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욱 박사과정(언론정보학과)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다. 도통 근본을 알 수 없는 웬 아줌마와 그 일당들이 몇 년간 작당해 벌인 일들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처음에 특정인의 비리와 비위에 맞춰졌던 비판의 칼 끝은 이내 관련 기업, 기관을 넘어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향했다. 대자보와 시국선언, 광장의 촛불로 실체화된 분노는 현재의 권력에 한없이 너그럽고 양순했던 검찰조차 긴장하게 한 것처럼 보인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는 분명 저널리즘의 승리다. 의혹에 대한 정치권의 잇단 부인과 개헌 논의로 이슈 자체가 지워져버릴 찰나, 문제의 태블릿 PC에 대한 기사 하나가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켰다. 숨겨진 권력자와 제도의 부패와 추문을 파헤쳐 보도하는 ‘먹크래킹 저널리즘'(muckracking)의 완벽한 전형이다. 데이터 저널리즘, 스트럭처드 저널리즘, 로봇 저널리즘 등 대규모 데이터와 컴퓨터의 활용에 저널리즘의 미래가 있다고 간주되는 시기에도 발로 뛰는 전통적 취재 기법이 여전히 유용하고 강력함을 보여줬기에 더욱 반갑다. 한때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던 사람은 검찰 수사를 받을 때에도 얼마나 여유로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진 한 장도 마찬가지다. 수 시간의 잠복 끝에 수백 미터 떨어진 빌딩 꼭대기에서 포착된 이 ‘결정적 순간’은 분명 올해의 보도사진으로 선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승리가 ‘떼거리 저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국 저널리즘의 고질적 문제 역시 드러내고 있다. 명민하고 깊이 있는 몇 개의 보도가 현재의 정국을 이끌었고 이제는 정치를 다루는 한국의 모든 언론사가 여기에 뛰어들어 단독, 특종기사를 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호지세(騎虎之勢)요, 이슈의 광풍이다. 이슈에서 소외되지 않고 독자에게 외면받지 않기 위해 무리한 기사도 마구 써낸다. 기자와 데스크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의혹’이란 면죄부를 달고 마구 생산된다. 이대로 내보내기엔 뭔가 찜찜하다는 걸 기자가 알면 그나마 다행이다. 외부의 칭찬에 도취돼 냉철함을 잃고 모든 사안을 이 이슈와 엮어내 ‘먹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더 악질적이다. 최근 한 고위공직 내정자를 종교적 성향이 무교(巫敎)에 맞닿아 있다고 맹렬히 공격한 것이 이런 사례다. 개인적인 종교에 높낮이를 두고, 사상검증을 하자는 이야기인가.

결국 뉴스 소비자의 냉정함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승리를 이끌어낸 보도를 고양한 것은 분명 진실을 바라는 뉴스 소비자들이었다. 하지만 경쟁에 치받친 보도들을 양산하는 기반이 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분노와 카타르시스의 대상을 찾는 뉴스 소비자들이다. 냉철하게 분노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스스로에 도취돼 자제력을 잃은 기자와 기사를 비판할 수 있는 뉴스 소비자들이 언론사들이 보도경쟁에 함몰됐을 때 그들의 고삐를 틀어쥘 수 있다. 언론사가 아니라 뉴스 소비자가 호랑이다. 언론사들은 호랑이에 올라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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