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 | 송인서적 부도로 짚어본 한국 출판시장

지난달, 업계 2위 도서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 사태로 그간 잘 알려져있지 않던 출판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100억여 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해 빚어진 송인서적 부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낙후된 도서 유통구조가 지목된다. 수천억에서 수조를 오가는 다른 업계의 부도에 비한다면 송인서적 부도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출판계에 가하는 타격은 결코 작지 않다. 송인서적을 유일한 거래창구로 해온 수백 개에 이르는 중소형 출판사들은 하루아침에 줄도산에 이를 위기에 처했으며, 서적이 들어오지 않아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진 지역서점은 일시적인 마비를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장 소병훈 의원은 “출판계 100억 원의 부도는 해운업계의 1조 원 부도와 맞먹는다”고 현 상황이 불러올 파장을 예고했다.

 

도매상, 설 자리 좁아지다

1950년대 말미에 형성된 출판시장은 출판사에서 제작된 책이 중간 도매상을 거쳐 지역서점으로 유입되는 유통구조로 지난 50년간 이어져왔다. 출판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이 같은 유통구조가 구축된 것이다. 출판사가 각 지역으로 분산돼 있는 모든 서점과 직접 거래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 도매상의 역할은 유통구조에서 필수적이었다. 출판사 ‘서해문집’ 김홍식 대표는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출판계의 심장 같은 곳이라면 도매상은 실핏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도매상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출판사에서 도매상을 거쳐 서점으로 유통됐던 출판 유통구조는 2000년대에 들어서 두 가지 형태로 나눠졌다. 거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인터넷 서점과 체인서점이 등장하면서 온라인·체인 서점과 중소형 서점이 각각의 유통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온라인·체인서점이 대형화되면서 출판사와 직접 거래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온라인·체인 서점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비교적 축소된 유통단계를 가지게 됐다. 이에 반해 전국적으로 1,700점에 달하는 중소형 서점은 출판사가 모두 수용해 거래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 도매상을 거친 유통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현재까지 이러한 유통구조가 지속돼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출판사의 책을 각 지역서점으로 유통해주는 역할을 해온 출판 도매상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형 체인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성행하며 가격과 입지 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중소형 서점은 점차 사라지게 됐고, 이에 따라 중소형 서점과 거래하는 도매상의 역할도 축소됐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서점편람 통계’에 따르면 2005년 전국 서점의 수는 3,500개에 달했으나 2015년은 2,200개로 줄었고, 2005년 39.1평이었던 서점의 평균 면적은 2015년 57.1평으로 증가했다. 이 통계자료는 10년 사이 중소형 서점은 사라지고 대형 서점이 증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홍식 대표는 “이런 현상은 도서정가제의 시행으로 더욱 가속화됐다”며 “무분별한 할인을 막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지역 서점들의 도서 가격이 모두 같아지자, 독자들이 같은 가격에 굿즈를 제공하거나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인터넷 서점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곪아 터진 출판시장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낳고=표면적으로는 하나의 도매상이 부도를 맞은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송인서적의 부도는 연쇄적인 피해를 낳았다. 출판계의 실핏줄 역할을 해온 도매상이 앓자 출판계의 각 기관이 괴사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도매상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출판계 전체의 고질적인 문제, 즉 낙후된 유통구조로 지목된다. 전산화되지 않은 주먹구구식 유통과정, 어음 결제로 이뤄지는 전근대적인 거래방식,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출판사의 취약한 경영구조가 출판계의 병폐를 눈덩이처럼 키운 것이다. 소병훈 의원은 현재의 사태에 대해 “출판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며 “사회 지성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기에 일반 민간산업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유통구조 개혁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출판업계 종사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출판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는 ‘전산화되지 않은 판매관리시스템’이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과 같은 대형 체인 서점은 체계적인 전산화로 거래내역이 전산망에 남지만 중소형 서점은 다르다. 자본이 부족한 중소형 서점엔 판매시점관리 시스템(POS)이 도입돼있지 않아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기록에 남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도매상은 서점으로부터 받은 대금을 정확한 데이터 없이 출판사에 지급해왔다. 실제 책의 판매량과 상관없이 출판사의 규모에 따라 ‘대충 때려 잡기’식으로 대금을 주는 전근대적인 구조가 지속돼 온 것이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1억여 원대의 피해를 본 출판사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도매상이 주먹구구식으로 주는 대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금이 너무 적다고 항의하면 100만 원 더 얹어주는 식이었다”고 무질서한 거래 관행을 설명했다.

