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능 프로그램의 복불복 게임에서 외치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누군가 까나리액젓을 먹으면 모두가 환호하는 장면은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임을 보여준다.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어가 냉정한 경쟁의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웃게 된다. 누군가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질 수밖에 없는, 한쪽의 손실과 다른 쪽 이익의 총합이 제로(0)가 되는 ‘제로섬 게임.’ 이것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극이 있다. 바로 1월 12일부터 14일까지 두산 아트센터에서 펼쳐진 극단 파랑곰의 ‘제로섬 게임’이다.
극단 파랑곰은 현실을 반영한 게임 이론을 통해 사회 문제를 이야기한다. 연출가이자 작가 박웅 씨를 포함해 총 3명으로 이뤄진 작은 극단이지만, 이들이 선보이는 극은 결코 작지 않은 주제를 내포한다. 시사적인 주제를 친근하게 풀어내기 위해선 관객의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파랑곰은 게임 이론을 통해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의 게임 이론 시리즈는 ‘죄수의 딜레마’를 시작으로 해 ‘치킨 게임’으로 이어졌고, 그 일환으로 이번엔 ‘제로섬 게임’을 선보였다. 박웅 연출은 “어쩌면 세상의 모든 행복(+)과 불행(-)의 총합이 제로(0)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제로섬 게임’을 기획하게 됐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제로섬 게임’은 제로섬 게임 시스템의 운영자와 취업준비생 하루키, 두 명의 인물로 꾸려가는 한 시간 남짓의 연극이다. 극장 입장 통로에서부터 무대 가장자리까지 이어진 클립들이 천장으로부터 발처럼 드리워져 하루키의 방으로 꾸며진 무대를 둘러싼다. 이는 차가운 클립들로 둘러싸인 하루키의 자취방처럼 냉정한 제로섬 시스템 속에 놓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모텔을 개조한 볼품없는 하루키의 자취방을 채우는 것은 하루키와 운영자 두 인물이다. 운영자는 하루키를 다짜고짜 찾아와 약 50분 동안 그가 ‘세상의 중심’이 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하루키의 행복이 서울시 전체의 불행을 초래하고, 하루키의 불행이 서울시 전체의 행복을 초래한다는 설정에서 극은 시작된다.
운영자는 자신을 친근하게 ‘영자 씨’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정작 하루키의 감정에 대해서는 냉정하기만 하다. 그는 “서울 시민들은 아무도 네가 이기기를 바라지 않아”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취업 면접 결과일지도 모르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등 하루키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한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악성 부채’라고 칭하며 자조하는 하루키에게 이 같은 운영자의 태도는 큰 위압감을 준다. 운영자 역할을 맡은 배우 이리 씨는 “하루키에 대한 은근한 멸시와 함부로 대하는 태도, 비웃음, 말 자르기 등은 시스템이 그 속의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암시한다”며 “2인 극이기 때문에 상대역과의 대립으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 냉정한 시스템을 대표하는 운영자는 하루키와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루키가 한 발짝 물러서면 운영자는 슬그머니 가까워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박웅 연출은 이에 대해 “현실과의 거리를 뜻한다”며 “문제가 있는 현실로부터의 완전한 도피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연출의 의도를 밝혔다. 하루키는 제로섬 게임의 희생자가 되며 이런 현실의 문제를 점차 자각하게 된다.
관객 또한 여러 장치를 통해 시스템 속에 참여하면서 문제의식에 대해 능동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운영자는 직접 관객을 가리키며 ‘서울 시민’이라고 칭하고, 하루키가 게임에서 지자 관객의 좌석 아래엔 만 원이 놓인다. 무대 위의 모니터는 이런 관객들을 비추며 그들을 제로섬 게임의 일부에 포함시킨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관객들은 점차 극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시민’으로 극에 참여하게 된 관객들은 취업준비생 하루키에게 공감하면서도 적대적인 입장에 선다. 극 중 “자원은 유한하고 경쟁은 필연이고 이것이 세상의 법칙인데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라는 운영자의 대사처럼 하루키의 불행이 곧 서울 시민(관객)의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마무리로 접어들며 극은 사람들이 제로섬 게임이라는 시스템에 순응하고 그로 인한 희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제로섬 법칙에 회의를 느끼는 하루키에게 돌아오는 것은 “바람직? 그건 인위의 영역이죠. 자연에게 인간이 할 일을 요구하면 어쩝니까? 그럼 인간들은 뭘 하시게요?”라는 운영자의 대답뿐이다. 배우 이리는 “시스템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은 그 구성원인 시민의 손에 달려있다는 의미”라고 대사에 대해 설명했다. 하루키가 이런 시스템에 대항하며 차가운 클립들을 헤치고 어두운 무대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결말에 대해 일부 관객들은 하루키가 제로섬 게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관객 고은정 씨(25)는 “하루키가 제로섬 게임의 피해자로만 묘사되는 것 같았다”며 아쉬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루키가 클립들을 헤치고 나오는 장면에 대해 박웅 연출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극복의 시도로 보였으면 좋겠다”며 “하루키 개인의 인식 전환으로 조금씩 사회가 바뀌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연극 ‘제로섬 게임’은 우리 사회의 경쟁 현실을 마주하고 이에 대해 자각하도록 해준다. 관객 이현구 씨(36)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설정 속에서 개인과 전체가 마주하는 공정과 공평의 불일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우리 사회의 모습인 듯 흥미진진하게 본 작품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나야 승리하는 제로섬 게임은 ‘아이러니’가 아닌 ‘현실’이다. 하루키가 던진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는 건가요? 그래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지.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나?”라는 물음은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이에 대한 해답을 고민해봐야 할 차례다.

사진제공: 두산아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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