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용 박사과정 (보건대학원)

물론 건강이 삶의 지상목표인 사람도 있겠지만, 건강은 최종 목적이기보다는 다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의 성격을 띤다. 이에 반박하는 마이클 샌델 등의 윤리학자는 건강을 그 자체로 향유가능한 선으로 보기도 하나, 이들 또한 건강의 거장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건강염려증 환자뿐이라고 지적한다. 건강은 다른 가치들과의 연계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가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건강이 최고의 가치로 전면에 부각될 때가 존재한다. 특히 건강이 개인의 역할 또는 행위나 사회 제도의 정당성과 결부될 때 그렇다.

건강은 개인의 행위와 이념을 정당화하는 가치로 작용해왔다. 많은 사회에서 종교가 건강한 사람이 떳떳하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보통 영성으로 총칭되는 특정 가치를 올바르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도교의 신선은 단어의 기원 자체가 몸이 가벼워 하늘로 날아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불로장생한다고 여겨졌다. 유학에서도 선비들은 맑은 눈을 가지고 몸이 편안하다고 적었으며, 율곡 이이는 수신(修身)에 힘쓰면 양생(養生)은 저절로 따른다고 주장했다. 서구에서는 기독교의 많은 종파들이 건강을 중요시했는데, 특히 19세기 말엽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기독교 과학(Christian Science)에서는 신과의 진실한 소통이 개인의 건강으로 나타난다고 역설했다.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들 또한 떳떳하려면 건강을 보이라고 요구해왔는데, 주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은 건강하다는 논거가 기저에 깔려 있다.

개인을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강조되고 건강권 개념이 부상하면서 건강은 개인을 넘어 제도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단서가 됐다. 한국 사회에서도 2008년 촛불 집회,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망 사건, 밀양 송전탑 공사,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 대중이 나서 국가와 자본의 건강 책임을 묻는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 중이다. 이처럼 건강이 국가와 제도의 정당성을 흔드는 계기가 되는 한편으로, 잘 짜인 건강보장제도는 국가에 대한 신뢰를 신장시키는 데 여타 제도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또한 나와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을 원용하자면 권리 관계의 핵심 가치는 평등으로써, 건강은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받고 있다는 느낌을 몸에 직접 각인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떳떳하며 사람이 건강한 사회가 떳떳한 사회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는 한편으로, 역설적으로 건강을 스스로 해치는 것으로 보이는 사회운동들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에이즈 감염자를 참여시킨 게이들의 섹스 파티나 비건(Vegan)으로 상징되는 엄격한 채식주의, 살찐 몸을 긍정하는 ‘코르셋 벗기’와 일부러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여성주의자들의 실천 등은 냉정한 의학적 관점으로는 결코 용납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들이 감행하는 도전에는 진정 떳떳한 건강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성찰의 지점이 존재한다. 그들은 건강지상주의를 배격하는 동시에 함께 사는 삶, 낙인찍지 않는 삶, 차이를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의미 있고 건강함을 스스로의 몸으로 드러낸다. 그들 또한 모두가 떳떳한 건강을 누리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의 동반자인 셈이다.

 

양준용 박사과정

보건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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