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예정자 인터뷰] 신동민 씨(조소과·09)

차가 밀려서 늦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던 신동민 씨(조소과·09)를 IAB 스튜디오 작업실 근처 건물에서 만났다. 그는 “졸업 전시를 한 게 정말 길고 오래 걸렸던 것 같다”며 곧 졸업하게 돼 후련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후련함도 있는데 아쉬움도 약간 있다”며 교내 동아리를 항상 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해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였던 임성빈 씨(빈지노), 김한준 씨와 함께 2013년에 IAB 스튜디오를 시작한 그는 “유명인이 있어 문에 로고를 작게 붙여 놨다”며 기자들을 그들의 작업실로 안내했다.

신동민 씨는 “겉보기가 전체를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며 “보이는 것 너머의 가능성을 사람들이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작품철학을 풀어놓았다.

관념 속의 화가를 찢고 나온 히어로를 꿈꾸며

신동민 씨는 오래전부터 미술에 대한 꿈이 확고했다. 그 꿈의 시작은 동네 재래시장에 있던 한 부부가 운영하던 화랑이었다. 자유로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에서 그는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그는 “당시 화랑의 남자 선생님이 꽁지머리에 가죽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관념 속의 화가 모습이었다”며 홍대 출신 선생님을 따라 홍대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입시는 쉽지 않았고 그는 삼수 후에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입시는 험난했지만, 자신의 진로에 대한 흔들림은 없었다. “이 길이 맞나 고민이 돼도 다른 걸 상상해보면 더 끔찍했다”며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편한 일이 미술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술에 대한 열정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훌륭한 조각가의 꿈을 갖고 입학을 했고 3학년까지도 그 꿈이 유지됐었다”며 전공이 적성과 잘 맞았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미대 수업에서 비평을 진행할 때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누가 더 공부를 많이 했는가에 대한 싸움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지식들을 다 숙지하고 있어야 좋은 미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는 작품 작업을 하면서도 미학, 철학을 다룬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단순히 좋은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만 시작한 공부는 아니었다. “언젠간 논쟁하는 이들 중에 한 명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부를 시작하는 데에는 그러한 걱정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공부가 도움이 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며 “도움이 되지 않았다기보다 공부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각자의 고민과 열정의 산물이 지식인에 의해 품평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현 미술계가 자신이 생각하던 정의로운 미술과는 괴리가 있었고, 이 속에서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끝에 그는 자신만큼은 관습적인 미술계를 탈피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전공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그는 “한마디로 쫄보였기 때문에 일찍 관둔 것”이라며 공부뿐만이 아니라 작업을 비롯한 다른 것들도 그만뒀다. 대신 그는 그동안 미술에 집중돼 있었던 자신의 눈을 다른 세계로 돌렸다. 음악도 듣고 영화도 수없이 많이 보고, 많은 친구들도 만나며 다른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술에 대한 신동민 씨의 열정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미술계와 자신이 생각하던 정의로운 미술 사이의 괴리 때문에 공부를 그만뒀던 만큼, 정의로운 미술에 대한 그의 고민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그는 “정의를 꿈꾸는 히어로가 되고자 한다고 갑자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지금 내 나잇대,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정의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자의 입장에서 관람자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미술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분노, 슬픔이나 즐거움 등 종류에 상관없이 어떠한 감정만 불러일으키면 그것이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람자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혀 다른 접근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관람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정의로운 미술이 되는 것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냐, 반전매력의 작품세계로

얼핏 모호한 예술론일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오히려 분명하다. 그는 자신이 11년간 고수한 머리 스타일을 통해 최근 안 사실이라며 “겉과 속이 다른 것에 대한 표현을 항상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원한 민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그는 민머리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을 언급했다. 그와 같은 스타일의 사람들이 홍대에서 주로 보일 것 같고, 클럽을 자주 갈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정작 그의 성향은 정반대다. 신동민 씨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며 이 생각이 강화돼 현재의 작업들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평소 그가 불만을 갖고 있던 영상물심의위원회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작품에 반영됐다. 특히 성인물에 대해 ‘성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성인들이 향유하고 볼 수 없게 하는 제재를 지적했다. 이 불만에 착안해 작업으로 표출한 것이 브이(V)모양 손가락 목조 조각이었다. 다만 가운데 손가락이 모자이크모양으로 조각이 돼있다는 점에서 진짜 손과 다르다. 그는 브이모양을 구성하는 손가락이 검지, 중지, 쥔 주먹인데 이 중에서 중지가 욕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브이를 했을 때 중지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현재 영상물심의위원회의 논리”라며 브이모양임에도 중지에 모자이크 조각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모자이크 연습, 2014년 / 신동민 씨는 “최대한 영상 속의 모자이크로 보이도록 노력했다”며 2D인 모자이크를 3D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사진제공: 신동민)

