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문화로 연대하는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가난하다’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청년예술가. 매년 5만 명에 이르는 예술계 전공 대학생이 배출되지만 이들 중 다수는 생계유지 문제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예술가의 꿈을 주저하게 된다. 이렇듯 현실과 꿈 사이의 간극에서 고립돼 가는 청년예술인들이 ‘청년예술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대했다. 연대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가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술, 계속할 수 있을까?

클래식부터 연극, 국악, 미술, 사진까지 다양한 분야의 청년예술가들이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을 위해 한 데 모였다. 이들이 처음 모인 곳은 작년 5월 ‘소셜아트페스티벌’ 중 한 포럼이었다. ‘청년예술가의 현실’을 골자로 발제됐던 1부 내용을 토대로 2부에선 토론이 진행됐고, 토론의 가장 큰 화두는 ‘청년예술가 연대의 필요성’이었다. 현재 청년예술가 네트워크의 대표인 송상훈 씨의 ‘청년예술가들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선 서로 연대해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는 발제에 토론 참가자들도 동의했고 연대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의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송 대표는“이전엔 청년예술가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자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사회로부터 예술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사회에서 예술이 경제적 부가가치를 형성하는 것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공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예술가의 생계를 지원하는 문화정책이 부족할 뿐더러, 경력 위주로 지원사업이 이뤄지는 탓에 갓 발을 내디딘 청년예술가는 문화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 송 대표는 “지원을 받기 위해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창작물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에 청년예술가들은 자기검열을 하거나, 자신의 신념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좌절에 빠지게 된다”며 청년예술가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여러 청년예술가의 목소리가 보태져 지금의 청년예술가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작년 8월부터 포럼의 발제자들을 중심으로 준비위원회가 꾸려졌고, 청년예술가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탄탄한 기초작업이 시작됐다. 준비위원회는 청년예술가의 권리를 확보하고 주체적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는 것을 기조로 세운 후 네트워크를 세분화했다. 미술, 음악, 사진, 기획 네 분과와 사무국으로 이뤄지는 네트워크는 정기적인 예술활동과 학술활동을 벌여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예술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네트워크 소속 신주욱 일러스트레이터는 “개인적으로 작업하면서 표현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조직적인 예술가들의 움직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며 “청년예술가 네트워크를 통해 이것들이 완화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행동으로 일궈낸 예술의 공공성

청년예술가들은 사회에 권리를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도맡겠다며 나섰다. 이들은 네트워크 내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술활동을 통해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탐구한다. 학술활동에서 이뤄지는 강연과 토론은 현대 예술시장의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예술 생산의 모색과 예술의 사회적 의미 고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월 1회 열리는 원탁회의에선 각 분야의 청년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에 시대성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자기 예술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는가’ 등에 대해 논의한다. 지난 9월엔 서해성 교수의 한국예술사 강연을 통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의 예술을 돌아보고, 현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의 본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오늘날 예술가로 살아남기’를 주제로 강연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 씨는 “우리나라의 예술계 교육 구조는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며 “청년예술가 네트워크의 학술활동은 예술과 사회가 분리되는 것이 아닌 상생한다는 것을 청년예술가들이 스스로 인지하는 기회가 된다”고 학술활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찰을 거듭한 청년예술가들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매주 ‘예술행동’을 연다. 무언극, 마임, 사진전, 라이브페인팅, 인디 공연 등 다양한 장르로 꾸며진 이들의 예술행동은 부조리로 얼룩진 현대사회를 꼬집고 변화시키고자 주로 거리에서 열린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이동식 앰프를 들고 자리를 잡은 이들은 시를 낭독하며 행위예술을 벌이기도 하고, 시민들과 함께 즉흥적으로 라이브페인팅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송상훈 대표는 “예술의 진입장벽을 낮춰 더 많은 시민들과 마주하고, 공간의 제약을 떠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결합할 수 있다”고 거리에서 예술행동을 여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5일엔 ‘박근혜 하야 1차 예술행동’이 광화문 광장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이날 예술행동에선 청와대를 그려 찢어내는 신주욱 작가의 라이브페인팅 퍼포먼스, 청년사진가들의 ‘우주기운 사진관’ 등 다양한 볼거리로 예술행동이 진행됐다. 신주욱 일러스트레이터는 “모든 장르의 예술은 큰소리로 외치고 물리적으로 싸우는 일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예술이 부조리한 현대 사회의 현실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예술행동이 가지는 가치를 설명했다.

"예술인들이여, 시대의 횃불을 밝혀라!" 지난 19일 청년예술인들이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예술행동을 펼쳤다.

 

빛을 발하는 연대의 힘

청년예술가 네트워크는 권리를 요구하는 예술가 개인의 목소리를 키우는 확성기 역할을 한다. 청년예술가들이 모여 청년예술인 지원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계속해서 건의한 끝에 지난 8월 서울시에서 내놓은 ‘서울시 예술인 플랜’에 ‘최초예술인 지원사업’이 새로 생겨났다. 최초예술인 지원사업은 공공지원금을 받은 적이 없는 예술인을 우선순위에 둔 지원사업으로 청년예술인에게 창작 지원금을 지원하고 전문가 멘토링, 홍보 마케팅, 작품발표 기회 등을 제공한다. 송상훈 대표는 “개인의 목소리로는 이뤄낼 수 없는 일”이라며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니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예술인 지원사업은 기성세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청년예술가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모아 대안을 만들어 간 첫 결과물이다.

이들은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권리도 얻어냈다. 2014년 지상에 횡단보도가 생기면서 연세대 앞 지하보도가 쓸모 없어지자 서울시에선 이곳을 재건축하기로 결정했다. 정보를 포착한 청년예술가들은 이 버려진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회색 시멘트 벽, 지나다니는 이 하나 없던 지하보도에 신진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고, 계단을 객석 삼아 클래식 공연부터 무용까지 음악 소리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다. 이후에도 공간활용도에 관한 포럼을 가지는 등 부단한 노력 끝에 공간설계 기획단계에 청년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반영됐고, 신촌의 지하보도는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놀이센터’로 거듭났다. 버려진 공간이 특정한 이익단체가 아닌 청년예술가들의 공공의 장으로 사용되면서 청년예술가 네트워크의 슬로건인 ‘공공성에 기반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 수행’이 실현된 셈이다.

개인의 존재 가치는 외면당하고, 무한경쟁 속에서 ‘아트스타’가 되길 강요당하는 청년예술가. 게다가 이들은 거대 문화 자본을 통한 이윤 창출의 도구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며 자신들의 존재 가치와 권리를 외치는 청년예술가들의 연대에 더 많은 목소리가 보태져 공정하고 건강한 예술생태계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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