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안기부 간첩조작사건 고문 피해현장

지난달 25일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오니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이 설립한 재단법인 ‘진실의 힘’에서 기획한 ‘기억의 루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맑게 갠 하늘이 어느새 다가온 봄을 알리던 이 날, 참가자들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고문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함께 남산 일대를 걸으며 과거 잔인했던 국가폭력의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생사조차 알 수 없던 가족들

충무로역에서 출발해 5분 정도 걸으니 어느새 남산 기슭 초입에 다다랐다. 현재는 작은 표지판 외엔 아무것도 없는 빈터라 인솔자의 안내가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칠법한 곳이지만, 과거 이곳엔 주자파출소가 위치해있었다. 주자파출소는 군사독재 시절 국가가 기획한 대규모 간첩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피해자의 가족들이 면회를 할 수 있는 일종의 면회소였다. 하지만 진실의 힘 송소연 상임 이사는 “가족들이 얼굴이라도 보여 달라며 애원해도 실제 면회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가족들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부모, 자식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한편, 주자파출소 터에서는 남산 곳곳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 몇 채도 볼 수 있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각종 공안정치의 중심이었던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안기부의 본산은 현재 어디서나 볼법한 낡고 평범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권력자 1인을 위한 기구, 중앙정보부

문학의 집 앞에 위치한 작은 안내판

주자파출소 터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현재는 ‘문학의 집’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이 보였다. 푸른 정원과 평화로이 지저귀는 새소리 때문인지, 작게 붙어있는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이라는 팻말이 없었다면 막강한 권력자의 거처였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인들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고 가장 먼저 만든 기관은 바로 중앙정보부였다. 송소연 상임 이사는 “군사정변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종필이 중앙정보부의 초대 수장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보부는 창설 당시 국내외 정보의 수집과 수사를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실제 활동은 정권 안정을 위한 반정부인사에 대한 탄압이 주를 이뤘다. 송소연 상임 이사는 “이같이 중앙정보부장 공관이 청와대와 가까운 남산에 자리한 것에서부터 중앙정보부가 본연의 정보 수집 업무보다는 청와대나 대통령의 행동대장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 함께 참여한 이채훈 전 MBC PD는 “윤이상 작곡가나 이응로 화백 등 독일 유학생들이 연루됐던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공안 조작 사건의 중심에도 역시 중앙정보부가 있었다”며 이는 “반공 분위기를 조성해 박정희 개인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잊혀진 그날의 기억

진실의 힘 박동운 이사장이 남산 안기부 제5별관으로 사용됐던 서울시청 남산별관 앞에서 사색에 잠겨있다.

중앙정보부장 공관에서 ‘위안부’ 기념비를 지나 걸어가면 과거 중앙정보부 및 안기부 본관으로 사용됐던 서울유스호스텔이 있다. 이 날 유스호스텔은 수련회를 온 중·고등학생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만이 가득했지만, 과거 이 일대에 끌려와 고문을 받았던 피해자들에게는 이곳이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1981년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으로 17여 년간 징역을 살고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진실의 힘 박동운 이사장은 “지금도 이곳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다”며 당시 경험을 털어놓았다. 박동운 이사장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실종됐는데, 안기부는 실종된 아버지와 가족들이 교류하면서 가족 간첩으로 활동했다며 박동운 이사장을 잡아들였다. 박동운 이사장은 “안기부에 도착하자마자 수사관들이 발로 머리를 짓밟고 고춧가루 물을 뿌리는 등 온갖 고문을 자행했다”며 “고문 때문에 하지도 않은 일을 허위로 자백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끼워 맞출 수 있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안기부는 계속해서 수사 결과를 조작했다”고 말했다. 박동운 이사장은 당시 검찰에 안기부에서의 허위 자백을 고백했으나, 검사 역시 “다시 안기부에 끌려가야겠냐?”라는 말로 협박할 뿐이었다고 전했다. 송소연 상임 이사는 “박동운 이사장이 빼돌린 기밀로는 군복무한 부대의 인원과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가 지목됐다”며 “이 당시 조작 간첩사건에서 안기부는 고속도로 차선 수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식 이름 등 억지스러운 정보까지 기밀이라고 주장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유스호스텔을 나와 ‘소릿길 터널’을 지나면 과거 잔혹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던 안기부 제5별관에 닿을 수 있다. 소릿길 터널은 안기부 제5별관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꼭 지나는 터널이었는데, 많은 고문 피해자들은 이곳을 지날 때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었다고 증언했다. 현재 소릿길 터널은 이러한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등이 들리도록 만들어져있는데, 이는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남대 재학 시절 전대협 활동 중 제5별관에 끌려와 고문을 받았던 송소연 상임 이사는 “처음 이곳에 끌려와 고문을 받을 때 이제 죽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두렵고 고통스러웠다”며 “이제는 남산에 많이 와봐서 그나마 괜찮아졌지만, 풀려난 후 처음으로 이 일대에 다시 왔을 땐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악명을 떨친 제5별관이었지만,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남산 둘레길과 남산 타워를 만날 수 있다. 송소연 상임 이사는 “내가 고문을 받은 건물이 아주 외딴곳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청춘을 즐기고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하는 그런 장소 바로 옆이었다는 걸 알고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

국가폭력이 자행됐던 역사의 현장들은 현재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그 흔적을 점차 지워가고 있다. 실제로 남산 안기부 본관, 제5별관 등의 건물들은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시청 남산별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안내판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일반인들은 그 시절의 역사를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두웠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들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기억하기도 싫은 과거를 기억하고, 증언하고,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행사를 기획한 진실의 힘 이사랑 간사는 “피해자들에게는 이 장소를,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럽지만, 앞으로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잘못된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며 행사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스페인 태생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기억의 루트’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루트’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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