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제8차 탄핵무효집회와 제11차 촛불집회

지난 1월 7일 서울 시내에서는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두 집회가 열렸다. 삼성역에서 열린 제8차 탄핵 무효 집회와 광화문에서 열린 제11차 촛불 집회를 『대학신문』에서 찾아가봤다.

삼성역 앞을 가득 메운 태극기, 제8차 탄핵무효 집회

이른 오후의 지하철 안은 무척 한가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난 1월 7일 2호선 열차 내부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성으로 가득 차있었다. 갈색 무스탕을 입은 한 중년 여성은 “문재인과 박원순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공산화 된다”며 소리를 질렀고, 열차 내에는 격앙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삼성역에 도착하자 “탄핵 무효화를 위해 가자”라는 구호와 함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열차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왔다. 이들이 향한 곳은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가 주최한 제 8차 탄핵무효집회였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3만 2천명, 주최 추산 102만 명이 모여 헌법재판소에 탄핵기각을 호소했다. 집회가 벌어지던 삼성역 5번 출구 곳곳에는 ‘계엄령을 선포하라’ ‘역대 가장 깨끗한 대통령 박근혜’와 같은 플래카드가 설치돼 있었으며, 참가자들은 손에 태극기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삼성역 5번 출구 앞 도로에 탄핵 무효 집회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탄핵 무효 집회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고령의 남성이었으나 조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들과 2-30대 청년들도 드물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냐는 질문에 서울에서 온 이원규 씨는 “보통 SNS를 통해 모이거나 사비를 들여 광고를 게재한다”고 설명했다. 종교인들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동료 교인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는 김은혜 씨는 “박사모에서 교회에 공지를 띄우면 교회에서 집회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집회 장소에 위치한 트럭에서는 집회 중간 중간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또 삼성역 5번 출구 바로 앞 인도에는 행진의 선두에 설 성가대의 지원자를 받는다는 홍보문구와 함께 성가대 의상이 수백 벌 나열돼있기도 했다.

보통의 집회와 달리 탄핵무효집회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10명 내외의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거들기도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분위기였다. 대화의 주제는 어려운 경제 현실과 북한의 도발, 안보 등에 집중돼있었다. 탄핵 무효 집회 참여가 이번으로 네번째라는 진우진 씨는 “요즘 중국에서 물건을 가져가지 않아 공장이 부도가 났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 이유도 있지만, 중국에서 촛불집회를 보고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60대 이재용 씨는 “젊은 세대들은 굶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난의 무서움을 모른다”며 “1년 후의 대선을 기다리면서 경제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얘기 했다. 한국 전쟁을 겪었다는 한 참가자는 “국정이 혼란할 때 북한이 쳐들어올 것이 무섭다”고 말하기도 했다.

“mass media=liar”라는 피켓을 든 참가자가 눈에 띈다.

언론을 향한 이들의 불신도 엿볼 수 있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언론은 거짓말쟁이’ ‘매스 미디어는 살인무기’라는 피켓을 들었고, 죄수복을 입은 한 남성은 손석희 jtbc 사장의 얼굴 가면을 쓴 채 거리를 활보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원규 씨는 “최순실의 태블릿 PC는 모두 언론에 의해 조작된 증거”라며 “태블릿 PC 안의 연락처나 요금 납부자를 보면 최순실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광화문에서 매일 탄핵 무효화 일인 시위를 한다는 불향사의 구지 스님은 “태극기를 들고 일어났던 시위는 역사에 없었고,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제 언론에서도 우리의 입장을 편파 없이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을 밝히는 촛불, 제11차 촛불집회

같은 날 벌어진 촛불집회의 열기 역시 뜨거웠다. 오후 4시, 광화문 광장에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행동 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남겨두고 벌어진 이날 집회에서는 주최 추산 60만 명의 인파가 모여 현 정권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진행된 1분 소등행사 직후 띄워 올려진 노란 풍선 1,000개가 하늘을 수놓았다.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광화문을 노랗게 물들인 이날은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타난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단원고 2학년 1반 생존자 장애진 학생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추모하는 1,000개의 풍선이 하늘로 띄워지고 있다.

공연 및 발언으로 이뤄진 본행사가 끝난 오후 7시 경, 촛불을 든 사람들은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의 선두에 선 세월호 유족들은 노란 천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이들의 행진에 박원순 시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몇몇의 정치 인사들이 함께 했다. 그들은 세월호 사망자들의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모두들 3년 전의 참사를 추모하며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엄숙한 선두와 대비되게 후방 행렬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풍물패들이 행진하며 경쾌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여러 단체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고, ‘박근혜를 구속하라’ ‘황교안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며 행사를 즐기던 아비게일 홉킨스 씨는 “이곳의 분위기는 민주적이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불공정하다”며 “이번 시위를 통해 대한민국은 현재 대두되고 있는 문제들을 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족들과 정치 인사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의 선두에서 걸어가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황교안 퇴출을 요구하는 플래카드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해가 져 어두워지고 쌀쌀한 밤이었지만, 사람들의 배려는 따뜻했다. ‘천일은 너무 길다’는 노란 플래카드로 간판을 덮은, 카페 커피공방의 사장님은 집회 참여자들이 추운 날씨에 손을 녹일 수 있도록 따뜻한 물을 제공했다. 몇몇 사람들은 대형 종량제 봉투를 들고 다니며 집회 장소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행사는 충돌 없이 진행됐고, 사람들은 “세월호 7시간 밝혀내라”는 구호로 진실을 요구하며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해나갔다. 집회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대학생 김태홍 씨는 “소통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숨기는 기득권 층으로 인해 시민들은 분노하였고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사회를 위해 직접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외침은 광화문 일대를 계속해서 울렸고, 밤은 깊어갔다.

사진 :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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