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봄 강사(정치외교학부)

3월이다. 봄볕이 따스하지만 바람은 아직 매섭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학부 시절의 나는 항상 큰 기대와 희망을 품고 봄 학기를 시작했다. 특별히 학구적인 타입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상 새 학기에 접하게 될 새로운 수업들에 대한 흥미와 기대,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에 충만해 있었다(물론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과 투지도 함께였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학기 중반 즈음이 되면 확연히 줄어들었다. 과목마다 사정은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그랬다. 강의가 지루하다거나, 내가 기대한 것과 수업 내용이 달랐다거나, 너무 난해하다거나 등 이유는 다양했다. 학생이 아닌 강사의 입장에서 지금 생각해봐도 이는 모두 일리 있는 원인 분석이다. 강의를 시종일관 ‘재밌게’ 진행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며, 수강생이 수업의 취지를 잘못 이해할 소지란 항상 존재한다. 수업 내용의 난이도는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법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어떤 수업에도 잘 따라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에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의욕 반감의 문제에 대한 나의 분석은 타당한 것이었으리라.

다만 학부생이었던 내가 내렸던 진단에도 문제는 있다. 아니, 이는 사실 가장 중대한 문제를 간과한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즉 막연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있었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다.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학에서의 공부란 무엇인가?

아마 이 글을 읽는 학생들 중에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이미 나름의 답을 찾아 성실하고 즐겁게 대학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의 얘기를 화제로 이 오래되고 진부한 문제를 꺼낸 이유는 기나긴 학생 생활을 통해 얻은 나의 결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결론은 간단하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다. 세상과 사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사고할 줄 알고,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에 기초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흔히 듣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나에게도 남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의연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외부 조건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잡고 살기 위함이다. 매우 진부한 결론이지만, “이치란 진부한 것이다”.

그런 지력(知力),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 나가는 일이 필수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취직을 하든, 진학을 하든, 졸업 후에 어떤 길을 걷게 되더라도 생각하는 힘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세세한 수업 내용, 교과서에 실린 지식은 증발해버린다 해도 몸에 익은 그 능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암기력은 대학 공부에서 부차적인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학부 시절의 내가 이런 글을 읽었다면 공부 의욕을 더 고취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 조금 더 공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 정도는 됐을지 모르겠으나, 큰 자극은 안 됐을 것 같다. 그런 나 같은 학생을 위해 알기 쉬운, 실천 가능한 팁을 하나 덧붙인다. 수업이건 책이건 그에 대한 질문을 반드시 하나 이상 만들어 볼 것. 공부의 시작은 의문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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