이런 관행이 가능했던 것은 위탁판매로 이뤄진 거래방식 때문이다. 위탁판매는 생산자가 외주업체에 상품의 판매를 위탁하고 그에 대한 보수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출판계에서는 도매상이 위탁업체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반 산업에선 위탁판매가 상품을 전달하기 위한 중간통로 역할의 기능을 하고 있는 반면, 출판계 위탁판매 거래방식은 어음결제라는 전근대적인 결제방식으로 이뤄져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심지어 대형 출판사 대금은 현금 또는 은행에서 발행해주는 당좌어음으로 결제되는 반면 규모가 작은 출판사는 문방구 어음으로 대금이 지불되는 불합리한 구조가 지속돼오기도 했다. 김홍식 대표는 “당좌어음은 결제가 이뤄지지 못하면 형사로 입건돼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문방구 어음의 경우 민사로 입건돼 돈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복잡다단하다”고 설명했다. 반품이 가능한 출판계의 위탁판매 거래방식 또한 출판계를 곪아가게 한다. 본래 위탁판매는 책임판매제도로 이뤄져 팔리지 않는 상품에 대한 책임은 위탁업체인 도매상에 있다. 그러나 출판계에선 팔리지 않는 책의 반품이 가능하며 이런 관행은 출판사 경영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김 대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출판사들이 반품이 들어오더라도 일단 서점에 책이 많이 진열되길 바라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탁판매의 방식이 유지돼왔다”고 설명했다.

◇외면당한 채 다양성 잃어가는 출판계=출판계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 하루이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었다. 정부가 ‘문화융성’을 외치며 K재단에 수 백억을 몰아주는 동안, 정작 문화콘텐츠의 1차 생산처인 출판시장은 곪아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기형적이다. 출판평론가 장동석 씨는 “20년 전부터 출판 유통 선진화, 출판 유통 현대화 같은 이야기가 계속 있어왔다”며 “그러나 정부는 출판계가 산업적 영향력이 적다는 이유로 정책적 개선을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전 회장 윤철호 씨는 “OECD 국가 평균 도서관 예산은 3000억 원인 반면 우리나라는 550억원에 불과하다”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도 출판 분야에는 10원도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런 불합리하고 기형적인 구조는 판매량에 구애 받지 않고 필요한 인문서나 과학책을 내는 작은 출판사들의 고사를 야기하며, 장기적으로는 책의 다양성을 훼손해 출판 생태계 파괴를 초래한다. 침체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사들은 컬러링 북 같은 소위 ‘돈 되는 책’을 내며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1년에 출간되는 책 4-5,000종 중 3,000권 이상의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같은 종류의 책이다. 이 같은 구조는 다양성이 부재한 출판계를 초래하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독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김홍식 대표는 “대형 도매상이 사라지고 지역서점과 중소형 출판사가 사라진다고 독자들이 당장 피해를 입는 건 아니다”라며 “하지만 출판 생태계의 파괴는 지역 문화와 컨텐츠 다양성 부재를 초래해 중장기적으로 출판문화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전망했다.

독자들을 위한 건강한 출판계를 만들려면

문체부는 송인서적 사태로 출판계가 흔들리자 급하게 지원책을 내놓았다. 지난 1월 6일 문체부가 긴급지원방안으로 내놓은 1%대 저리 융자 대출, 대출 요건 완화와 유통구조 선진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출판계는 임시방편식의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홍식 대표는 “저금리 대출이나 대출요건 완화 등은 임시변통은 될지 모르나 그 효력이 오래가진 못할 것”이라며 “공적자금을 투입해 현대적 유통구조로 재구축하는 데에 출판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판매관리시스템을 통한 데이터로 효율적으로 책을 제작하고 판매한다. 데이터를 토대로 인문학 서적이 잘 팔리는 서점에 인문학 신간을 공급하고, 고전서적이 잘 팔리는 서점이 고전서적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출판사와 도매상, 서점 모두 자체적인 경제력이 확보되고 이는 다시 책으로 투자돼 독자들은 질 높은 독서 문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김 대표는 “이와 같은 정부의 바른 정책과 시장의 안정성이 우리나라에도 실현돼야 한다”며 “이러한 기본이 돼 있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출판계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단지 정부와 사용자 단체만의 목소리로 채워질 것이 아니다. 독서 인프라 확대 및 출판생태계 상생을 위한 정부와 출판업자, 독자들 모두의 목소리로 구성돼야 한다. 낙후된 유통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독서 문화 개선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건강하고 공정한 출판유통구조를 가진다고 해도 독자가 없다면 출판시장은 다시 침체기를 맞게 된다.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는 “이번 사태 해결의 방향이 ‘송인서적의 부도 해결’이 돼서는 안 되며 ‘위기에 빠진 독서 문화 해결’이 돼야 한다”고 근본적인 출판시장의 문제 해결을 도모할 것을 제시했다.

 

여타 산업에선 값을 지불하는 구매행위를 하는 사람을 ‘소비자’라고 하지만 책을 사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닌 ‘독자’라고 말한다. 출판업이 단순 제조업이 아니라 지식과 교양을 생산하는 문화산업이라는 점이 작용하는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 박효상 위통위원장은 “이번 송인서적 부도로 출판계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이번을 기점으로 다양성이 공존하는 건강한 출판계로 탈바꿈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낡은 출판유통구조 개혁의 의지를 보였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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