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문화부장

휴가를 나온 김지훈 일병은 군인에겐 공짜로 커피를 준다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대단한 보상은 아니었지만 김지훈 일병은 그래도 군인으로서 존중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여자들이 그와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여자들은 곧 김지훈 일병을 힐끔 보더니 속닥거린다. “스벅은 군인한테 커피 공짜로 준대.” “서비스는 고기 방패들한테 다 가네.” 말로만 들었던 ‘남성혐오’에 충격을 받은 김지훈 일병은 집으로 돌아가고, 12시가 넘어서 들어온 친누나 김지영 씨에게 한탄한다. “사람들이 나보고 고기방패래.”

김지훈 일병의 사연은 실화가 아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 ‘자유주의’ 페이지에 올라온 픽션 게시물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92년생 김지훈’으로 치환한, 그러니까 소위 ‘미러링’한 이 게시물은 82년생 김지영이 경험하는 한국 사회의 밀도 높은 여성혐오를 가져와 ‘군인인 자신, 남자인 자신이 겪는 애환’을 분출하는 데 소비한다. 김지훈 일병이 토로하는 애환이란 이런 것이다. “일병 월급 16만 3천 원이야. 걔들 한 달 커피 값만 합쳐도 내 월급이라고.” “전역하고 알바를 알아봤는데, 흔히 말하는 ‘꿀알바’는 여자들을 원했다. 그래서 그냥 몸 쓰는 일을 했다. 억울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남자를 우대할 테니까.” “취업준비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여자들은 그 시간에 자격증을 땄고, 학점도 높았다. 하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사회에서 남자를 우대할 테니까.”

해당 게시물에서 ‘미러링’한 원본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지영 씨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1,500원짜리 커피를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바로 옆 벤치에서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그와 같은 카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옆 벤치의 남자들은 곧 김지영 씨를 힐끔 보더니 속닥거린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82년생 김지영 씨가 마주친 현실은 공고히 쌓인 가부장제의 위업이다. 출산과 함께 경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된 김지영 씨는 육아의 책임을 모두 짊어지다 결국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인 김지영 씨는 한순간에 피해자가 된다. 여기서 가해자는 대한민국의 가부장제가 만든 여성혐오이며, 결국 남성들이다.

그러나 김지훈 일병은 과연 정말로 여성이 가한 남성혐오의 피해자일까? 그가 토로한 애환을 잘 살펴보자. 일병 월급을 고작 16만 3천 원으로 책정한 것은 여성들인가? 남성만 군대에 보낸 것은 여성들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남성들만 군대에 강제로 입대시키는 것은 가부장제의 산물이다. 군 정책을 좌우하는 국회의 여성 의원 수는 고작 17%에 불과하다. 여성들의 경력을 단절시키고 집에서 아이나 키우게 하는 것과, 남성들을 2년 동안 군대에 가두는 것 모두 가부장제의 부산물인 것이다.

이 와중에 조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남성혐오’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여성을 가해자로 상정하는 글에서조차 여성혐오는 너무나 뚜렷하다는 점이다. “걔들 한 달 커피 값만 합쳐도 내 월급”이라는 김지훈 일병의 말은 ‘매일 스타벅스에서 엄청난 사치를 부리며 수다나 떠는 된장녀’ 신화의 전형적인 서사다. ‘꿀알바’에서 여성들만 뽑히는 이유는, 여성들을 눈요기 거리, 알바터의 꽃으로 삼기 위함이다. 일터에서도 여성들은 짙은 화장과 불편한 치마로 언제나 완벽한 외관을 유지해야 한다. 김지훈 일병은 급기야 “사회에서 남자들을 우대할 테니까”라며 스스로의 입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결코 ‘여성상위’ 사회가 아님을 고백하고야 만다.

여성상위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여성은 결코 남성을 혐오할 수 없다. 사회 구조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 가해야만 ‘혐오’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수많은 김지훈은 여전히 애환을 호소하며 존재하지 않는 가해자로서의 여성을 비난하고 있다. 과연 이들의 억울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며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인가. 이제 그만 억울함을 멈추고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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