 절반은 내건 지 5년 내 날아간다. 자영업자 문제는 자영업 자체만으로 해결책을 만들기 어렵다. 정부의 종합적인 고용 대책이 시급한데 지금 우리 정부는 무얼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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