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과식의 심리학

과식의 심리학: 현대인은 왜 과식과 씨름하는가

키미 카길

강경이 옮김

루아크 348쪽

28,000원

올해 중순 방영된 <잘먹는 소녀들>은 걸그룹 패널들 중 누가 제일 음식을 맛있게 먹는지를 대결하는 프로그램으로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성 상품화를 조장하는 음식 포르노라는 비판 뿐만 아니라 새벽까지 진행되는 촬영의 특성상 패널들이 많은 양의 음식을 쉬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과식으로 패널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렇듯 현대인은 과식이 건강에 미치는 문제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현대인은 습관적으로 과식을 할까? 임상심리학자 키미 카길(미국 워싱턴대)은 그의 저서 『과식의 심리학』에서 이런 일련의 행위를 소비주의 문화의 결과로 해석한다. 그는 다양한 임상심리 사례와 과식에 대한 영양학,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과식의 문제가 급속도로 팽창한 소비주의 문화에서 비롯됐으며, 식품과 제약 산업의 치밀한 마케팅 및 정치 행위가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과식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오히려 그 책임은 소비를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외치는 서구사회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15년간 난민 수용소에서 최소한의 음식만 먹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미얀마 가족이 과식으로 인해 비만과 합병증에 시달리는 과정을 예로 든다. 미얀마 가족은 처음에 코코아조차 마시지 못할 정도로 단 맛을 낯설어 했지만, 곧 값싼 정크 푸드와 포장식품으로 그들의 식단을 채우게 됐다. 정크푸드에 대한 그들의 지나친 소비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그에 따른 행복을 줬지만 그들의 건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저자는 실제 식품 산업에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식도 분석한다. 소비자들이 절제력을 잃고 무감각적으로 과소비를 하게 된 배경에는 식품 산업의 마케팅이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왜 스타벅스에는 무려 8만 7,000개의 메뉴가 존재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스타벅스에서는 기호에 따라 사이즈는 물론이고 우유, 시럽, 드리즐, 휘핑 크림 등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는 개개인의 미세하게 다른 입맛 차이까지 고려하는 ‘초개인화’ 전략이다. 저자는 이러한 심리적 전략들을 나열해 새로운 소비자를 키우기 위한 산업계의 노력을 파헤친다.

식품 산업의 이러한 성격을 부추기는 또 다른 산업은 바로 제약 산업이다. 두 산업은 한 쌍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소비를 촉진 시키고 본목적과 달리 현대인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과식을 통해 비만, 폭식장애와 같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겪는 이들은 이를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 눈길을 돌린다. 제약 산업에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은 이들은 다시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과식한다.

식품과 제약의 두 산업은 정치적 책략을 통해 관련 정부 기관의 감시 및 관리를 축소시킨다. 한 예로 「전문의약품 허가 신청자 비용부담법」에 따라 제약사는 신약판매허가를 신청할 때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일정한 신청금을 내야한다. 겉으론 제약사에 손해인 것 같지만, FDA는 예산의 많은 부분을 제약사에 의존하고 있고 따라서 약품의 안전성을 검사할 때 국민이 아닌 기업의 눈치를 본다. 식품 산업의 경우, FDA가 제재하는 ‘유기농’과 같은 홍보문구를 교묘히 피하기 위해 ‘자연’과 같은 다양한 문구를 만들어내는 등 천문학적 마케팅 비용을 들인다.

카길 박사는 ‘개인만이 아닌 문화와 정부에 대해서도 통찰과 변화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내담자 앨리슨은 반복되는 과식으로 자신감을 잃어 연애와 일 모두에서 좌절을 겪는다. 앨리슨은 값비싼 다이어트 식품과 운동 프로그램을 소비하며 헛된 희망을 찾고, 이 때문에 과식과 다이어트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앨리슨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친구, 가족이며 어쩌면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소비주의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런 구조적 문제를 키우는 기업의 정치적 책략을 감시하는 것이 과식으로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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