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문화재 창고 아닌 지식 발전 기지 돼야”

3년마다 세계 박물관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21차 세계 박물관 협의회(ICOM) 총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세계 박물관의 전문성과 아이디어 등을 공유하고 지향하는 바를 논의하는 자리인 이번 총회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라모스 오르타 동티모르 외무장관, 명예 대회장인 영부인 권양숙 여사 등을 비롯해 120여 개국 1500명의 국내ㆍ외 인사가 참여했다.




2일(토)부터 8일까지 진행된 학술회의는 29개 분야로 나뉘어 개최됐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이번 대회의 대주제이기도 한 「박물관과 무형 문화유산」과 「문화유산의 보호」 등에 대한 논의였다.

 

이제까지 국내ㆍ외에서는 유형 문화유산의 중요성만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무형 문화유산이 관심 밖에 밀려 가치가 유실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박물관과 무형 문화유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는 김흥남 국립 민속 박물관장, 임돈희 동국대 교수, 마쯔조노 마키오 일본 국립 민속 박물관장 등 전문가들의 견해가 발표됐다. 이들은  박물관이 빈약하긴 하지만 더 나은 문화유산 보호 기관이 없는 만큼 무형 문화재에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보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어진 논의에서는 한국에서 전통문화 기술보유자를 보호하는 인간문화재 제도를 정착시킴으로써 우리 나름대로 이런 흐름에 선도적 역할을 했음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아울러 최근 발전된 과학 기술이 무형 문화재의 보존ㆍ전승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강조됐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했던 사람들에게 “왜 한국의 박물관은 이렇지”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 설립됐던 박물관은 약탈된 문화재의 창고 역할을 했던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박물관이 어딘지 모르게 빡빡하고 직원들도 굳어 있다. 교육 기관으로서 박물관의 역할을 강조한 구미에서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문화재를 전시하고 지식을 습득케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직원들도 방문자에게 능동적으로 대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

“유형 문화재 못지않게 무형 문화재 중요하다”


이렇듯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우리나라 박물관 사정을 잘 아는 일본이나 중국 측에서는 이번 대회의 서울개최에 대해 적지 않은 불평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일본이 4천개, 중국이 5천개, 미국이 1만개 정도의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250개 정도이며 그마저도 유물 관리ㆍ보존을 위한 기본 시설이나 전문 인력이 구비된 곳이 적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문 인력과 일반 국민의 인식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에 대한 논의를 이번에 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큰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 박물관들 시설 열악하고 전문인력 부족

우선 이번 대회의 폐막식에서 무형 문화유산을 유형 문화유산과 함께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로 강조한 ‘서울 선언’ 결의문은 전 세계에 무형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 우리나라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하고, 박물관 관계자들의 자세가 바뀌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박물관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창고가 아니라 지식 발전 기지의 역할을 하도록 관계자들의 능동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그리고 문화유산 보존 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문화 선전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 박물관의 기능을 확립할 필요성이 논의됐다. 구미 선진국처럼 박물관 내에 박물관 교육관과 같은 전문 인력을 공식적으로 두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는 학생과 일반인들이 박물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는 요건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박물관을 방문한 참가자들의 경우 연구 인력과 보존 시설의 미비를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 수립 후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일이 없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3년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릴 차기 총회에서는 한국 박물관이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등장하길 기대한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임효재

인문대교수ㆍ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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