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종말인가, TV의 진화인가
TV의 종말인가, TV의 진화인가
  • 최소영 기자
  • 승인 2017.04.0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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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 성장하는 OTT(Over The Top) 시장

요즘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놓친 예능프로그램 또는 영화를 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OTT’(Over The Top) 서비스의 등장으로 TV 프로그램을 핸드폰으로 시청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OTT 서비스는 기존의 TV 콘텐츠 이용에서의 시공간적 제약을 해제하며 채널 선택권이 아니라 개별 프로그램 선택권을 보장한다. 시청자가 편성권을 쥐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TV에선 ‘본방 사수’를 강조하지 않는다.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방송 콘텐츠 유통 창구의 한 갈래가 된 OTT는 앞으로 기존 방송 환경에 어떤 지각변동을 야기하게 될까?

 

 TV 잡아먹는 ‘미디어 공룡’의 등장

방송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격동의 시기를 몇 차례 맞았다. 95년 ‘뉴미디어의 총아’로 불리는 케이블TV의 등장과 동시에 다채널의 시대가 열리면서 지상파 시청률 60%는 옛말이 됐다. 이어 2008년엔 인터넷(IP)TV가 출현하면서 미디어 시장은 또 한차례 격동기를 가졌다. IPTV를 통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보는 주문형비디오(VOD)가 인기를 끌면서 더 이상 ‘본방사수’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다음 주자론 OTT 서비스가 출범했다. OTT 서비스는 일정 요금을 지불하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에서 영화, 드라마와 같은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김진호 IT 칼럼니스트는 “미디어의 흐름이 거대해지고 가속화됨과 동시에 OTT가 등장하면서 미디어 시장은 더욱 복잡한 형태로 파편화되고 다양화됐다”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행태에서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단말기로, 원하는 시간에 기호에 맞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로 변하고 있다”고 현재의 미디어 현상을 설명했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영상 플랫폼으로는 TV가 유일했던 시대가 가고 각종 모바일 플랫폼이 등장한 지금, 본격적인 OTT 시장이 열린 것이다.

OTT가 기존 방송 환경의 ‘룰’을 바꾸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미국이다. 수백 개의 케이블TV 채널이 지상파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통한 OTT 서비스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기존 방송사를 위협하고 있다. 이같은 OTT 행렬의 선두에 선 사업자는 ‘넷플릭스’다. 한 달에 최소 7.99달러만 내면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 영상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윈도우 PC부터 닌텐도, 아이폰, 구글TV까지 인터넷이 연결된 대부분의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997년 비디오와 DVD를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2007년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유료 가입자만 5,700만 명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그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의 유료방송 시청자들이 넷플릭스로 플랫폼을 옮겨가는 움직임도 커졌다. 노무라 리서치가 닐슨 통계를 활용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월 미국 케이블TV 시청률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2.7% 감소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케이블 채널인 AMC는 시청률이 19% 정도 떨어졌으며 또 다른 채널 비아콤은 23%나 하락했다. 김진호 칼럼니스트는 “넷플릭스와 아마존프라임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케이블TV 시청자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같은 현상을 진단했다.

국내에도 ‘한국판 넷플릭스’를 표방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CJ 헬로비전이 내놓은 스트리밍 서비스 ‘티빙’, KBS․E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가 모여 만든 플랫폼 ‘푹’, SK플래닛 ‘호핀’, 그리고 이동통신사 3사도 OT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국내 OTT 업체는 해외의 OTT 모델과 달리 수익을 창출하는 것보다 무료 서비스를 제공해 가입자 수를 늘리고 고객을 유지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티빙은 CJ 계열 실시간 채널 전면 무료화를 선언했으며 SKT가 만든 ‘옥수수’의 경우 특정 휴대폰 요금제를 쓰면 OTT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김진호 칼럼니스트는 “이동통신 3사는 OTT 서비스 제공으로 ‘고객유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OTT가 무료로 제공되는 요금제를 만들거나 타 통신사보다 다양한 VOD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를 내세워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OTT 서비스 푹을 이용하고 있는 김수진 씨(24)는 “1인가구이다 보니 집에 TV가 없어 방송을 시청하기 힘든데,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지난 방송과 영화를 볼 수 있어 편리하다”며 “특정 요금제를 이용하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무료라는 점에서 서비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옥수수’를 이용하는 공민철 씨(22)는 “해외 OTT 서비스에 비해 저렴할뿐더러 실시간 방송 채널과 다양한 국내 VOD 콘텐츠가 제공되는 것이 국내 OTT 서비스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OTT로 살아남기

