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장영혜중공업 ‘세 개의 자습서로 보는 삶’

전시관 1층에서 감상할 수 있는 첫 번째 자습서 ‘불행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다’(ALL UNHAPPY FAMILIES ARE ALIKE)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살고 싶거나 한국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자습서가 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한 한국의 가정, 경제, 정치 구조를 담은 이 자습서로 30분이면 누구나 한국인이 될 수 있다. 장영혜와 마크보주 2인으로 구성된 웹아티스트 그룹인 ‘장영혜중공업’은 1월 6일부터 이번 달 12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을 통해 한국인의 삶의 단면을 조명한다. 텍스트, 영상, 음악을 결합해 작품을 만들어온 장영혜중공업은 그들의 ‘비디오 자습서’에 한국의 가정, 경제, 정치의 모습을 담아 우리 사회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비디오 자습서는 1층은 가정, 2층은 경제, 3층은 정치를 주제로 층마다 설치돼있다. 각 층의 주제의식이 입구의 벽면 혹은 바닥에 새겨져있으며 5분가량의 영상은 두 개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각각 한국어버전과 영어버전으로 동시에 상영된다.

1층에서는 가족의 행복을 처참히 깨뜨리는 빈곤을 주제로 한 비디오가 상영된다. 작품의 제목인 ‘불행한 가족은 모두 엇비슷하다’(ALL UNHAPPY FAMILIES ARE ALIKE, 2016)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서 따와 한 번 비튼 것이다. 이는 가정의 불행이 제각기 특수하다는 톨스토이의 통찰과는 달리, 한국 가정의 불행은 모두 ‘돈’이라는 하나의 이유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영상에는 가족의 식사자리에서 오가는 두 형제의 돈에 대한 노골적인 대화가 텍스트로 나타난다. 대화는 곧 욕설과 비난으로 바뀌며 결국 식사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맹렬한 인신공격의 희생자가 된다. 형제의 파탄으로 식사가 마무리되는 이 작품은 사실상 한국 가족사의 많은 문제가 빈곤에서 시작돼 빈곤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1층을 뒤로 하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SAMSUNG MEANS TO DIE, 2016)라는 두 번째 자습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자습서는 획일화된 우리 사회를 삼성이라는 기업의 이름으로 보여준다. 영상 속 “삼성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갑니다. 축하해요-열심히 공부한 당신의 대가입니다” “삼성 디자인 스쿨 혹은 대학교에 입학했군요” 등의 텍스트는 삼성 병원에서 태어나 삼성 장례식을 치르기까지의 ‘삼성 생활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학교, 회사, 식당, 스포츠와 예술에도 ‘삼성’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나아가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도 삼성이 녹아들어 가 있음을 비판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삼성 생활사’는 또다시 반복된다. 삼성이라는 하나의 상표로 점철된 우리 사회를 암시하는 이 영상은 끊임없이 재생된다.

꼭대기에 위치한 3층으로 향하면 어두운 조명 아래 홀로 빛을 내며 재생되는 세 번째 자습서 ‘머리를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POLITICIANS WHO DYE THEIR HAIR -- WHAT ARE THEY HIDING?, 2016)를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머리를 물들이는 정치인. 그건 부정직해. 설득력도 부족해”와 같은 간결한 텍스트로 ‘흑심’을 품은 ‘흑발’ 정치인의 잘못을 나열한다. 머리칼을 흑발로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의 행위를 국민에게 무언가를 숨기려는 행위, 즉 흑심으로 비유한 셈이다. 정치인은 ‘우리’로 칭해지는 국민의 돈을 쓰며 호의호식하다가 부정부패가 발각되면 늘 그래왔듯 고개를 숙여 검은 머리칼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민들을 달랜다. 이같은 기만적인 사과와 용서가 어김없이 되풀이될 것을 예고하며 영상은 끝이 난다.

이번 전시의 비디오 작품들은 커다란 화면에 나타나는 텍스트가 음악의 리듬과 조화를 이룬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다. 글자의 색상과 크기, 보색의 사용, 음악의 빠르기 조절 등의 요소가 긴장감을 유발하며, 내용이 절정을 향해 달려감에 따라 화면을 가득 메우는 글자와 빨라지는 비트는 관람객을 압박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날카로운 비판과 냉소적인 언어로 관람객의 마음 한 켠을 긁어내 불편함을 끌어내기도, 허무맹랑한 농담과 역설로 조소를 끌어내기도 한다.

장영혜중공업에게 한국 가정이란 불행한 가족이고, 경제란 삼성을 소비하는 사람이며, 정치란 머리칼을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 공식은 어떻게, 왜 나오게 됐을까. 당신에게 한국의 가정, 경제, 정치란 무엇일까. 본격적인 ‘자습’은 이제 시작이다. 진정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면, 불편함과 무게감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자습할 준비가 됐다면 당신을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으로 초대한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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