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 | ‘FoFF 2017’을 가다

폐막식에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박강아름 감독)가 관객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은 '관객상'을 수상했다.

일반적으로 영화제의 주인공은 영화와 영화감독이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제는 사뭇 다르다. 오로지 관객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제들의 영화제, 바로 ‘FoFF 2017’(the Festival of Film Festival, 포프)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6개의 영화제가 참여하고 영화 관객 협동조합인 ‘모극장’이 연합한 영화제들의 앵콜 영화제가 지난달 25일(토)부터 3월 1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열렸다. 영화진흥위원회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스토리펀딩을 통한 관객들의 성원과 후원으로 개최되는 포프는 올해 첫 걸음을 내딛었다.

관객이 만드는 영화제, 막을 올리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수많은 영화들이 개봉하지만 상업성이 낮은 영화들이 설 공간은 많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는 총 118편이지만 그 중 개봉으로 이어진 작품은 10여 편 정도에 불과했다. 모극장 박설아 홍보위원은 “스크린 독과점 등으로 인해문화다양성이 축소됐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객들이 자치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선정하는 영화제를 만들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모극장 청년기획단(관객기획단)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성 영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포프를 기획하게 됐다. 박설아 홍보위원은 “처음엔 지역영화제 정도로 기획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더 넓은 콘텐츠 거점을 만들고자 포프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포프는 2016년 국내외 영화제의 화제작들로 선정된 ‘그랑프리’ 섹션,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선정된 ‘관객초이스’ 섹션, 극장에서 개봉되지 못했던 영화들로 선정된 ‘라스트 찬스’ 섹션, 단편 섹션의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과 청년들의 구직난 등이 활발히 논의됐던 것이 2016년 영화제들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반영됐다. 자연스레 이곳 포프에도 여성주의, 소수자, 청년문제 등을 다뤘던 영화제들의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포프에선 여성주의를 녹여낸 작품이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많은 호평을 받았던 작품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박강아름 감독)는 우리 사회에 자연스레 물들어 있는 외모 지상주의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박강 감독은 자신이 외모 지상주의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을 자각하고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영화 속에 그려냈다. 스스로 히피 스타일, 재미교포 스타일 등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사람들이 여성의 외적인 면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느껴보는 감독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아이>(우스카 듀킥 감독)는 주인공 사샤의 불안과 잔인한 상상을 통해 임신과 낙태 문제가 ‘여성으로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고민’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장 바지>(사랄린 아머 감독)는 회사에서 치마 대신 정장 바지를 입고 다닐 수 있게 되기까지의 주인공 카렌의 연대와 투쟁을 담아냈다. 영화들은 사소하고 상식적인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던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며 여성주의 의식을 일깨운다.

이번 영화제에선 청년 주거, 아르바이트 고용 문제 등 묵직한 청년 문제를 다루거나 이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도 다수 상영됐다. 아르바이트 고용문제를 다룬 <가현이들>(이가현 감독)은 동명이인인 이가현 세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 명의 이가현은 ‘최저시급 1만 원’을 외치며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이 감독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가현이들을 위한 영화”라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천에오십 반지하>(강민지 감독)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 막 독립을 시작한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강 감독은 수중에 천만 원이 없으면 당장 ‘살 수 있는’ 곳이 없기에 서울 이곳저곳을 헤매며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부동산 거래에서 사기를 당하고, 급작스럽게 월세를 올린 방주인 때문에 쫓겨나는 감독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며 일상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낸다.

마지막까지 관객과 함께

‘관객참여형 영화제’로서 포프는 관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양한 자리를 마련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뜨는 일반적인 영화관 관객의 모습과는 달리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지키며 작품을 음미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이곳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박설아 홍보위원은 관객과의 대화에 대해 “다른 영화제와는 달리 관객이 직접 모더레이터*로 활동한다는 점이 포프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개막식에 포함된 ‘관객의 밤’에선 영화제 관계자들과 관객이 스크린의 경계를 허물고 친목을 다질 수 있다. 또 관객으로 구성된 영화제 기획단 ‘시네클럽 포프’를 마련하는 등 관객이 참여하는 지속가능한 영화제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설아 홍보위원은 “앞으로도 관객들이 영화제 조직부터 기획 운영의 주체가 되는 영화제로서 차별적인 입지를 굳혀갈 예정”이라고 포프의 향방을 전했다.

관객들이 직접 폐막식에서 진행된 시상식에 참여하기도 한다. 영화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관객들에게 선물과 함께 상장을 수여하는, 관객을 위한 시상식인 ‘내가 포프왕!’이 폐막식에서 진행됐다. 뿐만 아니라 폐막식에선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가 가장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은 작품에게 수여하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 투표했다는 관객 강은주 씨(22)는 “감독의 외모에 관한 사적인 생각들은 사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바였을 것”이라며 영화를 높이 평가한 이유를 밝혔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포프는 작은 공간에서 넓은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감독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사적 다큐멘터리 등의 작품과 함께, 관객들의 참여가 영화제를 꾸려가기에 포프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어쩌면 이 영화제는 상업영화에 밀린 작은 예술영화가세상에 나올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자 기회다. 이 작품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은 관객, 바로 우리들이기에 첫 걸음을 내딛은 포프에 앞으로도 더 큰 관심을 줘야 할 것이다.

*모더레이터: 회의나 토론석상에서 사회를 담당하는 사람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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