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가 세상에 주는 붉은 것

현호정(국어국문학과·12)

 

중학생인 동생의 얼굴과 올해로 90세를 맞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비슷한 점이 있었다. 안 하느니만 못한 부자연스러운 화장이 주는 불쾌감이 그것이었다. 다만 흰 피부에 붉은 입술이면 그 밖의 이목구비야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화장품을 발라댔다. 불시에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내가 동생의 얼굴을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갓 피어난 장미꽃잎 빛깔의 립스틱과 탱탱하고 촉촉한 제형의 파운데이션이 거칠고 탁하게 피부에 얹혀 있는 것을 직시하면서 나는 잠시 동안 아찔할 정도의 불안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요컨대 중학생 동생과 90세 할머니 사이에 놓인 대략 80년이라는 시간의 흔들다리 위에 갓 올라선 20대 여자로서의 근본적 불안감이었다.

심지어 우리 셋은 쓰고 있는 화장품도 같았다.

반半피라미드형의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엄마 때문이었다. 그 브랜드의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이 아니면 다른 브랜드의 것들은 전부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듯이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의 표정은 사뭇 섬뜩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화장품이나 비타민제를 만들면서 해로운 화학물질들을 첨가하는 회사들에 대해 느끼는 섬뜩함이었고 나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삽시간에 광신도로 만들어 낸 회사에 느끼는 섬뜩함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담담히 견딜 수 있는 딸이란 세상에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말하자면 대뇌가 아니라 편도체에 각인된 공포 같은 것이어서 딸이 딸을 낳아 어머니가 되고 그 딸이 다시 딸을 낳아 할머니가 된 뒤에도 한 밤의 악몽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창문을 열게 만드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고작해야 세 뼘 정도인 내 화장대를 엄마 회사의 화장품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얼굴에 바른 화장품을 그대로 바른 할머니의 얼굴을 응시하느라 무방비해진 귀로 할머니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 생리대 어디 있냐.

 

 

할머니가 다시 생리를 한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출근하고 없는 상태라는 것을 나는 다행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얼마 전 완경했다. 완경을 완경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집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엄마와 동생은 폐경이라고 말했고 할머니는 너도 끝났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늘 그렇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할머니는 엄마를 약 올리기 위해서 엄마에게 생리대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캄캄한 얼굴로 ‘그 서랍’을 열었겠지. ‘그 서랍’에 생리대가 있다는 것은 아빠도 안다. 우리 집 화장실 서랍은 세 칸이었고 맨 위 칸에 휴지, 맨 아래 칸에 칫솔, 치약 등의 용품이 있고 그 가운데 칸에 생리대가 채워져 있어 휴지나 치약 등을 꺼내다 실수로 자연스레 열어볼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생리대 어디 있냐, 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일종의 선언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왜 나에게 선언하는가. 무엇을 선언하는가.

할머니가 다시 생리를 한다.

분명 이상하고 기묘한 일을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빼빼아줌마였다. 팥죽을 끓였다며 들고 들어오던 아줌마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자 대접을 든 채로 화장실로 향했고 거기서 할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새벽부터 요상하게 허리가 쑤시더라는 이야기, 성당에 가는 동안 몸이 끈끈하고 짜증이 나 미쳐버릴 것 같더니만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보니 팬티에 피가 묻어 나왔다는 이야기들을 듣는 동안에 아줌마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운영했던 신당에서 잔일을 맡았던 아줌마는 신당 문이 닫긴 뒤 할머니를 얄미워하는 감정을 은근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 호들갑을 떨며 겁을 주거나 필요 이상으로 엄숙한 태도를 취하며 말하는 것이 인생의 작은 낙이었던 할머니는 이 사안을 이야기함에 있어 너무 당황한 나머지 평소의 태도들을 잊어버린 채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 그거 저, 노인네들 종종 그런다고 합디다.

- 종종 그런대?

- 아쉬워서 하는 생리라고, 아쉬워서 한 번 하는 거라고 그러잖아요.

- 뭐가 아쉽나?

- ...

