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박사 명단에 묻어 있는 한국 현대사의 기억들



 

▲ © 강동환 기자

지난 9월 23일(목) 닐 골트 교수(미네소타대ㆍ의대)가 명예의학박사 학위를 받으면서(『대학신문』 10월 4일자) 서울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자는 총 100명을 기록하게 됐다. 명예박사는 학술적 업적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여도를 고려해 뽑기 때문에 명예박사 수여자의 면면에는 당대의 현안이 드러난다. 수상자들의 주요 경력을 시대상황과 함께 살펴보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외교 목적 주로 고려 1960년대까지 미국ㆍ미 동맹국 주류

▲한ㆍ미관계의 높은 의존도 반영, 미국 관련 인사 대다수

1945년부터 시작된 미군정기는 1948년 8월 15일까지 이어졌다. 서울대는 1948년 8월 10일, 극동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와 초대 주한미군사령관인 존 하지에게 제1, 2호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제4호 수여자 필립 제섭은 하지의 정치 고문 역할을 한 관료이며, 제5호 수여자 존 덜레스는 미 국무부 고문으로 근무하며 6ㆍ25전쟁 직전 38선을 시찰한 미 국무부 장관이다.

정용욱 교수(국사학과)는 “제13호 수여자인 미 상원의원 해리스는 이승만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미국 내에서 이승만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만드는 등의 역할을 했는데, 이처럼 1950년대 수여자 중에는 이승만과 관련된 인물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 상원의원 등 정치인, 미8군 사령관 등 군인, 주한 미 대사 등 정책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학위 수여는 1960년대 말까지 꾸준히 이어졌으며, 역대 학위 수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1953년 6ㆍ25 전쟁이 끝나고, 전후 처리가 시작되면서 한국에 대한 원조와 관련된 인물들에게 학위가 수여되기 시작했다. 제10호 명예박사 맥시미노지부에노는 한국의 재건과 복구를 위해 설립된 UN 한국통일부흥위원회 ‘언커크(UNCURK)’ 위원이었고, 제11호 수여자 C. 타일러 우드, 20호 수여자 윌리엄 원은 대한원조를 담당한 UN군의 경제조정관이었다. 이 외에도 제19호 수여자인 UN 한국재건단 ‘운크라(UNKRA)’의 단장 존 콜터, 제30호 수여자인 미 대외원조처 유솜(USOM) 처장 레이몬드 모이어, 제40호 수여자인 UN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 비네이 센 등이 이에 해당한다.

 

1999년까지 주로 정부가 추천, 수여기준은 '국가원수급'

우리나라는 1971년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 개발에 성공했는데, 같은 해 수여된 명예박사 제70호가 국제미작연구소 품종개량과장 헨리 비첼이며 73년 수여된 제71호 명예박사가 미국농산물유통자문위원인 헤르만 사우스워스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교육 분야에 대한 원조도 미국을 통해 이뤄졌다. 조영달 교수(사회교육과)는 “제17호 수상자인 미네소타 주지사 오발 푸리맨은 미네소타대로부터 전쟁 후 서울대의 발전방향을 위한 원조를 받은 ‘미네소타 플랜’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백충현 명예교수(법학부)는 “제100호 수여자인 닐 골트 교수 역시 ‘미네소타 플랜’을 통해 서울대를 지원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제26호 수여자인 피바디대 수석고문 윌라드 가슬린과 제29호 수여자인 ICA(국제협력재단, 국제개발처 AID의 전신)수석고문 아더 슈나이더도 서울대 재조직과 관련된 ‘피바디 계획’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학자, 문화교류 관계자가 수여자에 일부 포함되기 시작했다. 제39호 수여자인 이태규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만든 초대 문리대 학장으로, 유타대 교수로 재직 중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신국조교수(화학부)는 “제36호 수여자인 유타대 총장 헨리 아이링은 이태규 교수와 함께 연구한 동료”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46호는 미 학술원 회원 해롤드 쿠리지, 제47호는 한미재단 부총재 오스카 쵸크가 받았다.

 

▲반공 및 경제외교의 흔적?

6ㆍ25후 격화되는 미ㆍ소냉전 상황에서 ‘반공 정권’이 연속 집권한 남한은 자유진영과의 유대를 공고히 해왔다. 이 시기에는 특히 대만(중화민국), 월남, 서독 등 냉전의 최전방에 속한 인물에 대한 학위 수여가 많았다.

종전 후의 첫 수여자인 제8호 총통 수석고문 주가화, 제9호 수여자인 대북사대 교수 부유는 대만인이다. 또 월남 대통령 고 딘 디엠에게 제16호, 구엔 반 티우에게 제62호, 월남 하원 의장 트랑-빈-레에게 제35호가 수여됐다. 고 딘 디엠과 구엔 반 티우는 미국의 지지를 받아 국가 원수가 되었으나, 후에 미국의 지지를 받은 다른 군부 인사에 의해 고 딘 디엠은 사살됐고, 구엔 반 티우는 망명했다.

서독 인사들 중에는 주한 서독대사 리하르트 헬쓰에게 제23호, 독일 대통령 오이겐 마이어에게 제37호, 특명전권대사 칼 뷩거에게 제41호, 뮌헨대 교수 페오도르 뤼넨에게 제54호, 그리고 하원 부의장 슈미트 하우젠에게 제75호 명예박사 학위가 수여됐다.

특히 제37호, 41호 학위가 수여된 1964년은 서독에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를 파견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에 필요한 3500만불의 외화를 벌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란 석유공사 총재 마누체르 베그발이 제76호 학위를 수여받을 무렵은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1987년 혁명 이전 팔레비 왕정 치하의 이란은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기도 했다.

한편, 박태균 교수(국제대학원)는 “1960년대 이후 제3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 북한을 의식, 명예박사 학위를 제3세계 국가의 인물에게 수여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며 제77호인 가봉의 봉고 대통령을 예로 꼽았다.

 

▲6ㆍ25, 베트남 전쟁 동맹국 우대

6ㆍ25 전쟁 때 남한에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는 미국, 영국, 그리스, 남아공, 네덜란드,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에티오피아, 캐나다, 콜롬비아, 태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호주 등 16개 국이다.

수여자 명단을 보면 이들 국가가 월등히 많다. 필리핀 외상 펠릭스베트로 세라노에게 제24호, 태국 외상 타날 코만에게 제31호, 태국 수상 타놈 초른에게 제52호, 태국 부수상 프라팟 싸티엔에게 제57호, 이디오피아 황제하이레 세라세 1세에게 제58호 명예박사 학위가 주어졌다.

한편 베트남전에 한국과 함께 월남을 도와 참전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대만, 필리핀, 태국, 영국 등에서도 많은 수의 학위 수여자가 나왔다. 특히 베트남전 (1965~1975년)중에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해롤드 홀트에게 제53호, 뉴질랜드 수상 키이스 호리요크에게 제59호 학위가 수여됐다.

▲최근의 동향

1990년대 이후에는 ‘외교적 고려’ 일변도에서 벗어나 세계 평화에 기여한 인사에의 학위 수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제93호 학위는 국제적십자위원회 총재 코넬리오 솜마루가에게, 제95호는 중동의 긴장 완화 시대를 열었으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화정책을 반대하는 수구파에 의해 암살된 이스라엘 수상 이츠하크 라빈에게, 제96호 학위는 흑인인권운동을 이끈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에게 수여됐다. 국내 인사로는 김수환 추기경(제97호)이 눈에 띈다. 한편,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제91호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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