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 대만의 창조경제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경제정책의 핵심 기조로 세웠다. 이후 창조경제는 대통령의 거의 모든 연설문에 등장했지만 정부 인사 누구도 이것의 정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아 ‘공허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여기에 비선실세 최서원(최순실) 씨가 각종 문화사업과 창조경제타운 수립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창조정책은 사실상 폐지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창조경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새로운 산업 시스템을 조성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전략이다. 때문에 창조경제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현재 한국과 비슷한 경제상황에서 창조산업을 도입한 대만은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이에 한국의 창조경제가 폐기의 길 위에 선 상황에서, 대만은 어떻게 창조산업을 육성했는지 짚어본다.

 

 지금 세계의 창조경제는

창조경제라는 용어는 2001년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가 처음 주장했다. 호킨스는 미래에는 개인의 창의성과 그에 기반한 창조활동이 경제가치를 생산할 것이라 예측했다. 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구현돼 경제적 가치를 갖게 되며, 이를 창조상품이라 부른다. 창조경제는 한마디로 이러한 창조상품이 시장에서 생산·교환되고 사용되는 경제체제다.

창조산업은 2008년 경제위기 직후에도 성장세에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더 높은 성장률을 보여 잠재적인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0년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경제위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창조제품 시장이 성장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 엔터테인먼트 및 레저를 열망하고 있음을 뜻한다”며 “각 나라마다 창조경제를 육성할 전략을 고유의 강점과 약점 및 현실을 기반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나라에서는 자국의 상황에 맞게 창조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 등을 연구하는 첨단산업단지를 유치해 신제품 개발에 주력한다. 일본 가나자와는 지역 내에서 전수돼오던 전통공예기술을 보전·지원해 지금은 인구 1인당 중요무형문화재 보유 수가 일본에서 가장 많다. 우리나라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개인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는 창업지원과 중소기업지원에 주력해왔다.

대만이 창조경제 정책을 도입한 것 역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창조경제가 신성장동력으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당시 대규모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대만의 산업구조는 개발도상국의 성장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만 경제는 그 타개책을 창조산업에서 찾고자 했다. 이에 2008년 문화와 예술, 디지털 기술과 지역 전통을 포괄하는 문화창조산업의 발전을 국가발전계획의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대만의 경우 창조산업 중에서도 공예, 음악, 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가 상위 5개를 차지한다. 때문에 대만의 창조경제 정책인 ‘크리에이티브 타이완’(Creative Taiwan) 역시 문화예술산업을 주로 지원한다. 대만은 이제 창조산업에서만 48억 달러의 무역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이는 2012년 기준으로 대만 전체 무역수지의 16%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대만의 창조경제는 어떻게 제조업의 위기를 타개하고 대만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됐을까?

 

버려진 건물을 창조경제타운으로

대만 창조경제의 핵심은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버려진 오래된 건물을 창조산업의 허브(hub)로 탈바꿈하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운상가에 창조경제타운을 조성하고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 대만의 대표적인 창조산업 허브로 자리매김한 ‘화산1914문화창의산업원구’(화산원구)와 ‘송산문창원구’(송산원구) 역시 원래는 각각 와인공장과 담배공장이었다.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 중심부에 위치한 두 곳은 이미 우리나라 여행자에게도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가 됐다.

화산원구와 송산원구의 성공 이후 다른 도시에도 비슷한 시설이 생겨났다. 새로 건물을 짓고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역사적으로 오래된 건물을 다시 사용하는 방식이다보니 각각이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고 있다. 대만 남부의 항구도시 가오슝에 위치한 ‘보얼예술특구’(보얼특구)는 중공업이 쇠락하면서 쓸모를 잃은 물류창고를 활용했다. 때문에 보얼특구에서는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각종 전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한편 대만 중부의 타이중에는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대만 최대의 주류제조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오래된 공장은 ‘타이중문화창의산업단지’(타이중원구)로 탈바꿈했고, 현재는 문화부의 5대 문화창의산업단지 중 하나가 됐다. 공장 한편의 주류문화박물관이 주류공장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매장에서는 전통방식으로 양조한 술을 판매한다.

오래된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식은 예산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작업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송산원구에서 근무하는 경광평 씨는 “과거 담배공장 건물과 창고, 정원 등의 장소를 대여해준다”며 “가격은 주변 시세의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예술가들의 지원서와 활동계획서를 심사한 후 아예 무료로 공간을 대여하는 곳도 있다. 타이중원구에서 근무하는 양정안 씨는 “옛 공장 건물을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기간에도 제한을 두지 않아 오래 머무는 사람도 있고 잠깐만 있다가 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얼특구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이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도록 10평의 공간을 3~6개월간 무료로 제공한다. 보얼특구 측은 “2003년부터 210팀이 지원해 34팀이 선발됐다”며 “초기 자본금 10만 타이완달러(한화 약 400만 원)와 월 운영비 3만 5천 타이완달러(한화 약 140만 원)를 지원해 브랜드를 시장에 실제로 런칭하도록 돕는다”고 밝혔다.