아줌마가 할머니 눈치를 보며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할머니는 늘어진 팬티에 임시방편으로 대놓았던 꽃무늬 손수건을 세면대에 툭 던져놓고 변기에 앉아 생리대를 집어 들었다. 세면대 쪽으로 다가가는 나에게는 니 에미가 빨게 둬라, 하고 또 툭 내뱉었다. 아줌마가 내게 팥죽 대접을 넘기며 “아이고, 노인네가 할 일 없으면 슬슬 빨면 되겠네”, 했다. “내가 할 일이 왜 없어!” 하는 호통을 등지고 나는 팥죽을 부엌까지 운반했다. 자기가 지린 오줌도 더럽다고 엄마더러 빨라는데 그거 묻은 손수건을 빨겠어요? 하는 물음은 입 안으로만 되뇌면서 냉장고 문을 열고 팥죽을 냉장고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아침에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점심 즈음부터 이미 어깨가 무거웠다. 어디든 기어 들어가 잠깐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몸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커피를 내리고 와플을 굽고 설거지를 해치웠다. 고무장갑을 뺀 직후의 끈적이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는데 창밖으로부터 번쩍, 하는 붉은 빛이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가 사라졌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이며 점원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밖을 내다보았다. 번개가 빛을 회수해가며 세상의 소리까지 가져가버린 것처럼 고요해진 가운데 번개의 잔상만이 숫제 암흑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천둥이 치는데도 아무도 놀라지 않다가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놀란 소리를 했다.

무겁고 차가운 소나기는 유리창 너머의 세계를 요란스레 적시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밤이 온 것처럼 즐거워했다. 퇴근할 무렵이 되자 기온도 몹시 내려가서 가을이 온 것 같았다. 누군가 내게 우산 없어요? 묻는 것을 네, 집이 가까워서 괜찮아요, 하고 나니 아무도 그 이상의 염려는 해주지 않았다. 여름이라도 이런 비 맞으면 백 프로 몸살 나지요, 더구나 온종일 찬물을 만졌는데, 하는 입에 발린 걱정 소리를 정말 듣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비를 맞고 뛰어간다는데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져버려서 그냥 터덜터덜 걸어 집까지 왔다.

돌아와 곧장 욕실로 들어서니 욕조에 놓인 작은 대야에 피 묻은 팬티가 담겨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끝까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거실로 나와 할머니 방을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의아해하며 다시 욕실로 들어서려는데, 방문이 열리고 동생이 걸어 나왔다. 동생은 보통 세 시 반에 종례를 마치고 네 시 즈음 현관문을 열었다. 아직 세 시 밖에 안 되었는데 방 안에서 걸어 나왔다는 점도 이상했지만 동생의 차림새가 더 이상했다. 상의는 교복을 잘 갖추어 입고 하의는 잘 때에나 입는 체육복 바지를 대강 걸친 모습을 내가 너무 어리둥절해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자 동생이 마침내 새빨간 입술을 열어 말을 꺼냈다.

- 언니, 생리대 어디 있어?

 

그게 도와 달라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동생이 첫 생리를 시작했다. 침착하게, 이런 때에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나처럼 혼자 안절부절 못하면서 비에 쫄딱 젖은 채로 그 애 손목을 잡고 우왕좌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은 동생을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애도 생리대가 두 번째 칸에 있다는 것쯤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알고 있었을 테니까 내가 서랍을 열어 보여주며 여기 있잖아, 하면 끝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은 변기통에 동생을 앉혀 놓고서 나도 안 입는 위생 속옷을 찾느라 온 서랍을 뒤져댔고 거실에서는 한 번 미끄러진 뒤에야 다시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등 뒤로 화장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할머니 목소리 생각이 났다. 생리대 어디 있냐, 하던 목소리. 나에게 선언하던 목소리.

할머니는 왜 나에게 선언했는가? 어쩌면 일종의 선언이 아니라 일종의 도움 요청이었나. ‘언니, 나 생리해’ 하고 말할 수 없어 ‘생리대 어디 있어?’ 했던 동생처럼 할머니 또한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러나, 말이 안 된다. 이미 겪어본 일이잖아요 할머니. 몇 십 년 동안이나, 생리라는 게 엉망으로 더럽고 불쾌하고 아프긴 해도 전혀 두렵거나 무서워서 도움을 청하고 싶어지는 종류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때가 지나셨지 않나요 할머니,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아닌가? 두렵거나 무서운 일이 아닌가? 몸에서 엄청나게 피가 나오는데.

