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린 편집장

여기 범죄자가 둘 있다. 한 명은 12살 소녀를 데리고 전국을 돌며 밤마다 소녀와 정사를 나누고, 이후 살인까지 저지른 ‘아동성폭행범’이자 ‘살인범’이다. 다른 한 명은 부랑자를 꼬드겨 살해하고 본인으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낸 ‘보험사기살인범’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모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소설의 주인공으로, 각각 『롤리타』의 험버트 험버트, 『절망』의 게르만 카를로비치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보다도, 이들이 저지른 끔찍한 기만이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이들은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데 작품 전체를 할애한다. 결국 이 작품들은 범죄자의 ‘가짜 수기’인 셈이다. 험버트는 자신을 역겨운 범죄자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섬세한 시인으로 묘사하고, 게르만 역시 순수한 미적 가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위대한 예술가로 자신을 규정한다. 독자들에게 이를 설득시키기 위해 험버트는 소아성애적 행태를 보였던 위인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열거해 자신을 정당화하며, 게르만은 살인의 과정에서 있었던 사실들을 원하는대로 조작해 서술한다. 순진한 독자가 이 ‘독자기만적’인 서술자들의 열띤 항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험버트에게는 연민을 느끼고, 게르만이 조작해놓은 사실을 믿게 된다.

험버트, 게르만의 기만보다도 더한 기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요즘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추악한 진실은 감추고 되레 자신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이들이 넘친다. 작품 속의 기만적인 서술자가 독자를 속이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의 기만적인 이들은 대중을 속이려한다.

탄핵 심판이 목전에 놓인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었다며 모든 것을 선의로 포장했다. 자신을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책임자’로 규정하는 대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특정 개인의 일탈때문에 궁지에 몰린 ‘피해자’로 미화한 것이다.

탄핵 심판 과정에 접어들면서 박 대통령 측의 기만적인 태도는 더해졌다.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불필요한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거나, 대부분이 재판과 무관한 사적 통화 내용인 2,000여 개의 녹음파일을 추가 증거로 신청하는 등 노골적으로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평우 대변인은 탄핵소추 이유가 부당하다며 “북한에서만 있을 수 있는 정치 탄압”이라고 헌재를 맹비난했다. 이들은 갖은 꼼수로 탄핵심판을 방해하는 동시에, 마치 자신들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헌재와 국회로부터 ‘탄압’ 당하는 쪽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는, 시흥캠퍼스 사태에 대처하는 본부의 태도 역시 기만적이라 할 수 있다. 본부는 다양한 통로로 본부점거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행정관에 물과 전기를 끊어버리고 학부모들에게 징계 조사가 시작됐음을 알려 불안감을 조성했다. 아직 입학식도 치르지 않은 17학번 새내기들에게 집집마다 가정통신문을 보내며 본부 점거의 불법성을 경고하는 여론전까지 펼쳤다. 물자도 끊고, 징계로 협박도 하고, 여론전까지 펼치는 와중에 본부는 시흥캠퍼스 사업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겠다며 ‘학생들과 소통할 의지가 있는 합리적인 본부’를 표방하고 있다.

다시 나보코프가 그린 범죄자들로 돌아오자. 교훈적인 문학을 혐오한 나보코프는 이 기만적인 서술자들을 단죄하거나 그 정체를 폭로하지 않는다. 서술자의 진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면서 독자와 일종의 게임을 벌일 뿐이다. 트릭을 알아채지 못하는 순진한 독자가 돼 기만적인 서술자에 말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서술자의 기만을 간파해내는 영리한 독자가 될 것인가? 결국 서술자가 내세우는 거짓을 걷어내고 그 정체를 밝혀내는 임무는 독자의 몫이다. 험버트와 게르만의 얄팍한 기만에 넘어가는 독자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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