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제36대 관악민국 모의국회 ‘침몰하는 황제의 섬 대통령제’

3부에서 야당 ‘바꿔야한당’의 대표 ‘유희’가 의원내각제 카드를 꺼내들며 개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는 관악민국, 나의 왕국에 온 걸 환영해!”

국회 회의장을 연상시키는 무대에 한껏 포즈를 취한 세 사람이 등장한다. 자신들을 ‘3선녀’라고 칭하는 이들은 대통령 ‘박꽃선녀’, 여당 대표 ‘연지보살’, 검찰총장 ‘백마장군’이다.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왕언니’의 지시에 따라 국가를 통치한다. 오늘날의 정치 이슈를 가상의 국가 ‘관악민국’에 옮겨 패러디한 이 공연은 정치외교학부의 ‘모의국회’다. 올해로 36회를 맞은 모의국회가 지난 7일(월) 오후 6시 30분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모의국회는 대통령 직선제 도입 30주년을 맞아 ‘침몰하는 황제의 섬, 대통령제도’라는 제목으로 막을 올렸다. 유지윤 준비위원장(정치외교학부·15)은 “처음엔 87년 민주화로 형성된 현행 체제의 개헌을 주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며 “한 시간 반짜리 연극에 담아낼 수 있도록 주제를 점차 좁혀나가면서 최종적으로 대통령제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2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준비팀과 1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연기팀은 방학부터 9월까지 개헌논의와 현 정치 상황을 공부하는 학술 세미나와 연기 테크닉을 위한 연출세미나를 열었고,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을 만나 국회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간담회 자리를 가지며 그들만의 국회 개회를 준비했다.

학생 신분으로 세미나부터 연극 구상, 상연까지 해내기엔 빠듯한 기간이지만 이들은 현실과 가장 가까운 주제로 관객을 만나기 위해 힘썼다. 공연 준비 막바지에 현 시국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대본의 상당 부분을 갈아엎었다. 유지윤 준비위원장은 “당시 대본을 거의 완성한 상태였지만 비선 실세 이슈를 관객들이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해 빼놓을 수 없었다”며 “대통령제와 함께 비선 실세를 중요한 축으로 가져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관객 최민주 씨(사회과학계열·16)는 “시의성 있는 주제라서 더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공연은 정치계에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비선 실세 문제를 거울처럼 패러디해 보여준다. 1부에선 대통령이 올린 법안에 반대해 공천에서 탈락한 여당 ‘지금도좋당’의 한 의원이 우연히 ‘3선녀’ 중 한 명인 당대표의 USB를 손에 넣으면서 ‘왕언니’의 실체가 폭로된다. 이에 2부에선 비선 실세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TV토론회가 열리고, 여당은 비선 실세가 대통령 개인의 문제라며 거리를 두는 한편 야당 ‘바꿔야한당’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여당에 책임을 묻는다. 마지막 3부에선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이 본격적인 개헌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여당 의원들을 설득하려 한다.

이들은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주제를 쉬운 캐릭터와 ‘깨알 같은’ 개그로 풀어나가는 시도를 보여줬다. 극중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코믹한 캐릭터로 표현돼 콩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이를테면 야당 원내대표가 만화 ‘유희왕’ 주인공으로 분해 헌법개정위원회에서 ‘의원내각제 카드’를 꺼내 들며 개헌안을 발제하고, ‘마법 카드’로 내각불신임제, ‘함정 카드’로 의회해산권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다. 관객 서민경 씨(17)는 “실제 국회처럼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풍자적이어서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렇듯 친근하고 쉬운 캐릭터로 관객들은 중간중간 폭소를 터뜨렸지만, 주제와 큰 관련 없이 웃음만을 위해 쏟아진 설정과 대사들은 폭소 뒤에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던 공연은 제목처럼 ‘대통령제의 침몰’을 암시하며 어둡게 마무리된다. 3부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여야간 입장차로 결렬되고, 현 체제가 유지된 상태로 ‘선동여왕’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돼 ‘왕언니’와 함께 기뻐하며 극은 끝이 난다. 유지윤 준비위원장은 “현 체제에 대한 변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계속 일어날 것임을 보여주는 결말을 택했다”며 “모의국회를 보러 온 관객에게도 제도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시종일관 우스꽝스러운 관악민국의 모습에 관객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속에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현실에 대한 쓴웃음도 섞여 있었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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