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역사/미셸 파스투로
고봉만 옮김/민음사
424쪽/16,800원

사람들은 파랑을 생각하면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떠오른다고 말하곤 한다. 파랑에 시원하고 경쾌하다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색의 역사를 탐구해온 중세사 연구자 미셸 파스투로는 자신의 저서 『파랑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통념이 고대에도 유효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파랑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시도한다. 저자는 고대 벽화부터 현대의 청바지까지 파랑과 관계된 모든 것을 소재 삼아 색의 역사라는 조금은 낯선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세계사에서 12세기까지 파랑은 그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저자는 파랑이 귀했던 이유가 당시의 기술로 파랑을 표현하기 힘들어서라고 설명한다. 특히 로마인들은 파랑을 미개한 색이라며 등한시했다. 그들에게 파랑은 세련되지 못한 동양의 색, 야만적인 북방 민족의 색 그리고 싸늘한 시체의 색이었다. 고전 라틴어에 파랑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어휘조차 없을 정도로 파랑에 대한 로마인들의 혐오는 격렬했다.

12세기에 이르자 고위층을 중심으로 파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상징하던 색에서 왕족과 성모의 색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저자는 신학과 예술 분야에서 파랑의 지위가 급부상한 데에는 두 원인이 주효했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발전해 선명한 푸른빛을 이전보다 더 쉽게 뽑아낼 수 있게 됐고, 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색 조합과 상징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두 번째 요소 때문에 고대사회의 검정, 빨강, 하양의 3색 체계가 중세에 이르러 파랑, 초록과 노랑이 합류한 6색 체계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익숙한 빨강-파랑의 대립쌍은 13세기 이후에서야 확립됐다. 저자는 파랑이 빨강과 대조를 이루는 ‘도덕적인 색’으로 인식되면서 파랑의 지위가 더욱 상승했다고 주장한다. 파랑은 ‘정중한 색’이었기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강렬한 색조를 배격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에도 배척받지 않았다.

파랑이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색으로 완전히 올라선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다. 저자는 파랑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전환됐던 12세기 전후처럼 이때 또한 기술 발전과 사회 발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기술적으로는 새로운 합성 안료가 개발돼 깊은 색조의 감청색을 만들어내기 쉬워졌고, 사회적으로도 프랑스와 미국 등지의 혁명에서 파랑을 진보, 꿈과 자유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무채색과 유채색이 분리되고 중세의 6색 체계가 빨강, 파랑, 노랑의 3색 체계로 재편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파랑의 역사』는 한 색이 지닌 상징적 가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주목하는 책이다. 저자가 설명했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파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불호(不好)에서 호(好)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파랑을 선호하는 이유는 각자 개인화돼 있다. 저자가 파랑이 안정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아득한 느낌을 준다고 표현한 것처럼 하나의 색 안에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파랑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고대 유럽의 인류는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를, 중세 사람들은 차분하고 따뜻한 성모 마리아를, 현대인들은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떠올린다. 결국 『파랑의 역사』는 제목 그대로 ‘파랑’의 역사인 동시에 문화, 사회, 정치와 종교를 포괄하는 인류의 역사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