그러나 할머니에 대해 일말의 따뜻한 연민을 품는 것은 내 마음속에서 금지되어 있다. 할머니는 이미 너무 오래 살았다. 그렇게까지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생기를 쪽쪽 빨아 먹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한국 여성 평균보다 훨씬 앞서 완경했다. 심지어 할머니가 폐경했을 때의 나이보다도 어렸다. 어쩌면 지금 할머니의 생리는 본디 엄마의 것이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전 화장실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동생의 팬티에 생리대를 붙여 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신성한 약속이라도 맺은 것처럼, 눈을 감듯 시선을 내리깔고 내 손의 움직임에만 집중한 채로 판판하고 올곧게 생리대를 붙이고는 곧장 화장실을 나서며 등 뒤로 문을 닫아주었다. 동생이 화장실에 있을 때면 종종 치곤 하던 장난, 불을 꺼버린다든가 문틈에 대고 비명을 지른다든가 하는 장난은 절대로 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도 그렇게 해드렸어야 했나 떠올리면 나는 신성해질 자신이 없어 두려웠다. 생리대가 구겨지고 비뚤게 붙여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들어 할머니 가랑이 사이를 힐끔거릴 것만 같다는 생각.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그려지는 할머니의 성기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정말 본 적이 없었나?

어린 나를 목욕탕에 데려가 때를 밀어주던 사람이 할머니였다. 할머니 배꼽 까지 올 정도로 작았던 나를 어린이용 대야에 넣어 두고 할머니가 자신의 몸을 문지르는 동안에 한 번쯤은 나를 향해 가랑이를 벌리지 않았을까. 허벅지 안쪽의 연한 때를 민다거나 저 멀리 쓸려간 어린이용 치약을 발로 끌어 온다거나 하는 동안에, 다리를 단상에 올리고 거친 발뒤꿈치를 깎는다든가 내가 인형 머리를 뽑아 던져버린 것을 허리를 굽혀 줍는다든가 하는 찰나에 그게 …

이런 생각은 그만.

 

 

대강 샤워를 하고 약국에 가 진통제를 사서 돌아오니 동생은 내 침대에 종이처럼 누워있었다. 동생과 나는 같은 방에 이층 침대를 놓고 위아래로 잤다.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세 칸짜리 집으로 이사 오던 날에 할머니가 짐을 싸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어리둥절해 바라보는 엄마 아빠를 지나쳐 착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이 방을 내가 쓰마, 말했다고 했다. 그 뒤로 책이며 책상이며 짐이 많은 우리가 안방을 함께 쓰고 엄마 아빠는 가장 작은 방을 안방으로 쓰게 되었다. 이층 침대의 일층을 동생이, 이층을 내가 쓰는 것으로 정한 것은 동생이었다. 나야 뭐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내 방을 할머니한테 빼앗긴 순간부터 침대가 일층이든 이층이든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던 것 같지만 엄마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할머니랑 같이 사니까 좋다고 할머니를 껴안고 환호성을 질러대서 엄마는 그게 서운했었다고 했다. 서운했어? 물으니 엄청 서운했어, 대답하기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 나이 열한 살 때의 일이었다.

나야 뭐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내 방을 할머니한테 빼앗긴 순간부터 침대가 일층이든 이층이든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사실 방을 빼앗긴 건 내가 아니라 동생.

동생은 처음엔 어리고 몸이 작다는 이유로 꼭 거지처럼 그날 그날 이방 저방을 옮겨 다니며 이불을 펴는 처지가 됐다. 사춘기에 접어든 내가 맨 처음 동생이 내 방에 이불을 펴는 것을 거부했고 그 다음이 할머니였다. 애가 이를 갈고 발길로 차서 잠을 못 잔다는 말을 매일 아침 식탁을 차리는 엄마 곁에 서서 쏴 붙여 댔다. 엄마가 동생에게 거실에 예쁜 침대를 놓아줄게 제안했지만 동생은 캄캄한 거실이 무섭다고 했다. 무섭긴 뭐가 무섭냐 이제 애도 아닌게, 하고 곁에서 내가 쏴 붙여 댔지만 동생은 그 때 애였다. 그래서 아빠의 말도 이해 못 했던 것이다.

결국 동생의 침대를 부모님 방에 들여놓던 날이었다. 그날 아빠는 엄마에게 화를 냈었다. 부모님 방도 이미 좁았으므로 두 침대는 팔을 뻗으면 손을 잡을 만큼 가까웠다. 아빠가 자꾸 화를 내니까 엄마는 우리 침대에 커튼을 달았으니 괜찮다고 달랬다. 커튼을 달았으니 돼? 아빠가 말했다. 그럼 누워봐.

