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릴레이 연극 페스티벌 - ‘권리장전_2016 검열각하’

최근 연극계는 정치검열로 유난히 다사다난했다.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는 “세월호 사건을 언급했다”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연출가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공연을 방해했다. 이에 1인 시위와 공동성명 등으로 저항을 이어가던 연극인들은 지난 6월부터 ‘권리장전_2016 검열각하’(권리장전)라는 이름으로 검열 연극 축제를 열어 지난 10월 말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전례 없는 검열 축제였던 권리장전이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조용히 예술의 기반을 흔드는 오늘날의 검열

검열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흔히 일제시대나 군부 독재처럼 강압적 지배를 받던 시절을 떠올린다. 체제에 반대하는 발언은 검열과 처벌의 대상이었고, 정치적 발언을 하면 소리소문없이 ‘잡혀가는’ 일도 빈번했다. 예술검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에서부터 제3공화국 시기엔 예술윤리위원회 등 정부기관을 통한 검열을 거친 뒤에야 음반이 발매되고 연극이 상연될 수 있었다. 금지곡 판정을 받으면 음반 발매를 할 수 없었고 실제 공연에서 조금이라도 바뀐 부분이 있으면 공연을 금지시키는 일도 빈번했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대본이 4〜5개월 전에 정해지고 그 후 연습을 하기 때문에 그동안 희곡이 많이 바뀔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기관에선 대본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공연을 취소시켰다”고 말했다.

반면 이 시대의 예술검열은 ‘검열’이라는 이름을 지운 채 예술의 근간인 공공지원금을 누락시키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제까지 예술가들이 공공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더라도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 목소리를 담은 작품이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명확한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를 연상시키거나 다룬다는 이유로 ‘팝업씨어터’ 공연 중에 방해를 받은 「이 아이」와 심사에서 배제된 퍼포먼스 「안산순례길」에 대한 내부고발이 이어지며 검열의 실체가 드러났다. 권리장전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양구 연출가는 “특정 예술가나 특정 사건을 배제하는 것은 예술행정의 근간이 무너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공지원금은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향유의 폭을 넓히는 기반이 되며, 특히 시장이 작고 자생력이 부족한 연극과 같은 분야에선 필수적이기에 검열 이슈는 연극계의 큰 문제로 다시 떠올랐다.(『대학신문』 2016년 3월 14일 자)

 

축제, 연극으로 ‘검열’을 말하다

이렇듯 검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연극인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1인 시위를 하는 등 저항을 이어갔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연극으로 저항하고자 했다. 특히 팝업씨어터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팝업씨어터 일로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된 후배들에게 부끄러웠고 검열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김수희 예술감독을 필두로 뜻이 맞았던 이양구, 윤한솔, 부새롬 연출가가 극장을 빌려 검열에 관한 공연을 하는 것으로 구상했다가,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창작공간사업’에 선정되면서 판이 커졌다. 극단 3팀 이상이 서울시에 신청해 선정되면 극장 월세를 서울시 측에서 부담하는 이 사업으로, 이들은 1980년대 창작극의 메카로 불리기도 했던 연우소극장을 5개월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공간이 확보된 뒤 이들은 2월부터 6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축제의 밑그림을 빠르게 그려나갔다. 발기인이었던 네 연출가는 검열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다른 연출가들을 불러모았고, 기획팀을 꾸려 2월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창작공간사업으로 공연 공간은 확보했지만 극장 월세를 제외한 모든 비용이 없는 상태였기에, 이들은 5월에 발기문을 발표하면서 텀블벅을 통한 시민 후원으로 4,000만원을 마련해 6월에 비로소 축제의 막을 열었고, 5개월 동안 22개의 연극을 선보여 약 6,700명의 관객을 모았다.

