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자리 투쟁 단상
지하철 자리 투쟁 단상
  • 대학신문
  • 승인 2016.11.13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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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라 박사과정 여성학 협동과정

차를 소유한 지 10여 년 가까이 된 친구들은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1년 중 손에 꼽는다고 했다. 자가용이라는 사적 공간이 주는 편리함도 크지만, 무엇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받는 스트레스를 감당 못하겠다는 이유였다. 내가 임신 소식을 주위에 알리고 나서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빨리 운전연수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제 ‘누가 봐도 임산부’ 같은 몸을 하게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편도 한 시간씩 지하철과 버스를 바꿔 타며 등교하고 있는데, 변한 내 모습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의미화되는지 가장 먼저 깨달은 곳은 다름 아닌 지하철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교통약자’가 된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가 마주친 가장 큰 곤혹스러움은 붐비는 객실 안에서 내가 서 있는 곳 주위에 형성된 묘한 긴장감을 감지할 때이다. 핑크카펫이라 불리는 임산부 배려석 근처에 서 있자니 그곳에 앉은 사람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 민망하고, 다른 곳에 서 있자니 내게 할당된 구역을 굳이 벗어나서 엄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것 또한 난감하다. 이 모든 긴장감은 자리가 나서 내가 앉을 때야 종식되곤 했다.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겪는 각종 불쾌한 일화들은 우리 생활 세계의 언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노약자석이나 임산부 배려석 등 반강제적(!)으로 획정된 공간배치를 둘러싼 경험과 불만일 것이다. 이 불만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지하철이야말로 다양한 해석의 교차를 통해 의미가 구성되고 변화하는 작은 사회학적 장소임을 깨닫게 된다. 노약자석을 앞에 두고 ‘지킬 것은 지킨다’는 과거 TV 광고 속 청년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현재 지하철의 특정 배려석을 둘러싼 우리들의 경험과 갈등의 양상은 더 복잡해졌다. 명칭 또한 경로석에서 노약자석으로 바뀐 지 오래다. 노인,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등 특정 좌석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화는 예전보다 한층 정교하게 이뤄졌으나 이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자연스러운 합의로 이뤄졌다기보다 당대 사회적 의제에 따라 급조됐다는 느낌이 더 크다.

때문에 누가 이 자리의 수혜자가 될 자격이 있으며 그 자격을 얻고 유지하고 승인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외관은 무엇인지, 승인의 주체와 대상은 누가 결정하는지, 설사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하루에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공간 내에서 특정한 핸디캡을 가진 사람만 배려 받는 것은 합당한지 여부를 두고 계속해서 판단하고 겨루며 공간적 실천을 벌이는 것이다. 소소한 지하철 뒷담화들과 심심찮게 등장하는 자리다툼 뉴스, 겉으로 보기에 표시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안내방송, 임산부 배려석에 곰인형을 놓는 캠페인, 객실 내의 대표적인 교통약자로 구분되면서도 정작 지하철에 접근하기조차 힘든 장애인…. 지하철 자리를 둘러싼 판단과 겨루기 투쟁의 단면들이다.

수많은 사회학자들은 도시 공간을 두고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자 ‘권력 구현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지하철 자리다툼에 대한 단상을 좇다보면 공간과 권력의 배치, 시민적 정체성의 문제까지 이르게 된다. 지난 주말에도 우리는 광화문 광장이라는 특정 공간을 향해 지하철을 타고 나섰다. 지하철과 광장, 어두운 밤거리,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사이버 공간까지, 우리의 공간적 실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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