그때에 동생은 새로 들여온 자기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방문 너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를 내고 있네 가난한 아빠 주제에, 하며 방문 안의 상황을 구경하던 내 눈에 동생의 아무것도 모르는 눈동자가 맞추어졌을 때에 나는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원죄原罪가 들숨 날숨에 섞여 구정물을 호흡하는 느낌이었다. 죄책감 속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동생이 지금까지 내게 한 잘못과 앞으로 할 잘못들에 대해 모두 용서했는데 그 애가 언니는 도대체 화를 안 낸다며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하게 된 것의 시작이 그 무렵이었다. 이층 침대가 내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기도를 듣는 하느님이 된 기분으로 아래 침대의 동생이 떠드는 말을 듣다가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 엄마 몇 시에 퇴근해? 다른 애들은 생리 시작하면 엄마가 케익 사와서 파티 했대.

- 우리도 할 거야. 언니가 엄마한테 말할게.

- 그래.

동생은 몸을 꼬물거리며 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평소에 나는 내 침대와 이불을 끔찍이 생각했다. 혼자만의 방이 없는 상황에서 내 침대 위의 공간은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의 마지막 섬이자 조각배였다. 그러나 내 배에 탄 타인을 밀어낼 수 있는 건 배가 육지에 정박해있을 때뿐이다. 지금 저 애에게 세상은 망망대해일 것이고 망망대해에서 배에서 떨어지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나는 내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올라가 곁에 누웠다. 내 팔이 동생 팔 위에 겹쳐지자 동생은 팔을 빼내 내 팔 위에 얹었다.

- 언니 근데 할머니는?

- 할머니?

- 할머니도 생리를 시작했잖아.

 

 

구십 노인의 생리가 다시 시작된 것과 열네 살 아이의 초경이 어떻게 똑같냐는 것이 엄마의 의견이었고 그래도 생리대를 찬 할머니를 앞에 앉혀 놓고서 내 초경만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를 자르는 일은 못 하겠다는 것이 동생의 입장이었고 그렇다고 노인네가 잠들기를 기다려 방구석에서 독립운동 하듯이 축하해야겠느냐, 우리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하는 것이 빼빼아줌마의 말씀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생리라는 것이 케이크에 초를 꽂아 축하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 의문스러운 마음이었고 여러 입장들의 가운데에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한 ‘아빠의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엄마의 노선을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내 생리 예정일을 삼일 앞둔 상황에서 무척이나 귀찮고 화가 나는 상황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벌써부터 붓고 둔해진 다리를 주먹으로 두어 번 내리쳤다. 어서 이 모든 일이 끝나고 초콜릿 케이크나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가 있어야 했다. 저녁 다섯 시가 지났지만 엄마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언제 올지도 몰랐다. 케익이니 파티니 하는 말, 할머니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고함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할머니는 애초에 집에도 없었으므로 나한테 그렇게 소리를 지를 것까지는 없었지만 관성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엄마의 높은 소리를 듣고 나니 식은땀이 났다.

- 너도 들었지? 할머니한테 말하지 말래.

- 싫어.

- …너 지금 싫다고 했어?

- 싫어 난 할머니를 사랑하거든.

전화가 끊긴 뒤 줄곧 휴대폰에 두고 있던 시선을 침대 위의 동생에게로 향했다. 동생은 천장을 향해 누운 채 눈만 깜박였다. 여드름으로 불긋불긋하던 얼굴이 창백해져 낯설었다. 자꾸 보다보니 할머니 얼굴이 겹쳐졌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많이 닮은 편이었다. 엄마는 그걸 끔찍하게 생각했다. 큰 잘못을 저지르면 목소리를 떨며 너 지금 니 할머니랑 똑같애, 했다. 불똥이 튈까 되도록 숨죽여 있던 내가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하며 끼어드는 것은 오로지 그 때였다. 엄마가 또 딸을 임신했을 때에 할머니는 애가 떨어지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 넌 어떻게 할머니를 사랑할 수 있어? 엄마를 사랑하면서.

- 언니 나는 엄마가 불쌍한 게 싫어. 엄마는 너무 압도적으로 불쌍해서 주변 사람들을 다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애. 내가 치마를 입고 죽어있다 해도 집에서 불쌍해지는 건 내가 아니잖아. 그건 이상한 일이지만.*

그 말을 들으니까 동생이 내 방에서 교복 치마를 입고 죽어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 수도 있을까 저 애가, 슬픔에 아찔한 와중에도 내가 ‘우리 방’이 아니라 ‘내 방’ 하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자 입에 침이 말랐다.

- 불쌍한 게 싫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불쌍하다고만 생각해. 그래야 맞아.