권리장전은 단순한 지원 배제에 대항한 싸움이 아니라, 연극인들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막는 검열을 끌어내리고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을 목표로 했다. 축제 제목 역시 이를 반영해, 영국 헌법의 기초가 된 권리 선언인 권리장전에서 따온 이름인 ‘권리장전_2016 검열각하’로 지었다. 권리장전의 ‘장’을 길 장으로 바꿔 긴 싸움임을 강조했고, 검열을 끌어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 부제목 ‘검열각하’를 달았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지원 배제는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뺏는 일이고 연극의 기저를 흔드는 문제”라며 “검열을 마음껏 이야기하는 창구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무대와 객석에서 펼쳐진 검열의 모든 것

5개월간 각자 다른 극단들이 꾸민 22개의 작품이 이어진 ‘권리장전’에선 시간에 따라 점점 넓어지는 스펙트럼으로 ‘검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첫 달에는 개막작 「검열언어의 정치학」처럼 과거에 있었던 검열 사건을 환기시키는 형태의 극이 많았던 반면, 중반부로 진행될수록 성소수자,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대한 검열을 다룬 「이반검열」 처럼 검열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도 보였다. 이연주 연출가는 “단순히 연극인들이 지원을 못 받는 이야기로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검열의 이야기를 넓혀가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후반부에선 「씨씨아이쥐케이(CCIGK)」처럼 역사 속 검열을 파헤친 작품, 「고래햄릿」 등 정통 희극의 내용을 가져온 작품이 검열 축제에 다양한 색을 더했다. 김소연 평론가는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끌고 들어오거나 자기 서술을 연결하는 작품들이 많아 흥미로웠다”며 “희곡 중심으로 작업하는 연출가들의 새로운 시도도 많았다”고 평했다. 이렇듯 다양한 시도는 권리장전이 생각하는 ‘소극장 정신’의 산물이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시대를 밟고 있는 연극인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 대한 질문 없이 공연을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소극장에서 마음껏 실험성을 발휘하고 시대정신에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연극인들의 검열에 대한 고발과 토로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권리장전은 외부인들이 모여 검열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7월과 9월에 열린 ‘격월포럼’은 관련 학자들이 검열에 대한 강연과 질의응답을 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스무 명 남짓의 ‘관객수다모임’이나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꾸려 일반관객들이 작품과 검열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 개막작 「검열언어의 정치학」으로 토크 프로그램을 열었던 김재엽 연출가는 “요즘 극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미디어가 되고 있다”며 “극장을 무대에서 이야기하고 객석에서 듣는 공간이 아니라 같이 모여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봤다”고 말했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 주제지만 관객을 만나는 것이 연극인의 업이라고 느껴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평론단을 꾸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초반에는 ‘왜 연극계의 검열 이야기를 돈 주고 봐야 하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갈수록 극이 가진 묘미와 검열 문제의 본질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봐주셨다”고 말했다.

축제에서 얻은 힘으로 ‘검열각하’를 향해

권리장전은 이례적으로 연극이라는 수단으로 검열에 대항한 축제였다. 기존의 저항이 시위나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한 번의 이슈를 제기하는 데 그쳤다면, 오랜 기간 예술을 통해 검열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한 권리장전은 검열이라는 문제를 꾸준히 수면 위로 올리고 연극계 당사자들과 관객이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김재엽 연출가는 “현실과 실제 인물을 계속 패러디하면서 현실 권력이 압박감을 느끼게 됐다”며 “담론이 생길 수 있는 공간을 지켜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평론가는 “관객을 즐겁게 하고 그들에게 멋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이슈에 대해 연극이 어떻게 발언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줬다는 점이 새로웠다”고 설명했다.

