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모든 허기는 다가오는 허기 앞에 무력하다. 소설가 김훈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나는 하필이면 사랑하는 사람의 기일에 읽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일에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여서, 그 생리적인 반응에 혼자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던 게 기억난다.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런 위로를 받는 때는 대개 잔인한 일을 겪고 있는 순간이라고, 또 다른 소설가가 위로하는 것을 읽으며 나는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덕에 나는 굶어죽지 않고 살았다.

그러는 중에 해가 바뀌었고, 나는 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전체학생총회(총회) 기사를 작성하면서는 유난히 간식을 자주 먹었다. 취재원들과의 연락이 수월하지 않아 내용에 비해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취재원들이 전화를 받길 기다리면서 치킨을 먹고 콜라를 삼키는데, 문득 그들이 느껴왔을 허기와 그들에게 일어났던 자연스러운 일들의 목록이 떠올랐다. 총회를 코앞에 두고 몇 주째 학교가 시끄러운 지금, 그 시끌시끌함 뒤에 많은 이들의 허기와 자연스러운 일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시흥캠퍼스 투쟁방향을 두고 밤샘 토론 끝에 부결되기를 수 차례였고, 최장기간을 기록하며 이어오던 본부점거는 결국 교직원과의 물리적 충돌 끝에 해산됐으며, 본부는 마이스누 팝업창과 자료집을 통해 끊임없이 본부점거본부의 불법성과 시흥캠퍼스 사업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학생들 사이에서도 본부점거의 행보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으며, 그 와중에 총장은 기자 간담회를 열어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고, 본부점거 학생들의 행정관 앞 천막 농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며칠 새로 다가온 총회 안건인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기조 유지’를 두고도 여러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각 단과대 학생회장단 46인은 실시협약 철회기조 유지에 반대하며 본부와 협상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의 자보를 발표하는가 하면, 실시협약 철회 포기는 전면 재논의를 포기하는 것과 동일하다며 철회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자보가 부착되기도 했다. 총회 안건을 논의하던 총운영위원회 내부에서도 의견차가 매우 다양했다고 한다. 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다른 문제가 겹쳐오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정신없는 중에도 밥을 먹고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제 실시협약 철회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본부와 협의의 장을 열어 앞으로 지어질 시흥캠퍼스에 학생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징계 대상이 되면서까지 긴 긴 겨울 내내 차가운 행정관 바닥에 앉아 끼니를 해결했던 이들에게 이제 그만 점거 농성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작 이렇게 됐어야 할 일이라는 말이 많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위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흥캠퍼스 투쟁방식은 전적으로 총회의 투표 결과에 달린 것이다. 혹자는 본부와의 투쟁이란 패배가 예정된 것이고 총회 역시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나간 허기가 무력하다고 해서 다가오는 허기를 무시할 수 없듯, 새롭게 떠오르는 문제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지나간 노력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총회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삽화: 강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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