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하다. 평소라면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을 일들,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고 그냥 일축해 버릴 일들에 대해서 더 이상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바다 건너에서는 도저히 대통령이 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우리나라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해버리고 싶은 일들이 매일같이 뉴스로 쏟아진다. 나라를 주무르고 있던 권력자는 국민의 선택을 받은 권력이 아닌, ‘비선실세’였다. 참담하다.

나라꼴이 이렇게 우습지만, 그래도 개인의 삶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개인의 삶 역시 ‘나라꼴’의 영향을 받는다. 혹자는 정치인은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누구를 찍는다고 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말 영향이 없을까? 나라꼴에 영향을 받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 개인적인, 그러나 개인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 아버지는 무뚝뚝한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다. 그리고 동시에, 20년이 넘게 선로반에서 일하고 계시는 철도 노동자다. 2013년 말에 철도 민영화 이슈로 철도파업이 크게 있던 시절,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자보가 붙고 일부 언론에 의해서 ‘귀족노조, 연봉 평균 6천만원’ 따위의 말이 나돌던 그 시절에, 평소에 통화로 많은 말을 하지 않으시던 전화기 너머 아버지는 굉장히 화가 나신 채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중학교 시절까지 집에서 지내면서 매달 나오는 아버지의 월급 명세서를 자주 봤었던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난달 말의 어느 저녁,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늘 하는 통화겠거니 싶었는데 어머니는 갑자기 오늘이 아버지의 월급날이라고 이야기하셨다.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묻는 내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 달째 파업에 참여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월급이…”라고 말을 흐리시고, 내 통장에 잔고가 별로 없는 것을 아시면서도, 용돈을 주기가 어렵다는 그런 이야기를 정말 어렵게 하셨다. 나는 괜찮았다. 어차피 곧 과외비도 들어올 테니까.

사실 돈 얘기는 정말 괜찮았다. 그보다 그 순간에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를 철도 노동자로 두고 있으면서도 혼자 멀리 떨어져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버지가 어떤 상황인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나 자신이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철도 노조의 글을 읽고 거기에 공감하고, 지하철의 배차 간격이 길어지고 늦게 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고향의 아버지에게는 생각이 닿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정말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 입장에서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젊은 사원들에 비해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성과연봉제’가 하나둘 들어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니까, 그것이 당장 아버지의 연봉뿐만 아니라 나와 동생에게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 의미를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싸우고 계신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성과연봉제’ 역시 그 ‘비선실세’가 개입된 작품일 것이고, 3년 전의 ‘민영화’ 역시 그 ‘비선실세’의 작품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싸우고자 광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또 나갈 것이다. 사실, 어머니는 집회 같은 것에 제발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너까지 걱정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 곳에 가지 말고 안전한 데서 할 일을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또 나갈 것이다. 그런 자들이 존재하는 한, 나는 또 나가서 싸울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일이고, 지금의 나에게, 훗날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이다.

웹툰 원작인 JTBC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안내상)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나는 화가 났기 때문에, 화를 내러 광장으로 갈 것이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러 광장으로 왔고, 또 올 것이다. 화가 나는가? 함께 화를 내자. 헌법 1조를 기억하자.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화를 낼 자격이 있다.

 

허광영

교육행정전공 석사과정·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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