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인 방송, 누구나 방 안에서 방송하는 시대가 오다

 

개인이 방송하는 시대다. 떡볶이, 국밥, 치킨, 보쌈을 잔뜩 펼쳐놓고 먹는 ‘먹방’,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을 생중계하는 ‘겜방’, 음악을 튼 채 시청자와 수다를 떠는 ‘톡방’까지.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어느새 댓글을 달고 별풍선을 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웹캠 앞에서 먹고 게임하고 수다 떠는 방송인들은 TV 속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지만 당신은 어렵지 않게 그들과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스타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플랫폼 1인 방송은 어떤 매력으로 우릴 사로잡은 것일까?

 

1인 방송 전성시대

1인 방송은 말 그대로 개인이 단출한 장비를 가지고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방송이다. 국내에서 1인 방송이 시작된 지는 올해로 10년이 됐다. 2006년 처음으로 인터넷 생중계 방송 서비스를 시작한 ‘아프리카TV’는 일방향적인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영상 콘텐츠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초기엔 게임을 중계하는 ‘겜방’이나 정치·사회적인 사안으로 수다를 떠는 ‘톡방’이 대부분이었고 마니아층이 주로 이를 시청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며 1인 방송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다이아TV’ ‘트위치’ 등 다양한 플랫폼이 새롭게 등장했고 ‘BJ’라 불리는 1인 방송인이 모여들어 1인 방송계의 몸집이 지금과 같이 커진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오늘날 사람들은 인정과 주목을 받는 것에 많은 가치를 두고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며 “이와 함께 1인 미디어가 등장해 흥행의 물살을 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마니아층에게만 소비됐던 1인 방송은 이제 만인을 사로잡는다. BJ계의 유재석으로 통하는 ‘대도서관’의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은 2016년 11월 기준 140만명을 훌쩍 넘었고 누적조회 수는 5억회에 달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초기 1인 방송은 키치문화 혹은 ‘잉여’문화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으로 인정돼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고 1인 방송에 대한 인식변화를 설명했다. 현재 1인 방송 포맷은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차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지난 8월 27일과 28일 ‘CJ E&M’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동주최한 ‘다이아 페스티벌’엔 3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1인 방송의 흥행을 실감하게 했다. 광운대 MCN 크리에이터 양성과정, 개그맨 출신 오종철 씨가 이끄는 ‘스쿨잼’ 등 전문적인 1인 BJ 양성프로그램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1인 방송 시장이 거대해지며 BJ들이 콘텐츠 제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돕고 콘텐츠의 유통과 판매, 저작권을 관리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이 생겨났다. CJ E&M의 다이아TV를 선두로 ‘트레져헌터’와 ‘샌드백스’가 그 뒤를 이으며 크고 작은 MCN들이 생겨나고 있다. BJ 전문 인터넷 신문 「BJN」의 김진우 대표는 “1인 방송이라는 문화현상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되자 이곳에 한 갈래의 문화산업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BJ이자 MCN 운영자 ‘디바 제시카’ 이승주 씨는 “스타를 발굴하고 양성한다는 점은 연예계 소속사와 비슷하다”며 “MCN은 기존 연예계 소속사와 달리 BJ의 자율적인 콘텐츠 제작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마성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다

제작이 간편하고 진입장벽이 낮은 덕에 자신의 콘텐츠를 뽐내고 싶은 BJ들이 곳곳에서 개인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1인 인터넷 방송 채널은 7천여 개, 활동하는 BJ는 150만명에 이른다. 스튜디오부터 전문장비, 인력이 많이 요구되는 TV 방송과 달리 1인 방송은 PC와 웹캠만 있으면 어디서든 바로 방송을 송출할 수 있다. 또한 방송 콘텐츠에 큰 제약이 없기에 어떤 소재로든 자신의 방송을 꾸려나가는 BJ가 될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이선하 씨는 반려견에게 글씨를 가르쳐주는 터무니 없으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도 1인 방송의 소재가 될 수 있다. 10대들은 숙제나 방청소를 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행에서 만난 멋진 풍경을 실시간 중계해 시청자와 함께 감동을 나누기도 한다.

