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두 번째 사과문 발표에서조차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첫 번째 90초짜리 녹화 사과에 쏟아진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두 번째 사과문 발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앞에서 했지만, 이 중대한 시국에도 대통령에게 질문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기자들은 ‘인간 병풍’ 노릇만 하고 말았다.

질문을 받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속사정이야 빤하다.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사람에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질문을 받는 일이란 공포 그 자체다. 숨기고, 피하려는 사람에게 질문은 가시철망이지만, 옳은 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질문은 허방을 짚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소중한 지팡이가 된다. 언론의 질문할 권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14일 자 『대학신문』에 실린 제59대 총학생회 선거 관련 기사들에서는 이 질문의 힘이 읽혔다. 양대 선본 「U」와 「닿음」의 정책이 시흥캠퍼스 등 학내 현안과 관련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짚은 해설기사는 선거의 주요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다. 각 선본의 정책간담회를 스케치한 기사에서도 양 선본 입후보자들이 피해가고 싶어 할만한 질문들과 그 답을 정리한 것이 돋보였다.

한국 사회가 국민의 주권을 대행할 사람에게 질문하고 검증했어야 할 것들을 하지 않아 겪고 있는 현재의 파국을 생각해 본다면, 학내 유권자들의 질문을 대신하는 총학생회 선거 관련 기사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14일 자 『대학신문』에서 다뤄진 질문은 ‘지금, 바로 여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두 면에 걸친 기획기사 ‘유럽의 극우, 대중의 대변자인가 약자의 압제자인가’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브렉시트 이후 또 한 번 국수적인 포퓰리즘의 득세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시의적절하고 심층적인 읽을거리였다. 2차 대전 직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 극우정당의 연원과 이들이 유럽 정치의 중앙무대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 21세기에 보이고 있는 변화 등을 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들어 유럽 극우 정당을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인 밑그림을 제시해줬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과연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어디로 갈 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미래에 대한 내다보기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되짚어보기도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일제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엘리트층이 전부 증발해버리고, 남의 눈치만 보는 지배층만 남았다”는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의 한국 기득권층에 대한 일갈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그리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2016년 11월 14일 자 『대학신문』이 기록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은 무엇보다도 1면에 실린 11월 12일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사진과 서울대 교수 728명의 ‘헌정유린 사태를 염려하는 서울대 교수 성명서 발표’ 관련 기사일 것이다. 서울대 구성원들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했는지를 이 기사와 사진만큼 명료하게 증언할 것은 없을 것이다. 

정은령 강사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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