이는 그의 또 다른 작업 아이디어와도 이어졌다. 그는 의류학과 수업에서 얻은 한복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영상 작업물을 구상했다. “원래의 한복은 당시 여성들이 일하다가도 수유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고 한다”며 단아하고 단정한 이미지의 한복이 사실은 자유롭고 실용적인 옷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한복을 입는 교육용 영상 제작을 계획했다. 옷을 입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얼핏 음란물로까지 보일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실제 목적은 교육에 있다. 영상 제작 후 영상물심의위원회에 제출해서 받은 등급으로 그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이 영상의 겉과 속이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반전의 매력을 가진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동민 씨는 디지털 작업보다는 아날로그 작업을 선호한다. 그는 인터넷으로만 봤던 옷을 주문해서 직접 봤을 때, 어려서부터 너무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 실제 가봤을 때, 사진으로만 보던 음식을 실제로 먹어봤을 때 등 정보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알다가 직접 체험했을 때 받는 감동이 아날로그가 가진 반전매력이라 설명했다. 디지털 작품도 감동과 재미를 줄 수는 있지만 실제로 만져지거나 봤을 때 느낌은 깊이가 다르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이미지를 실체화 하는 게 아날로그 작업이 시작하는 지점이라며 “어떤 특정한 감정을 의도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재미를 이정표로 삼은 삶의 지도

신동민 씨는 “재미가 없으면 일이 돼버린다”며 음식,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재미를 강조했다.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최우선 고려사항은 늘 재미였다. 가장 기억나는 아르바이트로 뚝섬유원지에서 건물 시공사와 같이 일하던 경험을 꼽은 신동민 씨는 11미터 위에서 하는 작업이 무섭기도 했지만 몸으로 직접 하는 일이어서 재밌었다며 웃었다. 그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IAB 스튜디오 또한 재밌는 일을 찾아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여 만든 곳이다. 그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며 자신의 일을 소개했다. 대상의 정체성을 바꾸지는 않되 사람들이 만족스러워하도록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브랜드가 대중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에 대한 방향성이나 테마를 제시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간의 구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재밌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IAB 스튜디오는 던힐, 롯데 빼빼로 등의 기업과 협업을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협업 제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신동민 씨를 비롯한 팀원 모두 브랜드의 유명세보다 재미의 유무를 중시하는 편이라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라도 그들의 제안이 재밌고 진정성이 느껴지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IAB 스튜디오의 목표는 재밌게 일하는 스튜디오였다. 그는 “스튜디오가 커져서 사람들이 그 공간에 관광도 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작업도 하는 다양한 모습을 꿈꾼다”며 스튜디오의 규모가 커져서 어쩔 수 없이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모습을 팀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상상한다고 말했다.

긴 고민의 시간을 지나오며 다양한 경험과 깊이 있는 고민을 해온 그는 자신이 무엇이라고 규정짓기보다는 여전히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지향점을 설명하며 이를 나무에 빗댔다. 그는 “나무를 잘랐을 때 나이테를 보면 해가 뜨는 쪽으로 밀집돼 있다”며 자신의 방향을 뚜렷이 나타내는 나무의 모습을 신기해했다. 나무는 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고 뿌리가 깊게 내릴수록 태풍이 오더라도 쉬이 쓰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나무면 좋겠다고 말했다. “쉬이 흔들리지는 않지만 다양한 모습을 가지면서 지향하는 바도 확실한 사람이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자신의 고민과 작업, 생각을 양분으로 삼아 굳건한 나무로 우뚝 서는 미래를 그려본다.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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