- 언니,

- 엄마는 불쌍해지고 싶어서 불쌍해진 게 아니야. 아빠가 가난해지고 싶어서 가난해진 게 아니듯이.

- 나는 그걸 잘 모르겠어.

아직 어려서 그래, 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동생은 어린가? 만약 아빠가 엄마에게 누우라는 말을 지금 한다면 동생은 아마 알아들을 것이고 자식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게 다른 누군가의 아빠가 아닌 자신의 아빠라는 것을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면 동생은 어리지 않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제는 생리도 한다. 하지만 동생은 어리다. 생리를 하는데도 어리니까 불쌍한 것이고 어린데도 생리를 하니까 불쌍한 것이다.

- 할머니 보고 나가라고 했어야지. 사장보고 돈을 더 달라고 했어야지. 근데 엄마 아빤 언제나 우리한테만 말하잖아. 할머니가 밉다고 돈이 없다고, 그래놓고 우리가 할머니를 미워하면 우리한테 화를 냈지 자기들도 언젠가 할머니처럼 될 테니까 그런 거야.

- …

- 언니 사실 거짓말이었어. 나 할머니 안 사랑해. 살면서 할머니가 보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거든. 그치만 할머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하고 죽으면 지옥 갈 것 같아서 해본 말이야. 나 지금 진짜 죽을 만큼 아프거든.

번개가 친다. 회상들이 맴돌며 아프게 부딪히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새빨갛게 비어버린다. 동생도 그랬던 모양인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본다. 천둥이 울리기 전에 번개가 몇 차례 더 터지고 빗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바람이 부는 것을 좋아하는 동생이 팔을 뻗어 창문을 조금 열자 비린 물 냄새가 밀려든다. 나는 반사적으로 피를 떠올린다. 피가 묻은 팬티, 빨지도 않고 욕조에 내팽개쳐둔…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하며 나는 할머니가 팬티만 남겨두고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생각했다. 어디로든 가버린 것일까. 그런 거라면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꽃가게는 꽃들을 통에 담아 가게 바깥에 내놓았다. 초록색 싸구려 통에 장미며 프리지아 수국 같은 것들을 가득 꽂아서는 길거리에 턱턱 늘어놓는 것이었다. 바람에 꽃통이 통통 쓰러지면 주인은 그걸 그저 다시 세워놓고는 그만이었다. 또 쓰러지면 또 세워놓고, 다시 쓰러지면 다시 세워놓고. 어릴 때엔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할머니도 그랬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서 엄마가 나를 내보내면 꽃집 앞으로 먼저 달려가보곤 했다. 신당은 그 다음이었다. 할머니는 대부분 신당에 있었지만 빨간 신복을 입은 할머니를 마주하는 순간을 잠시라도 미루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세찬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뜸했고 꽃들만 물을 머금어 맑았다. 우산을 들고 장미들을 내려다보니 장미들이 고양이처럼 나를 마주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빨개질 수가 있었던 것이냐고 동생은 어릴 때에 자꾸 물어오곤 했다. 나는 몰랐으므로 대답을 않고 걸었다. 동생은 꽃통들이 늘어선 거리 가운데 털썩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말이 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여서 여느 때처럼 들쳐 업기 위해 다가가는데 어느 날엔가는 꽃집 아주머니가 언니 너무 속 썩이지 말라며 그 애 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들려주었다. 동생과 나는 둘 다 당황해서 엉겁결에 손을 잡고는 집까지 달려갔는데 그 와중에도 한 손에 장미를 꼭 쥐고 약간 뒤쳐진 채로 뒤뚱뒤뚱 달리는 유치원생 동생의 얼굴이 너무 웃기다는 생각이었다.

동생은 그날 들고 온 장미를 할머니에게 주었다. 나는 동생이 그 장미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동생이 원체 할머니를 잘 따랐다고 대답했다. 동생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장미를 건네받던 표정은 지금도 생생했다. 할머니가 예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가 꽃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하자 엄마는 단순히 꽃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 느이 아빠 생각이 나서 그런 걸 거야.

엄마가 빨래를 개며 설명한 이야기란 대강 이런 것이었다.

