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가들, 경성에 삶의 흔적을 남기다
근대건축가들, 경성에 삶의 흔적을 남기다
  • 조정빈 기자
  • 승인 2017.04.0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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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건축가들/김소연
루아크/276쪽/15,000원

영화 <밀정>이나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처럼 1930년대 경성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가슴 아프고 치가 떨리는 시대이건만, 한껏 멋을 부린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화신백화점과 경성역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 그 시대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건축계는 이러한 경성의 근대건축물이 일본식 서구 건축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며 외면해왔다. 건축스토리텔링연구소 아키멘터리 김소연 대표는 자신의 저서 『경성의 건축가들』을 통해 한국의 근대건축을 B급으로 취급하는 기존의 시각에 반기를 들고,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건축가들의 삶에 집중한다.

모든 건물은 그 건물을 설계하고 지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오랜 역사를 반영한다. “건축은 사물이 아니라 사연”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건축가들은 각자가 살아온 삶의 기억을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오롯하게 녹여냈다. 조선 최초로 서구식 근대교육을 받은 건축가 박길룡은 평생 서구식 건축을 해왔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조선식’ ‘과학화’ ‘능률화’를 골자로 하는 재래주택 개량론을 전개했다. 그는 ‘최초’로 대변되는 자신의 명성을 바탕으로 개인 건축사무소를 차리고 「건축신문」을 펴내며 후배 조선인 건축가들을 살뜰히 챙기기도 했다. 한편 그의 20년 후배인 장기인은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전통건축에 눈을 뜨고 우리말 건축용어 체계 정립에 일생을 바쳤다. 『한국건축사전』을 비롯해 그가 펴낸 여러 건축 관련 교재들은 현대 문화재 수리 기술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이처럼 건축이라는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파 훗날 건축계에서 그 노력을 인정받은 건축가들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더 많이 남겼다. 저자는 당대 건축가들이 마주한 씁쓸한 이야기도 균형 있게 담아냈다.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강윤은 이화여대 본관과 중강당 등의 건물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고풍스러운 로마네스크 건축은 경제성장기의 불도저 건축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업계에서 잊힌 채로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다. 한편 저자는 박인준의 사례를 들어 근대건축계의 폐쇄적 집단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다. 박인준은 미국 대학에서 정규 건축 교육을 받았지만, 일본어 실력이 모자란 데다 인맥도 부족했던 탓에 귀국 후 개인주택 설계만 하며 조용히 지내야 했다.

저자는 근대건축계가 닫힌 사회였던 데에는 일제의 탓이 컸다고 지적한다. 일본인 건축사무소는 조선인을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 건축가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총독부에 취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1920년대 이후에는 조선인 건축주가 등장했지만, 상당수가 친일파였기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건축가는 단지 기술자로만 인식됐고 출셋길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격랑의 시대에 건축가들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나아갈 길을 선택했다. 이천승은 차별을 딛고 꿈을 펼칠 기회를 찾아 만주로 향했고, 박동진은 전통건축이 무기력한 국민성의 표현이라며 민족개조론자가 돼 김성수와 손을 잡았다. 건축가들은 각자의 길을 갔고 그 선택의 결과를 경성의 여러 건물에 흔적으로 남겼다. 무심코 지나쳤던 명동 신세계백화점, 고려대와 이화여대처럼 서울의 건물 곳곳에는 일제 치하라는 역사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떠돌아야 했던 건축가들의 삶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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