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우(체육교육과 17)

교내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난 홍승우 씨(체육교육과·17). 대학에 입학해서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묻자 “새터에 가서 동기들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전지훈련 때문에 가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새내기였다. 하지만 홍 씨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그는 주목받는 고교야구 타자였지만 고교야구 입시비리에 휘말리며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그러나 홍 씨는 공부로 재기를 시도했고 결국 3수 끝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야구 심판인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홍 씨는 전도유망한 고교 야구선수였다. 지난 2014년, 그의 모교인 서울고는 36년 만에 제68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올랐고 그 중심에는 홍 씨가 있었다. 1대 1로 팽팽히 맞선 2회 말 1아웃 만루. 타석에 들어선 홍승우 선수는 그라운드를 가르는 3타점 3루타를 만들어 냈다. 물꼬가 터진 서울고의 타선은 용마고를 11대 3으로 꺾고 사상 첫 황금사자기 우승을 거머쥐었다. 수훈선수는 당연히 홍 씨의 몫이었다. 그 누구도 야구선수 홍승우의 장밋빛 앞날을 의심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자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던 홍 씨. 하지만 홍 씨를 가로막은 것은 야구계 전체에 뿌리박힌 입시비리였다. 홍 씨는 “생각보다 더 부조리한 야구계에 크게 실망했고 야구에 정이 떨어지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일부 학생들은 대학에 돈을 내고 입학하고자 했으며 학교에서도 문서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입시에 필요한 각종 요건은 그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명분일 뿐이었다. 이를 몰랐던 홍 씨는 결국 수시 지원한 대학 중 어느 곳에서도 선수로서 입학을 허가받지 못했다. 홍 씨는 “내가 입학하면 뒷돈을 준 다른 동기가 입학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홍 씨는 비리를 폭로하며 야구계의 이단아가 됐다. 하지만 홍 씨를 힘들게 한 것은 입시 실패라는 현실보다는 인간관계였다. 홍 씨는 “동료들이 폭로를 적극 만류했는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입시에서 탈락할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며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한 것이 괴로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가족들만큼은 그를 적극 지지했다. 홍 씨는 “가족들의 눈물과 지지가 있었기에 마냥 좌절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야구계 관계자들의 눈 밖에 난 상황에서 더 이상 야구만으로 승부할 수는 없었다. 위기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공부였다. 홍 씨는 “사건을 덮으면 입학을 허가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수 있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운동에서의 성과만큼을 공부로 이뤄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고 밝혔다. 물론 10년 이상 쉬었던 공부를 재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홍 씨는 “재수 때 시험장에 가서는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며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꿈에 그리던 서울대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본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야구. 하지만 홍 씨는 야구선수의 꿈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발 테스트에 참여했다. 홍 씨는 “사실 선발 테스트와 무관하게 구단과 합의가 되면 프로 리그에서 야구를 할 수는 있다”며 “다만 여전히 프로 진출과 공부 중 어느 것을 포기할지 정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홍 씨는 새로운 장소,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다. 그는 “팀으로서는 10여 년 만의 서울대 야구부 승리, 개인적으로는 좋은 학업 성취도를 유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긍지 있는 서울대인으로서 부조리에 굴복하지 말았으면 한다”라는 짧고 굵은 한 마디만을 남겼다. 포수의 미트를 향해 묵직하게 직진하는 직구처럼 굳은 신념을 지켜 온 홍 씨의 성공적인 학교 생활을 응원한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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