송산원구 내에 위치한 이 건물에서는 소규모 전시가 열린다. 과거 이 건물은 담배공장의 경비실이었다.
보얼특구 곳곳에는 시민들이 직접 공예품을 만들거나 3D 프린팅 기술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체험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원래 술을 만드는 공장이었던 타이중원구에는 현재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위치해 있다. 도자기, 우산, 조각 등 분야도 다양하다.

 

 

창조하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

저렴한 가격으로 작업공간을 구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대만 각지에 분포된 창의원구에는 예술가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여든다. 옛 타이중 기차역사 뒤쪽에 있는 ‘20호창고’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원래 기차역사의 일부분이자 100년도 더 된 창고였지만 지금은 예술가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작업공간이 됐다. 창고 20호부터 26호에는 예술가들이 입주해 각자 자유롭게 예술작업을 할 수 있다. 20호창고 매니저 알제이호 씨는 “입주 전에는 이전에 만든 작품을 심사하는 단계만 있다”며 “주로 타이중의 지역 문화에 주목하며 작업은 그림, 사진, 조각 등 여러 분야에 걸쳐있다”고 말했다.

20호창고의 경우 순전히 작품을 만드는 활동만 가능하고 그 외의 상업활동은 불가능해 예술가들이 작품을 판매해서 수입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창의원구에서는 예술가들이 직접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아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화산원구로부터 지난 2월 한 달 동안 작은 부스를 제공받은 나다 씨도 이와 같은 경우다. 금속 액세서리를 만드는 나다 씨의 작업실은 원래 타이페이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타오위엔에 있다. 하지만 나다 씨는 자신의 작업을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한 달 간 타이페이에 머문다고 했다. 그는 “화산원구 측에 지원서를 냈고 통과돼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며 “공간임대료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아주 적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창의원구에 생산자로 참여하는 이들 중에는 미술 전공자나 직업 예술가가 아닌 사람도 있다. 보얼특구에서는 주말마다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플리마켓이 열린다. 보얼특구 중앙의 넓은 광장에 열리는 마켓에서 시민들은 직접 만든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팔기도 하고 다른 방문자들이 직접 물건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지난 2월 플리마켓 한편에 부스를 차리고 엄마와 직접 만든 잼을 판매한 준 씨의 본업은 엔지니어다. 준 씨는 “손님과 다른 상인들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마켓에 참여한다”며 “미술 전공자가 아닌 나 같은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어 다른 상인들 중에도 취미로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고 소회를 밝혔다. 주말에 이곳에서 가게를 열기 위해 드는 비용은 1일에 한화 8천 원도 되지 않는다.

 

창조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대만에서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난 2월 대만 타이중에서 30분 떨어진 소도시 다리에서는 ‘대만문창예술박람회’가 열렸다. 대만에서는 매년 이런 종류의 엑스포가 여러 번 열리는데, 그야말로 ‘창조할 수 있는 모두’가 참가해 ‘창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선보인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해 거대한 불상 조각부터 대만의 야생화를 그린 그림, 직접 붓으로 적은 부적, 심지어 가게 주인만의 방식으로 만든 버블티까지 없는 게 없다. 대만 각지의 창의원구에서도 곳곳에 체험부스가 마련돼있어 시민 누구나 창조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기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부터 할머니와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자기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데 열중한다.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의 3대 명제를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은 창의적이다. 창의성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에는 시장이 필요하다. 대만에서는 모두의 창의성을 인정하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창조할 수 있다. 또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판매도 할 수 있다.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창의성만을 인정하며, 지원금을 받기 위해 어려운 가정형편을 증명해야 하는, 어느 나라의 창조경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대만에서 창조경제가 성공한 이유와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창조경제가 실패한 이유는 결국 이 세 가지 명제에 있었다.

 

한국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렇게 생각한다

존 호킨스는 “창의성이 꽃을 피우려면 자유가 필요하다”며 “신체적 제약은 물론 편견과 검열, 간섭하는 정부, 그밖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밝혀지며 한국의 창조경제에는 ‘창조할 자유’가 없었다는 것이 증명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대만 창조산업 종사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보얼예술특구 관계자 "대만은 표현과 창조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다. 정부는 특정 주제를 다루도록 강요할 어떠한 권리도 없으며, 불공평한 처우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송산문창원구 이가영 씨 "어떠한 블랙리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계획서를 평가하는 단계에서 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감각이다." 

20호창고 알제이호 씨 "그런 일이 있었다니 놀랍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 것은 인테리어나 건물 증축, 개조 같은 부분 혹은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맺을 때 뿐이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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