할머니가 아빠를 임신하고 배가 젖가슴을 마악 앞설 무렵 할아버지는 병으로 죽었다. 한국전쟁 때 북에 처자식을 두고 내려왔다는 할아버지는 애초에 할머니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었고 별다른 애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땡전 한 푼 남기지 않고 죽어서 할머니는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만 먹고 자게만 해준다는 조건으로 한 집에 자기를 식모로 팔았다고 했다. 그 뒤로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남편이 갈 때 칵 목 매달고 같이 죽어버렸으면 세상 편했을 것을 뱃속의 아빠 때문에 연명하였다고 할머니가 직접 이야기했다고 했다. 일하랴 아이 키우랴 죽어라 살았지만 그렇게 키워 놓은 아버지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주인집 돈을 훔쳐 달아나고 말았다. 할머니는 당연히 흠씬 두들겨 맞고 알몸으로 쫓겨났고 성치 않은 몸으로 울며불며 아빠를 찾으러 다녔다고 했다. 아직 거리에 간간히 눈이 흩날리는 초봄이었다고 했다. 아빠는 아빠대로 죽을 노릇이었다고 했다. 가지고 나온 돈은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거리의 건달들에게 벌써 뜯기고는 강을 헤엄쳐 건너려다 쫄딱 젖은 채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강을? 헤엄쳐서 건너려고 했다고? 내가 묻자 엄마는 정말이라고 했다. 열다섯 살이었대잖아, 지금으로 치면 딱 중2야 중2.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싸래기눈이 날리는 봄밤에 알몸의 어미와 생쥐처럼 젖은 자식이 재회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지지만 자식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고 하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왔던 길을 되돌아오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동백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왔었다는데 그걸 쥔 주먹으로 눈을 가리고 할머니 앞에 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화도 안 나고 밉지도 않아서 할머니는 그저, 그 꽃 나 주면 엄마가 다 용서하마, 말했고 아버지는 주춤 주춤 다가와 그걸 건네주었다고 했다. 4월이라 동백이 지천인데 아버지가 꺾어 온 것은 그 가운데서도 제일 못나고 작은 것이었다고. 그 뒤로 기적같이 신이 들어 점이라도 봐주고 굿이라도 해주며 살았으니 그게 복이 있는 꽃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말 못난 꽃이었다고 할머니가 깔깔 웃었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할머니랑 언제 그런 얘기까지 했어, 하고 묻자 엄마는 원래 할머니랑 얘기 많이 해, 너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잘 다녔어, 하고 대답했다. 엄마 할머니 싫어하잖아. 내 말에 엄마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내가 왜 할머니를 싫어해. 그냥 가끔 미운 거지. 할머니는 네가 싫어하잖아 옛날부터.

엄마가 할머니를 안 싫어하는데 내가 할머니를 왜 싫어해요, 내가 묻자 엄마는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되물었다.

 

 

장미를 두 송이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이 할머니 방 앞에서 기웃거리다 내 눈을 봤다. 장미를 계산하며 물으니 꽃가게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못 봤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이요? 내가 묻자 낮엔 봤지, 했다. 낮이 몇 시인데요, 묻자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애가 눈썹을 끌어올려 눈을 더 크게 만들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동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베란다로 가서 들이친 비를 닦아내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급히 달려가 문을 열자 아줌마가 문 밖에서 할머니 계시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요, 대답하니까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부스스한 파마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작은 물방울들을 나는 응시했다. 아까 전에 자꾸 묻기에, 하고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 아쉬워서 한 번 하는 생리라더니, 뭐가 아쉬워서 하는 생리냐고 자꾸 묻기에 내가 홧김에 말을 해버렸거든. 저승 가기 아쉬워서 하는 생리라고, 노인네 지금 가셔도 호상이니 너무 맘 쓰고 그러지 마시라고 농담 한 마디 했는데 쌩하니 가시더라, 정말 안 오셨냐.

- 안 오셨어요.

- …알았다.

아주머니는 열없이 돌아갔고 내가 현관문을 닫고서 방문을 여니 문 가까이에 동생이 서있었다. 왜 서있어, 누워있어, 하자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자기 침대로 가서 누웠다.

케이크를 사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서 나는 다시 외투를 입었다.

 

 

빗방울이 우산에 부딪혀대는 소리가 너무 크고 빨랐다. 우리 동네 빵가게는 딱 세 개였는데 케이크는 다 비슷했다. 케이크 뿐 아니라 다른 빵들도 다 비슷했으므로 굳이 가게가 세 개 있어야 할 이유는 내 입장에선 없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집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게 빼빼아줌마가 지금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였다. 유리문 앞에 서서 얼쩡이니 아줌마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연결 버튼을 눌렀는데 손이 젖어있어 잘 받아지지 않아 한참만에야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 언니 방금 성당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할머니가 내일 성당 못 간다고 전화했었대.

