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0일 학생총회의 결정으로 시작된 본부 점거가 4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학교 당국이 사상 최대 규모의 징계 협박을 하고 본부 건물을 단전·단수하는 등 탄압의 수위를 높여왔음에도, 학생들은 꿋꿋하게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시협약이 철회돼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학교의 이름값을 팔아 부동산 투기나 벌인 부도덕한 본부, 공공적인 재원 없이 호텔, 실버타운 따위의 수익사업으로 캠퍼스를 운영하겠다는 무책임한 본부였다. 그런 본부가 돈벌이에 눈이 멀어 학생들의 등록금과 물가 부담, 교통 불편을 가중시킬 시흥캠퍼스 조성 사업의 실시협약을 날치기로 체결한 것은 학생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본부는 시흥캠퍼스 추진 기구에 참여시켜주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실시협약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

그런데 본부는 이미 체결했으니 되돌릴 수 없다는 얄팍한 논리로 “실시협약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말이다. 방학에 접어든 이후에는 실시협약을 철회할 경우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것이라는 협박성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이것이 “배상금 지급은 재정상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 본부 측의 종전 주장과 모순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시흥캠퍼스가 그대로 강행될 경우 발생하는 피해들은 완전히 은폐하고 있어 기만적이다. 법인화로 인해 서울대 국고출연금이 삭감되는 마당에 시흥캠퍼스의 운영 비용은 대부분 기업으로부터 조달될 수밖에 없고, 이는 각종 학내 시설의 외주화와 연구의 상업화를 불러올 것이 뻔하다. 또 이미 평창캠퍼스에서 목도하고 있듯이 불안정한 경제 상황 때문에 기업들의 입주가 차질이 생긴다면, 그로 인한 재정적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과 노동자 등 구성원이 짊어져야 할 것이다. 실시협약 철회로 인한 단기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하루빨리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시흥캠퍼스 추진에 맞선 본부 점거는 대학 교육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투쟁이다. 비민주적 일방 체결로 시작해 대학에 수익성 논리가 한층 더 스며들게 만들 서울대 시흥캠퍼스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기업으로 변모해 가는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따라서 시흥캠퍼스에 맞선 싸움은 대학 기업화의 흐름에 맞선 싸움이요, 주요 교수단체와 진보적 지식인, 세계적인 석학들까지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서울대의 명예’가 걱정된다면, 혹시 모를 돈벌이 기회를 놓치는 게 아까워 부정의에 눈을 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학생들의 끈질긴 점거와 연대 확산으로 시흥캠퍼스 조성 작업은 사실상 멈춰섰다.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려야 할 것도 적다. 성낙인 총장은 학생들의 총의에 따라 하루빨리 실시협약을 철회하라.

그리고 곧 있으면 방학이 끝나고 학생들이 교정에 가득한 새 학기가 찾아온다. 4개월간의 점거 농성으로 쌓여온 학생들의 지지와 국내외의 연대를 발판 삼아 대규모의 대중행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방학 중의 본관 점거로 시작된 이화여대 학생들의 뜨거운 투쟁은 연이은 총시위와 4천여 명이 모인 학생총회를 거쳐 결국에는 승리했다. 학생 사회의 책임 있는 리더들이 이 기회를 잘 부여잡기를 바란다.

이시헌
본부점거본부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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