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독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독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 이승엽 편집장
  • 승인 2016.11.13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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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사람] 역사학자 김기협
그에게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게 뭐 언급의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이건 농담도 참 심합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사학자 김기협.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익숙한 이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그처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은 드물다. 경기고 이과 수석 졸업, 서울대 문리대 수석 입학, 그리고 1년 만에 공대에서 사학과로 전과. 이후 그는 안정적인 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역사 공부와 저술에 매진했다. 더욱 재밌는 점은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 특이한 이력마저 평범해 보이게 된다는 것.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해방일기』 『냉전 이후』 등의 저서에서 그의 초점은 역사를 새롭게, 그리고 중간지대에서 보는 것에 가 있다. 이런 그를 「프레시안」의 이근성 고문은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김 선배는 한국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바깥으로, 바깥으로 도망쳐 나오기만 해온 사람이다.” 『대학신문』은 역사학자 김기협을 만나 ‘밖에서 본’ 인류의 역사, 그리고 한국 사회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서에서 ‘도그마의 속성’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인간의 문명은 도그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도그마를 순화시켜나가는 과정이 바로 문명의 발달과정이며, 순화된 도그마의 조화로운 균형이 바람직한 문명상태다.” 저는 이것이 선생님이 역사를 바라보는 주된 입장으로 해석했습니다.

인간 문명의 역사는 도그마의 충돌 과정입니다. 제 경우는 문명사, 그리고 과학사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봤기 때문에 문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문명과 자연의 관계, 문명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서지요. 인류의 개체수가 천만이 안 되던 시절, 인간은 자연의 일부였습니다. 야생동물이 뛰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적정 범위를 넘어서 인간의 수가 급증하며 자연의 전형적인 신진대사 범위를 넘어서게 됩니다. 채취가능한 자원과 수요 사이에 편차가 커지는 거지요. 이에 따라 문명의 압력이 생기면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긴장관계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긴장관계를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도그마’가 필요하게 됩니다.

예컨대 종교적 도그마를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만 합니다”는 교리나 인류의 구원 같은 믿음을 갖지 않고서는 문명의 압력을 지탱해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도그마를 만들어 스스로 정당화하고, 투쟁의 도구로 삼아왔지요. 여러 가지 체제들이 나타나고 그중에서 인간은 비교적 안정성을 가진 체제들을 지속가능하게 길들이면서 문명이 발전해온 겁니다.

 

▹그러면 현재의 근대문명 도그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는 근대문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그 기준은 ‘지속가능성’인데, 하나의 문명이 안정성을 갖고 자연과 긴장 상태를 비교적 원만하게 소화시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문명으로서 좋은 가치인 겁니다.

하지만 근대문명은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의 극한적인 진보를 설정하는, 어떤 기술적인 변화에 따라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장 비슷한 예로 중국의 전국시대를 들 수 있어요. 사실 철기는 그보다도 2,000년 전부터 히타이트 족이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전국시대의 대량 보급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명장만 제련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소량의 사치품이 아니라 주철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어디서나 만들 수 있는 일상품이 된 겁니다. 철기로 인한 생산량 급증으로 문명이 아주 낭비스러운 형태로, 몇 백년간 진행된 거죠. 근대 산업혁명도 생산성 급증을 촉발한 근대문명의 출발점입니다.

이런 일시적인 현상은 문명사 차원에서 장기적 안정성을 가진 것이 못 돼서, 2~300년 정도가 지나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20세기 들어서부터 세계대전, 경제공황 등의 형태로 부분적‧산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20세기 후반부터는 전면적인 문제로 환경, 자원 문제로 커지게 된 것이지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이 현상도 100년간 지속된 미국의 패권주의, 서세동점(西勢東占), 그리고 근대문명 도그마의 쇠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패권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으로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경찰의 역할을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세계경찰이라는 말을 잘 안 쓰게 됐어요.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은 끝이 난 거였지요. 그 이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정치적인 설득력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경제력을 생각해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피해의식에 몰린 백인 중하층의 집중적인 지지로 트럼프가 당선됐다고 관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은 레이건 시대부터 자본주의 중추세력에게 간판으로 이용돼 왔어요. 신자유주의라는 미명 아래 실제 미국인의 삶의 질은 그때부터 악화돼온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터져 나온 것이지요.

미국이 군사적인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정치력이라는 건 애초부터 취약한 방면이었고, 이제는 경제력에까지 한계가 온 겁니다. 근대체제의 마지막 보루로 활용되던 미국이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고 봐요.

 

▹그럼 앞으로의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앞으로 미국의 역할이 위축됨에 따라 다른 주체들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역할에 대해 내가 희망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현재의 패권 이동은 평면적인 패권 이동이 아니라 세계체제의 질적 변화도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근대 문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과거를 부정하는 데 있었어요. 그렇지만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될 것은 바로 문명 전통입니다. 중국 문명만이 아니라 이슬람, 인도 문명도 그 중 하나지요. 그런데 중국은 전통자원을 많이 가졌을 뿐 아니라 실제 경제력이나 군사력도 미국을 제외하고는 두드러질 정도로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 전 영국이 가지고 있던 힘, 지금 미국이 가지고 있던 힘을 누가 물려받느냐는 평면적 패권 이동이 아니라 문명의 성격에 따라 문명이 운영되는 그 상식적 원리로, 근대 200년과는 새로운 방향으로 세계가 움직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엘리트 계층의 무능력과 부패를 비판하시는 측면이 강합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는 고려시대 몽고의 지배를 받았을 때도 왕들이 개혁을 외치다 정작 시스템의 혜택을 보게 된 후에는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지적하셨습니다.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요.