- 왜?

- 오늘 다른 기도해야 돼서, 내일 성당 가면 신들끼리 싸움 나고 집에 우환 생긴다고 다음 주부터 나간다고 그랬다는데 언니 혹시… 거기 가봤어?

거기,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휴대폰을 주머니에 대강 쑤셔 넣고 약수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빨리 움직이자 우산이 바람에 막히는 것을 낑낑대다가 우산을 접었다. 잠깐 접었다 다시 펴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접고 보니 움직임이 너무 수월해져서 그냥 그대로 뛰었다. 집에 정수기가 생기기 전에 우리 집은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먹었었다. 약수가 나오는 바위가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거북이 약수터였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 산을 거북이산이라고 불렀다. 거북이산에는 거북이 신이 살고 있고 기도를 잘 하면 거북이 신이 장수하게 해준다는 말을 이 동네 사람이면 다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주말이면 물 길러 가는 할머니를 따라 약수터에 가곤 했었으니까 거북이산이 익숙하고 편안했는데 지금은 약수터 입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헤맸다.

원래는 그냥 흙길이던 입구에 계단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단은 나무로 만든 것이라 미끄러웠다. 처음 미끄러질 때에는 충격이 컸지만 계속 휘청이다 보니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아서 꾸역꾸역 올라갔다. 낯익은 거북이 머리가 보이자 옛날 일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에 뭘 잘못 먹고 배탈이 나서는 혼자 거북이산에 올라가 약수를 마시고 거북이 꼬리 쪽 등딱지에 기대어 앉아 있었더랬다. 햇빛이 따뜻해서 바위가 달궈지니까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저녁이 되어도 내가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가 학교에 전화를 했고 학교에서는 당연히 집에 보냈다고 대답했다. 아주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돌아가던 때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비몽사몽간에 할머니 등에 업혀 돌아오는 동안 길가의 집들이 다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보였던 것만 또렷할 뿐이다. 다음 날 학교에서 반성문을 썼던 것도.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나니 거북이바위 아래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본인이 가장 아끼는 흰 치마가 진흙 범벅이었다. IMF가 터져 아버지가 실직한 상황에서 그것 사줄 때까지 밥 안 먹겠다고 버텨서 엄마가 정말로 울며 사드렸다는 고급 치마였다. 걸어가 우산을 펴서 씌워드리니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나 좀 잡아다오 한 마디 없이 손잡이를 붙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 어떤 건 벌써 단풍이 들었네요.

- 떨어질 일만 남았지.

- 할머니 죽는 게 왜 싫어요?

- …

- 죽으면 편하잖아. 아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 … 지옥 가는 게 무서워서 그런다.

- 왜 지옥에 가요. 신령님 장군님이 다 할머니 친구에 이젠 성당도 다니시면서.

- 뱃속에 든 애를 죽여서 나는 지옥으루 갈 거야. 죽기가 너모 무서워…

언니, 할머니가 그 집에서 맞기만 했으면 왜 알몸으로 쫓겨났겠어. 언젠가 동생이 물어왔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동생은 그때 어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울기 시작하려는 표정을 하기에 급히 말을 꺼냈다. 할머니 집에 장미 있어요. 장미꽃? 할머니가 되물어왔다. 그냥요, 대답하자 할머니가 성모님 앞에 놔드리면 좋아하시겠다며 웃었다. 언젠가 실수인 척 내가 깨부숴버린 적이 있어서 엄마가 다시 사왔던 마리아상과 꽃병.

할머니를 집에 들여보내고 난 뒤에 다시 빼빼아줌마의 빵집에 가서 초콜릿 케이크를 샀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아줌마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막 걸어 들어가는데 동생이 달려 나왔다. 왜? 하고 물으니 그냥, 하고 웃었다. 할머니는 주무셔, 하기에 안 물어봤는데? 하고 대답하고는 걸음을 옮기자 동생이 집에 들어가기 싫다며 옷을 잡아끌었다.