물론 접근성과 관련해 축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연극계의 검열 문제를 널리 알리고 공유하기에 소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협소하고, 주제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 오창근 씨는 “관객들과 소통하고 담론을 나누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예술계에 종사했다”며 “검열로 인해 관객들이 다양한 공연을 볼 권리도 침해된 만큼 시민들과 더 활발히 연대해야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평론가는 “연출가들의 새로운 접근이 관객들에겐 비슷해 보일 수 있다”며 “의도가 잘 구현된 정도에 따라 작품의 성과가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

그럼에도 연대한 연극인들이 계속해서 검열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점은 권리장전의 의의로 남았다. 이양구 연출가는 “젊은 연극인들이 5개월간 힘을 합쳐 침묵하지 않고 문제제기를 했다”며 “자칫 잘못하면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행보를 기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그 전엔 자기 예술을 하고 각자 찢어져서 공연했는데 지금은 공연이 있거나 검열 문제가 생기면 메신저로 항상 얘기한다”며 “동지를 얻은 것 같고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권리장전이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권리장전을 만든 이들은 축제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부터 진행과정, 효과 및 비전을 정리한 아카이브를 제작하는 중이며, 합평회를 열어 축제를 돌아보고 평론가들과 좌담회를 여는 등 축제를 되짚어나가고 있다. 김수희 예술감독은 “권리장전이 관심을 끌어낸 만큼 2017년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하고 있다”며 “내년 권리장전으론 검열 상위 주제인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이들의 움직임은 한층 더 바빠졌다. 권리장전이 시작되기 전에 대학로 예술극장 앞 거리에서 정부 검열에 저항하는 행동을 벌였던 이들의 열기는 지난달 18일(화)에 열린 ‘한밤의 블랙 문화예술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학로 아르코문화예술극장 앞에서 ‘다 모여라, 슈퍼블랙, 나도 블랙리스트다!’는 제목으로 ‘번개’를 주도한 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명을 발표한지 이틀만이었던 이날 80개가 넘는 연극 단체가 모여 검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음을 보여줬다. 검열에 대항하며 소극장에서부터 목소리를 낸 권리장전, 이들이 앞으로도 이어나갈 긴 싸움에 함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연극계 검열 타임라인

연극계 검열 의혹은 2008년 이후 끊임없이 제기돼왔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5년 내부 고발로 검열 정황이 우후죽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지난달 10일(월) 도종환 의원에 의해 블랙리스트가 폭로되며 정치검열로 상징되는 현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 어떤 사태들이 밝혀졌는지 타임라인의 형식으로 정리해 각각의 사건을 재조명해본다.

2015

‘서울연극제’ 사태

‘서울연극제’가 2014년 11월, 38년 만에 처음으로 공연예술센터의 2015년 대관 심사에서 탈락해 심사 주체인 문화예술예위원회(문예위)와 마찰을 빚었다. 서울연극제를 주관하는 ‘서울연극협회’는 세월호 유가족을 도운 바 있었다. 이에 서울연극협회가 연극탄압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며 재심의를 요구했고 결국 문예위가 대관 일정을 조정했다. 하지만 서울연극제의 개막 하루 전 4월 3일, 문예위에서 안전 문제로 극장을 폐쇄한다고 통보해 결국 서울연극제는 일부 파행됐다.

‘안산순례길’ 사태

2015년 2월, 문예위가 주관하는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윤한솔 연출가의 「안산순례길」이 탈락했다. 이후 9월 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기홍 의원이 문예위 직원으로부터 심사위원이 ‘윤한솔 연출의 작품들이 윗선에서 정치적으로 여겨질 뿐 아니라 「안산순례길」이 세월호와 연관돼 곤란하니 빼달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창작산실’ 사태

문예위가 창작산실 선정 과정에서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제외할 것을 종용했다는 사실이 9월 21일 밝혀졌다. 박근형 연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 '개구리'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바 있다.

‘팝업씨어터’ 사태

10월 18일 공연예술센터 대관사업 ‘팝업씨어터’ 공연 중 김정 연출가의 연극 「이 아이」에 수학여행과 노스페이스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센터 관계자들이 공연을 방해했다. 이 사건은 실무담당자가 실제로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을 중지시켰다는 사실을 내부 고발하면서 드러났다.

 

2016

블랙리스트 발각

지난달 10일(월) 도종환 의원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예술위 회의록을 공개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은 총 9,473명으로 세월호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거나 야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유리 기자 yoori0805@snu.kr 

조수지 문화부장 s4kribb@snu.kr

김지수 기자 alsltm207@snu.kr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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