저는 사람들한테 엘리티즘이라는 비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엘리트한테 특혜를 줘야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문명의 구조에서는 주어진 과제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 사회가 균질한 상태가 아니라, 크고 작은 역할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어야 합니다. 문화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 평등한 사회였다면 애초에 자연 상태에서 어긋나는 60억의 인간 사회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중점적인 역할을 맡는 엘리트층이 존재해야 하고, 이들이 사회 유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갖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중대한 문제는 엘리트층이 혜택만 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민족 사회는 100여 년간 실질적으로 외세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있는 상태입니다. 그 100여 년간 외세의 개입이 엘리트층이 책임감을 잃어버리게 된 결정적 이유입니다. 고종의 예를 들어보지요. 고종은 권력을 사유화해서 신하를 등용하는 폭도 제한적이었습니다. 우리 흔히 을사오적이라고 이야기하지요? 당시 내각대신이 8명이었는데, 사실 8명 중 정말 제대로 반대한 사람은 한규선 하나뿐이고 나머지 2명은 현장에 없어서 오적에서 빠진 경우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을사칠적이 됐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당시 지식층의 평균 수준은 그것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만 골라 모은 겁니다. 고종이. 그때부터 시작해 일본의 식민 통치 시기, 통치에 편리한 성향의 집단을 골라 친일파로 끌어들였습니다. 친일파가 형성되며 국가적 혜택을 받는 특권층이 엘리트로서 책임감을 갖지 못한 계층으로 자라난 거지요. 해방 이후에는 이들이 친미파의 주축이 됩니다. 결국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엘리트층이 전부 증발해버리고, 지금까지도 남의 눈치만 보는 지배층만이 남은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독립’을 했다고 말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20세기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서 뛰어났던 리더는 누구인가요?

리더는 자질뿐만 아니라 성과로도 이야기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 운영을 우리 손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지요. 저는 ‘노빠’를 자처했던 사람이었는데, 참 리더로서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었고 노력도 많이 기울인 사람이었지만, 지도자로서 역할을 잘했는가라는 질문에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힘듭니다. 주어진 여건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안타깝지만 국가, 민족 차원에서, 20세기 이후로는 그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하기도 하셨고, 『뉴라이트 비판』을 통해 뉴라이트 역사학을 통렬히 비판하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현재 한국 역사학계의 주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역사공부라는 것이 있었던 일을 갖고 이야기하는 분야기 때문에, 바로 그것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근대 역사학이 그렇지요. 역사학은 문명 초기 단계부터 있었던 것인데, 도그마 관리의 중요한 매커니즘으로, 중요한 정신적 활동영역으로 존재해왔습니다. 그런데 근대 학술계에서는 전통시대의 역사학이 사상계에서 차지했던 상당히 큰 역할이 위축됐어요. 수량적으로는 연구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그게 현실에 작용하는 힘은 줄어든 상태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역사학자가 학문에만 머무르고, 정치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특히 근현대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적인 책임감이 늘어났지만 우리 윗세대까지는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완전히 금기시돼는 그런 풍조가 있었어요.

그런데 역사학이라는 것이 정치에 참고가 되는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치 잘하는 데 도움 되는 것이 역사 공부의 사명이지. 다른 게 뭐가 있겠습니까.

▹2016년 현재는 굉장히 중대한 변화가 벌어지는 시기입니다. 대중들이 가시적으로 목격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변화의 전조들이 보이고 있는데요. 이 중대한 시기를 20대 청년으로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는 요즘 청년들이 부럽습니다. 내가 평생 익혀 온 학문이라는 것이 체제유지를 위한 소품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한 일화를 이야기하지요. 1848년 프레드릭 바스티아라는 프랑스 경제학자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비유를 소개했습니다. 깨진 유리창의 이야기였는데, 19세기에는 빵집 유리창이 깨져도 빵집 주인의 돈은 유리 가게로 흘러 가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니, 실제로는 손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유행했지요. 그런데 바스티아는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빵집 주인의 돈은 자전거를 사거나 여행을 가는 데 사용됐을 것 아니냐고. 돈이 유리 가게에 간 것, 그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니 그 돈이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가능성,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보다 기막힌 사연은 이 개념이 주류경제학에 도입된 게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910년대가 돼서라는 겁니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이 60년이나 지체된 것은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사실 바스티아가 제창한 이 관점은 사회과학이 고도로 발달하기 전 단계의 전통적인 관점인데,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입니다. 이 관점이 생산성이 높아지고, 파괴는 창조의 아버지라는 인식이 퍼져 전쟁을 찬양하는 이런 분위기가 세상을 휩쓸던 근대 문명의 60년간 무시돼 온 겁니다. 우리는 그 상식적인 관점이 왜 60년간이나 무시됐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익혀온 학문의 방법은 보이는 것에만 묶여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혼란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생각과 시야를 제한하고 있던 조건들이 해제되고 있는 것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대학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앞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그리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사진: 김명주 부편집장 diane111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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