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사냥꾼/폴 드 크루이프
이미리나 옮김/반니
472쪽/20,000원

지금이야 병에 걸리면 그 원인을 세균이나 바이러스에서 찾고, 병원에서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생물학 지식이 전무했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가 서구 문명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악마가 사람을 괴롭혀 질병이 발생한다는 생각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의사가 진단하든, 목사가 진단하든, 농부가 진단하든 질병에 대한 관점과 해결책은 모두 미신과 신화에 속했다는 점에서 동일했다. 이러한 편견은 소수의 과학자가 수많은 실험을 시도한 뒤에야 비로소 깨졌다. 폴 드 크루이프의 『미생물 사냥꾼』은 걸음마 단계에 있던 미생물학을 성장시킨 과학자 13명의 실험과 삶을 조명한다.

사람은 기존의 관념에 위배되는 사실이 주어지면 의심하고, 경악하다가, 나중에는 그 사실을 발견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생물학자 모두 주위 사람들의 멸시와 학계의 공격을 이기고 찬사를 받기까지 지난한 실험과 고뇌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미생물의 존재조차 인정되지 않던 시대에 레벤후크는 이웃의 낄낄거림을 견디며 현미경 발명에 심혈을 기울였다. 수백 개의 현미경을 만들고 수천 종류의 미생물을 반복해서 쳐다본 뒤에야 레벤후크는 영국왕립협회의 초청을 받았고, 사회도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생물의 존재가 사회에 받아들여진 뒤에도 생명에 대한 비과학적 이론이 판을 쳤다. 조그만 미생물이 어떤 부모도 없이 저절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은 기독교의 천지창조설과 결합해 교회의 지지를 받으며 유행했다. 스팔린차니가 자연발생설을 반박하는 일련의 실험을 진행하고, 파스퇴르가 공기만 통하는 S자 모양의 플라스크에서 세균이 발생하지 않음을 밝힌 뒤에야 모든 생물은 생물에서 유래한다는 생물속생설이 확립됐다.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임이 밝혀지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시골의 한 의사 코흐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직접 개발한 배지에서 결핵균을 순수 배양함으로써 하나의 세균이 하나의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병원체인 미생물이 도리어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파스퇴르가 병에서 회복된 닭들이 면역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발명한 공수병 백신이 실제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나서야 미생물이 면역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확립될 수 있었다.

자기 이론을 증명하려는 과학자 각각의 개성도 눈길을 끈다. 바젤의 의사 가레는 자기 팔에 균이 가득한 시험관을 문질러 그곳에 뾰루지와 종기가 생겨나자,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임을 확인했다며 환호했다. 데이비드 브루스는 체체파리가 수면병을 일으킨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2,870마리의 체체파리를 일일이 잡아 5마리의 원숭이를 물게 하는 치밀한 실험을 진행했다. 미생물의 독이 토끼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치사량이 넘을 때까지 토끼 몸에 용액을 집어넣은 에밀 루와 200달러를 주고 인간을 황열병 실험용으로 사용한 월터 리드의 실험은 ‘과학의 발전과 인류를 위해’ 윤리를 희생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학계의 꾸준한 난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저자가 책을 출간한 1926년에는 과학자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아직 밝힐 수 없는 사실들이 존재했다. 파스퇴르가 세균보다 작아서 현미경으로 끝끝내 보지 못한 공수병 병원체는 바이러스였다. 메치니코프와 그의 반대자들은 백혈구와 혈액 중 무엇이 면역 작용을 일으키는지 격렬히 논쟁했지만, 현대 면역학에 따르면 백혈구와 혈액 모두 인간이 세균에 대항하는 데 자기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보이지도 않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공수병 백신을 만드는 장면은 끝없는 자연의 비밀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현대 자연과학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치니코프와 반대자들 사이의 논쟁은 서로 다른 과학적 결론에 다다라 모순적으로 뒤엉킨 실타래 같은 현대 자연과학이론도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저자는 과학자들의 성격이 그들의 실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의 실험은 당시 사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를 소설 같은 형식으로 쉽게 서술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이 정립되는 데는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과 멸시를 견뎌야 했던 미생물학자 한 명 한 명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미생물 사냥꾼』은 그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모든 과학자의 실험이 완벽한 것이 아니고, 과학자의 발명품이 100% 효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며, 과학자가 완벽한 성인(聖人)일 수도 없다. 누군가는 옳을 수도, 누군가는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자들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변화된 세계를 상상할 권리를 주었고, 우리에게는 변화된 세계를 선물했다는 점을 환기하며 미생물학자의 인간적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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