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형 강사 (철학과)

평범한 고교 화학 교사가 말기 암 선고를 계기로 마약 제조 범죄에 뛰어든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냈던 탁월한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엔 수수께끼같이 파리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한 편 있다.(3시즌 10화) 이 에피소드는 자장가가 울려 퍼지는 배경 위로 제 몸을 닦는 파리를 화면 한가득 클로즈업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첫 장면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극이 진행되길 기다려야 한다. 이야기는 은폐된 마약 제조 공장으로 출근한 주인공 월터 화이트가 제조실에서 파리 한 마리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월트는 파리가 마약 제조 공정에 오염을 초래하기에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전 제자이자 동업자인 제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약 일당량을 채우려 한다. 그런데 파리를 둘러싼 이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이내 월트의 내면 고백이 돼버린다. 마음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 놓쳐 버린 행복에 대한 안타까움이 흘러나온다. 월트는 아내가 건넌방에서 어린 딸아이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듣는 사소하고 안온한 일상의 행복을 잃어버린 것을 슬퍼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에피소드의 오프닝에서 울려 퍼지던 자장가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하지만 삶이 아직 과오로 얼룩지지 않았던 상태의 행복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파리는 무엇인가? 월트가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하면서도 깊이 감춰둔 끔찍한 비밀을 끝내 말하지 않을 때, 이 비밀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파리와 겹쳐진다. 비밀은 파리처럼 앵앵거리며 끊임없이 신경을 건드리고 의식을 괴롭히면서도 파리처럼 좀체 잡히지 않는다. 마음을 돌려 파리를 잡으려던 제시에게 월트는 결국 모든 것이 이미 오염돼 있다고 말한다. 유일한 오염원이라고 간주됐던 파리는 모든 것이 이미 오염돼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인도자다. 파리는 우리 삶의 밑바닥에 감춰진 비밀을 알려주는데, 이 비밀은 그것이 우리 삶의 진리였기 때문에 억압되고 감춰진 것이다. 우리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졌고, 썩어 문드러졌다. 파리는 삶의 이 부패한 비밀-진리 주변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맴돌며 우리가 그를 응시하도록 만든다. 그 파리는 월트가 회상하는 잃어버린 행복의 순간에도 이미 거기에 있었을 것이며 삶은 이미 부패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파리는 양심일 것이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한밤중 잠에서 깨어 천장의 화재감지등 위에 환각처럼 앉아있는 파리를 쳐다보는 월트의 모습으로 끝난다. 오늘날의 양심은 더 이상 찬란한 빛처럼 나타나 그 앞에서 우리가 과오를 고백하게 만드는 절대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서 사라지지 않는 빛,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순백의 선이 아니다. 절대적 기준이 상실된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언제나 다소간 부패한다. 모든 것은 이미 오염돼 버렸다. 그리고 양심은 파리처럼 그 부패의 자리에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한다. 마약제조업에 뛰어들어 온갖 일을 마다치 않던 월트에게조차 찾아와 불면의 밤을 선사하는 파리처럼 성가시고, 하지만 그럼에도 귀를 막고 외면할 수도 있는 조그마한 파리처럼 미약한 무엇으로, 양심은 우리 주변에서 앵앵거린다. 그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고의 선과 이상을 더 이상 가리키지 않고 그에 준해 우리의 삶을 단죄하지도 않는다. 양심은 다만 안온한 일상의 행복 아래 숨겨진 썩어 문드러진 우리 삶의 환부 주위를 성가시게 맴돌 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더러운 곳을 찾아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내는 모순적인 청결의 의식일 것이다.

한여름 동안 우리를 성가시게 굴던 파리는, 가을이 다가오면 조용히 월동 준비를 한다. 우리에게도 곧 끝을 알 수 없는 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아니 그 겨울은 일찌감치 이미 와 있다. 이 추위와 암흑을 파리도 끝끝내 이겨내기를 기원하자.

 

주재형 강사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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