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숭동에서 입학식을 했고 이곳 관악캠퍼스에 나무를 심었다. 그 다음해 서울대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대가 이곳 관악에 자리를 잡으며 함께 심어진 나무들은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됐다. 불혹의 나이가 된 나무들은 관악캠퍼스의 주인이자 관악캠퍼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요즘 서울대를 찾는 이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미래에 서울대에 입학해 공부하는 꿈을 키우기 위한 어린이들,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서울대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이들은 교실에서 강의하거나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연구원의 모습은 쉽사리 보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서울대 교정의 모습이 방문객의 기억 속에 담길 것이다. 이왕이면 서울대를 찾는 이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교정의 모습이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관악캠퍼스 모습 가운데 어떤 것이 서울대를 찾는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까? 매년 새로 지어지는 건물의 모습일까? 아니면 건물들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의 꽃, 그리고 푸르렀다가 단풍드는 가지들로 단장된 캠퍼스 풍치일까?

여기 관악은 진리를 향해 공부하는 곳이다. 짧게는 몇 년 동안 길게는 평생을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수만 명에 달한다. 이 사람들이 이 캠퍼스에서 공부하며 오가는 길에 비치는 교정의 아름다운 빛은 이들의 마음을, 눈을 씻는다. 아름다운 교정을 가꾸고 지키는 것은 여기서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창의적 생각을 키우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나간 동문들에게는 그들과 함께한 교정의 아름다운 경관이 오래도록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관악에서 공부했던 동문들이 오랜만에 그리던 교정을 찾아왔을 때, 함께 했던 나무와 숲이 있던 곳에 낯선 건물이 들어서있다고 생각해보자. 동문들의 아름다운 교정에서의 학창시절 추억은 일그러질지 모른다.

지난달 총동창회에서 보내준 소식지를 읽고 나는 놀랐다. 서울대 본관 앞 잔디밭 옆 조그만 숲이 있는 곳에 역사연구기록관을 짓는다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역사연구기록관 건립 부지 선정에 관한 의견개진을 요청받았을 때, 나는 반대를 했었다. 그런데 총장은 불혹의 나이에 든 나무 수십 그루를 베어내고 그곳에 역사관을 세운다는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여기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여기에 적는다. 나이가 50~60년은 되는 향나무와 느티나무, 관악산의 자생종 수우물오리와 상수리나무(30~40년생), 단풍나무(20~30년생), 잣나무(15~20년생), 외래종인 낙우송(40년생), 양버즘나무(40년생), 리기다소나무(30~40년생), 그리고 정원수로 심겨진 사철나무, 주목, 개나리, 진달래 등이다. 이 나무들은 대다수가 관악캠퍼스가 처음 만들어진 1970년대부터 그 자리에 살고 있다. 최근 학계에 신종(아종)으로 보고된 토종물오리 종류인 ‘수우물오리’ 두 그루도 역사기록관 부지로 선정된 이 작은 숲에 살고 있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마다 관악캠퍼스의 작은 숲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숲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다면 관악캠퍼스에 오래된 숲과 나무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나는 관악캠퍼스의 아름다움과 상징적 역사물로서 오래된 숲이 캠퍼스 이곳저곳에 남겨지기를 희망한다.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름다운 교정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불혹의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역사기록관을 짓겠다는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의 역사를 말해주고자 하는 역사연구기록관을 꼭 오래된 숲의 희생 위에 새로 지어야할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장무 전임 총장 재임 시기 대내외에 공언한 지속가능한 서울대학교 캠퍼스 만들기 약속을 나는 기억한다. 이 지속가능한 캠퍼스 만들기 계획에는 캠퍼스에 더 많은 나무를 심고 보전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지속가능한 캠퍼스를 위해서는, 관악캠퍼스의 역사를 말해주는 오래된 숲을 잘 보전해야 한다. 역사기록관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기존 건물을 재개발하거나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좋은 대안이다.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역사관이 아니라 캠퍼스의 살아있는 오래된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어야 할 것이다.

윤여창 교수
산림과학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