거대한 몸집을 가져 ‘미디어 공룡’이라 불리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한 지 두 번째 해를 맞이한 지금, 넷플릭스의 국내 성적표는 예상과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유입될 당시 글로벌 절대 강자의 출현으로 국내 OTT 업계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국내 업체들의 가입자가 급증하고 OTT 시장이 확대된 것이다. 모바일 앱 분석사이트 와이즈앱에 따르면 토종 OTT인 ‘왓챠플레이’, 티빙 등의 앱 다운로드 수는 넷플릭스를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기준 왓챠플레이 앱 다운로드 수는 14만여 건으로 넷플릭스 18만여 건에 비해 뒤처져있었지만 올해 1월 통계에는 왓챠플레이가 2배 가까이 늘어난 29만 건을 기록해 넷플릭스를 5만여 건 앞섰다. 김진호 칼럼니스트는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메기효과’가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OTT에도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OTT 1위 기업인 넷플릭스와 겨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해외의 유료방송 시장 구조가 국내와 다르게 형성돼있어 국내 유료방송 시장을 꿰뚫고 있는 국내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주 무대인 미국의 경우 케이블 유료방송을 시청하려면 매달 100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케이블이나 IPTV와 같은 유료방송의 요금이 월 만원대로 미국의 10분의 1 가격에 불과하다. 미국은 유료방송의 요금이 높다 보니 적게는 한 달에 7.99달러만 지불하면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켰지만, 국내의 상황은 이와 다른 것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신호철 전문연구원은 “미국에서는 유료방송을 끊어버리고 OTT를 이용하는 ‘코드커팅’이 트렌드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값싼 케이블 TV를 두고 돈을 내고 OTT를 사용한다는 것이 잘 통용되기 힘든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OTT 사업의 핵심은 콘텐츠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부진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현지화가 덜 돼 국내 이용자를 유인할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넷플릭스에서 왓챠플레이로 서비스 플랫폼을 옮긴 권서연 씨(28)는 “넷플릭스엔 생소하거나 이미 많이 소비된 영화가 주를 이루고 국내 콘텐츠 제공이 부족해 더 다양하고 나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왓챠플레이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OTT에 비해 가격경쟁에서도 뒤쳐지면서 국내 성장률이 저조했던 것이다. 타이탄플랫폼 정영석 마케팅전략본부장은 “OTT 서비스의 큰 가치가 다양성에 있는 만큼 획일적인 콘텐츠 제공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OTT, 남은 숙제는?

일각에선 토종 OTT에 비해 부진한 성장을 보이는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평가하지만, 성급히 판단하기엔 이르다. 넷플릭스가 1년간의 워밍업과 시장 조사를 토대로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9,300만 명의 가입자를 거느리는 넷플릭스의 저력은 자체 제작 콘텐츠에 있으며 국내에서도 자체 콘텐츠 제작의 움직임이 막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한국 첫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한다고 발표했으며, 작년엔 자체 콘텐츠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제작 완료했다. 이같은 행보에 국내 업체들도 자체 콘텐츠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옥수수는 지난해 <마녀를 부탁해>를 시작으로 모두 10여 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었으며 지난 1월 KT의 ‘올레tv 모바일’은 <산 너머 산>이라는 SNS와 예능을 결합한 신개념 토크쇼를 자체 제작한 바 있다. 정영석 본부장은 “취향과 개성이 다양해진 이용자들의 성향을 반영해 다양한 장르의 자체 콘텐츠를 제작함으로써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렇듯 국내에서 OTT 서비스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OTT 서비스 중심으로 방송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무선 통신과 인터넷, 스마트기기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콘텐츠 이용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유선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1,947만 명, 이동전화 가입자 5,787만 명, 와이브로 가입자 83만 명으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도 OTT 시장이 성장한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또 OTT가 자체 콘텐츠를 만들게 되면서 방송산업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다양화돼 방송 유통 구조의 변화도 초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호 칼럼니스트는 “OTT가 당장 지상파와 케이블TV에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흐름은 한국의 기존 방송 환경을 바꿀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며 “기존 방송 콘텐츠 유통창구는 TV에 의존적이었는데 OTT의 등장으로 유통창구가 파편화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계가 사라지는 미디어 시장에 기준점이 될만한 제도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현행법으론 OTT를 규제할 수 없으며 국내에선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방송시장 환경도 해외와 달라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 때문에 정부는 규제법 도입을 따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 해외 기업인 넷플릭스에 비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호철 연구원은 “넷플릭스는 이동통신사 등이 구축한 유무선 통신망을 무료로 사용하지만 한국 기업이 지불하는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이용료도 내지 않는다”며 “한국의 OTT 사업자들은 세금은 물론 통신망 이용 대가인 CDN 이용료까지 매달 내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해외 기업이라는 이유로 국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아 모든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OTT의 가파른 성장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모양새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유행’처럼 보이며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대한 논의만 있을 뿐 OTT 콘텐츠의 핵심인 ‘다양성’에 대한 장기적인 논의는 부재해 보인다. 이용자 중심의 새로운 방송 유통 생태계를 맞이하기에 앞서 단단한 채비가 필요하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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