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우수작
제58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우수작
  • 대학신문
  • 승인 2016.11.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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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방

오석화(전기정보공학부·10)

먼 옛날 북국의 시계수리공 발트 씨는 저녁별 무렵 자신의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시계를 고치던 작은 방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옛날과는 면식이 없는 사람들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문을 열면 전등 아래 문을 열면 책상 위 문을 열면 뚜껑 열린 시계들과

무엇을 더 갖추어야 따뜻한 방이 되는지를 안내문은 안내하지 않는다 오차만을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왕국 공구처럼 나란히 늙어가던 아내가 있었을까 대신해 울음 짓던 새들이 있었을까 나는 끝내 성안에 내팽개쳐진 측량사의 기분으로 이상하게 높은 창과 그의 거리를 가늠해본다

부유하진 못했으나 실력과 은둔벽으로 발트 씨는 고장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시계를 맡고 돌려주는 일만은 본인이 하기를 고집했던 그는 그때만 문에 덧낸 문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아무리 높고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도 그를 문밖으로 유혹하지 못했으므로 발트 씨의 얼굴을 보려면 그보다 강한 힘으로 바늘을 굽힐 줄 알아야 했다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도 그는 징집에 응하지 않았고 왕은 그를 체포하도록 명했다 소문을 앞질러 도착한 병사들이 방문을 부숴보니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어린 딸이 방에서 난 마지막 소리를 똑똑히 기억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흔한 비유라고 믿었다 허나 이제는 이 고장에서 때때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설명이 이어졌다

그가 자취를 감춘 일을 애석해한 것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계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슬픔의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덕분에 이 방에서는 발트 씨가 태엽을 감고 저 방에서는 발트 씨가 한숨을 쉬었다 어떤 방에는 발트 씨의 안경이 걸려 있었고 모든 방에 발트 씨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중에서 이 방은 발트 씨의 체온이 남은 방입니다, 라며 안내문이 맺히고서야 나는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손목을 들어보니 방위를 잃은 바늘들이 오래도록 헤매고 있다 그의 농담은 언제나 마음에 들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중얼거리며 나서면 귓가에 똑, 똑 가느랗게 듣는 소리

문을 열면 그는 없고 다시 문을 열면 따뜻한

 

*envy의 곡 ‘A warm room’에서.

 

삽화: 박진희 기자 jini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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