1인 방송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BJ들의 정제되지 않은 모습 때문이다. 생중계로 진행되는 1인 방송에선 BJ가 짜여진 각본에 따라 방송하는 대신 즉흥적으로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시청자들과 별풍선을 걸고 게임 내기를 하고, 방송 도중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등 사람들은 BJ의 옆집 이웃 같은 소소한 모습에 공감과 애정을 느낀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BJ들은 시원하게 욕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한다. 방송 도중 술을 마시기도 하는 등 편집되지 않은 ‘날 것’ 같은 방송은 1인 방송에서만 가능하다.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TV 방송과 달리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게임방송을 즐겨본다는 김성준 씨는 “대도서관은 방송 중 새로운 게임을 할 때 시청자들이 지시하는 대로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콘텐츠 안에 소속돼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며 TV 방송과는 다른 1인 방송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남자 패션 BJ인 최겨울 씨는 “소재를 정하고 방송을 시작하더라도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다른 콘텐츠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며 “외투별 어울리는 신발 코디법에 관한 방송을 준비했었는데 시청자가 방송 도중 헤어 스타일링을 하는 법을 요청해 헤어 스타일링에 관해 설명해야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의 경우에도 시청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 유튜브에 다이어트 운동법에 대한 영상을 올리던 선여정 씨는 시청자들이 남긴 댓글을 토대로 한 Q&A 영상을 추가적으로 게시하기도 했다.

 

1인 방송이 풀어야 할 숙제

1인 방송의 가파른 성장에 비해 뒷받침하는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CN 사업체와 창작자 간의 불공정한 계약은 개인 창작자에 대한 착취와 통제를 용이하게 해 영상 창작문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 이승주 씨는 “MCN에선 1인 창작자가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 콘텐츠 자율성은 1인 창작자에게 줘야 한다”며 “창작자가 자율성을 잃고 획일화된다면 1인 방송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이는 MCN 사업체뿐만 아니라 플랫폼과 창작자 간에서도 해당되는 문제다. 최근 인기 BJ 대도서관은 아프리카TV로부터 7일 방송 정지 처분을 받고 아프리카TV에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겼다. 그가 정지 처분을 받게 된 이유는 사전 협의 없이 모바일 게임 ‘아케론’의 광고모델과 함께 방송에서 게임을 홍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도서관은 이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명분에 불과하다’며 ‘아프리카TV가 BJ를 하청업체 다루듯 했다’고 플랫폼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1인 방송의 자율성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다.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생중계 하고, 락스를 먹는 등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송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불분명한 1인 방송의 규제 문제에 대해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1인 방송이 자기표현의 매체인지 TV 방송처럼 방송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에 규제가 확립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건전한 1인 방송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CN 사업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해 일부 불량 1인 방송인에 대한 퇴출을 공식적으로 언급했으며 6월엔 선정성 방송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거대해진 시장에 반해 콘텐츠는 게임, 뷰티, 먹방, 쿡방 등 인기 있는 장르에 국한돼 있다. 한지수 씨는 “기존 방송에서 볼 수 없는 콘텐츠가 많아 1인 방송에 매력을 느꼈었으나 지금은 콘텐츠가 다소 한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송진 책임연구원은 ‘1인 방송이라는 형태 자체가 이론적으로는 다양한 장르가 나타나야 정상인데 현재는 인기 있는 소수 BJ나 콘텐츠로 몰리는 형태로 다양성이 위축돼 있다’며 ‘현재 1인 방송이 먹방, 겜방 등 협소한 장르로 약간의 정체기에 있지만 시장 규모가 커져 시청자들이 세분화된다면 새롭고 다양한 장르의 1인 방송들이 나올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 ‘페리스코프’ 등 SNS에서도 생중계가 가능해지면서 1인 방송의 범위는 더 넓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고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늘날 1인 방송의 기세는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지만 성장 속도에 비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1인 방송이 미디어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오락적 기능에만 치우쳐선 안 된다”며 “1인 미디어에 대한 욕구가 팽창하고 있는 지금, 차세대 미디어를 이끌어 갈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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