젖은 옷으로 갈 곳이 없었기에 일단은 비를 피해 경비실로 들어갔다. 경비실이긴 하지만 우리 아파트엔 더 이상 경비가 없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장판을 깔고 새로 도배를 하고 난로 따위를 들여놓아 아파트 노인들의 간이 노인정으로 쓰는 곳이었다. 엄마가 할머니 등쌀에 못 이겨 이곳 도배를 맡았을 때에 나도 거들었으니까 처음 들어와 본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자리를 잡고 앉으니 생각보다 비좁았다. 할머니가 골라온, 붉은 꽃이 잔뜩 나열된 포인트 벽지를 사방에 붙여두어 전체적으로 혼란했으므로 차라리 어두워진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좋은 점이 있다면 여기 저기 크고 작은 거울이 매달려있어 일부러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아파트 주변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네들이 어떤 집 여편네 방귀만 크게 뀌어도 다 안다더라 하는 얘기는 이래서 나오는 거였다. 동생이 이 거울 저 거울을 만지며 캄캄한 우리 집 안방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흘끔 쳐다봤다. 엄마는 아직이다.

촛불에 일렁이는 동생의 얼굴은 더더욱 할머니와 닮아 보여,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는 건 금기이다. 금기, 하는 단어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져서 꼭꼭 되씹으며 케이크의 비닐을 벗기고 묻어나온 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아 입에 넣었다. 언니 그러니까 꼭 할머니 같다. 동생은 아무런 악의 없이 웃었다. 그 주위로 붉고 붉은 꽃무리가 흡사 그 애를 질식시킬 목적으로 증식해가는 것만 같았지만 동생은 편안해보였다. 붉은 꽃이 가득 피어있는 꽃밭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는 것처럼. 저승 어드메 서천꽃밭의 남쪽 가득 피어있다던 붉은 꽃이 꼭 이런 모양일까. 그 꽃밭의 붉은 꽃은 장수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 꽃밭에서 꽃들을 지킨다는 이공이 처음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꽃감관 살러 갈 때 그의 부인 원강암이는 아이를 배고 있었다고 했다. 이승에서 저승까지의 먼 길이 임신한 몸으로 버거웠던 원강암이는 아이 때문에 더 갈 수가 없으니 부잣집에 자기와 아이를 종으로 팔고 훌훌 가시라고 했고 이공은 원강암이를 삼백 냥에, 뱃속 아이를 백 냥에 팔고 혼자 서천 꽃밭으로 갔다. 부자가 몸을 탐하는 것을 간신히 모면해가며 원강암이는 아들을 키웠고 그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찾으러 떠났다. 후에 그것을 알게 된 부자는 화를 내며 원강암이를 죽였다. 훗날 서천꽃밭에서 아버지를 만난 아들이 그에게 도환생꽃을 받아 어머니를 살려내는데 자그마치 세 토막 났던 원강암이는 “아이고 봄잠 오래도 잤다”며 깨어났다고. 내가 그 아들의 ‘신산만산할락궁이’라는 요상한 이름까지 기억하게 된 것은 원강암이의 삶이 할머니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스스로 심방이기를 포기한 후에도 성당에 갈 준비를 하며 자주 이공본풀이를 흥얼거렸다. 나이가 들수록 채 끝맺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날이 많았지만 언젠가 엄마가 미혼모로 혼자 아이 키우다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왔을 때에는 엄마를 안고 완창을 하며 원강암이도 후에 꽃감관이 되어 서천꽃밭을 지키는 신으로 영원히 산다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흐느끼며, 너무 늦잖아요, 할 뿐이었다.

그날 내가 성모마리아상과 그 앞에 놓인 꽃병을 깼다. 죄책감 때문인지 치미는 감정 때문인지 정말로 벌을 받은 건지 열감기를 호되게 앓던 그날 밤 할머니가 가만히 들어와 내 이마에 손을 짚어보고 갔다. 침대에서 숨죽여 울다 거실로 나가보니 반쯤 열린 할머니 방 문틈으로 흰 벽지가 달빛을 받아 창백했다. 가만히 서서 따가운 눈을 깜박일 때마다 자는 가족들 모르게 벽지 위에 붉은 꽃들이 자라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어도 두드러기처럼 자꾸만 피어나던 붉은 꽃잎들. 언니, 언니, 뭘 보고 있어, 하는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돌아보는 순간 번개가 치고. 세상이 지옥처럼 붉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붉다는 건 산다는 것이다. 오래도록 산다는 것.

동생이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람이 밀려들어 촛불을 꺼버렸다. 한순간 고요하고 어두워진 가운데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여자가 된 걸 축하해. 내가 말했다. <끝>

 

1. 소설의 제목은 M.H.Kinston의 소설 『여인무사(The Woman Warrior)』의 한 대목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2. 소설 안에서 *표시 된 문장은 김상혁의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에 수록된 「학생의 꽃」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