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대학체제 개편안을 살펴보다

‘입시지옥’이라는 단어, ‘어느 삼수생의 자살’과 같은 안타까운 사건은 한국의 교육 병폐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 졸업장 하나로 인생 전체가 좌지우지된다는 생각 때문에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극한 경쟁 속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이에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 교육행태를 타파하기 위해 대학체제 개편을 통한 대학 평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학계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곧 치러질 대선에서도 대학체제 개편안이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대학체제 개편안이 제시된 배경과 체제 개편의 다양한 방안, 그리고 그 실효성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학벌주의 타파와 사교육 문제의 해결책

대학끼리의 통합 및 연합을 통해 대학 서열을 완화하겠다는 대학체제 개편안은 기형적인 입시형태의 주요한 원인으로 간주되는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제안됐다. 김성훈 교수(이화여대 사회교육과)의 「대학 학벌이 대졸자의 첫 취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상위 30개 대학 졸업자의 연봉엔 개인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학점과 같은 변수보다 대학순위 자체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의 취업성과가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학생의 성장 덕분이라기보다는 대학의 이름값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으로, 대학서열이 학벌주의의 근원이 된다는 주장에 힘을 더한다.

이처럼 학벌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비의 지출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2016년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교육비 총액은 18조 606억에 달한다. 경제 침체로 소비심리는 얼어붙었지만, 사교육비는 2015년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통계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높아질수록 사교육비는 점점 증가하는데, 이는 학생성적과 사교육비 지출 수준 간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사교육비를 더 지출할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의 자녀들이 성적을 더 잘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명문대 진학률 또한 증가하게 된다. 교육의 대물림이 일어나 계층 이동의 기회로 여겨져 왔던 교육의 가치가 붕괴되고 기득권 공고화를 위한 수단이 돼버린 것이다.

서울대가 타 국립대보다 제왕적 위치에 놓여있으면서도 연구 성과나 대학순위 측면에서 발전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 역시 대학체제 개편의 한 근거가 됐다. 김영석 교수(경상대 사회교육과)는 “서울대가 우수한 학생과 정부의 지원을 독점하면서도 대학 경쟁력이 세계 유수 대학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균형발전을 통해 대학 간의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체제 개편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처럼 학벌주의 타파, 사교육 철폐, 국립대의 균형적인 발전 등을 이유로 체제 개편을 통한 대학 평준화는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방향성만 있는 대선 공약, 현실에선 천차만별

대학체제 개편의 필요성은 이전부터 여러 단체에 의해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1996년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서울대의 나라』에서 서울대의 독점적 위치가 입시를 비정상화했다는 지적 이후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현 대학 체제의 개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1년 장회익 교수(물리학부)를 포함한 20명의 대학교수가 ‘서울대 개방안’을 발표하면서 논의는 더 활발해졌다. 학벌 타파를 위해 서열 정점에 놓여있는 서울대를 개방하자는 해당 제안은 10개 내외의 국립대학이 연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서울대 교수진을 각 대학으로 분산시켜 열린 교육을 펼치는 시스템을 말한다. 장 교수의 제안에 따르면 체제 개편 이후 서울대는 네트워크의 우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원 과정을 제공한다. 장 교수의 안을 시작으로 이후 대학 평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체제 개편안들이 발표됐고, 정치권은 이를 수용해 공약으로 활용하는 등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17대·18대 대선에 이어 곧 있을 19대 대선에도 대학 평준화를 위한 대학체제 개편안이 제시되는 등 매 대선마다 빠지지 않고 관련 공약이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지난 1월 출간한 그의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에 공동입학·공동학위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역시 교육과정 클러스터를 통해 공동학위·통합전형으로 나아가는 대학통합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수준의 공약은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아직 당론과 문 후보의 캠프 공약이 합쳐지지 않아 확실한 방향의 공약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 후보의 경우 공약은 확정됐지만, 이 또한 큰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대학체제 개편의 경우 고려해야 할 조건과 그 방안이 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다양해 개략적인 방향성과 실제 정책의 도입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네트워크의 범위 문제다. 가장 좁고 기본적인 범위는 거점 국립대 간의 통합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 안에 서울대가 포함되는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대해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형식의 제안이 있었다. 초기에는 서울대가 학벌사회를 조장하기 때문에 서울대 학부를 100% 개방하고 서울대는 대학원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안이 있었다. 이후 서울대 역시 다른 대학들과 똑같이 공동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하지만 서울대 관계자들의 반발과 정책 시행 뒤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학부 일부만을 개방하는 방법이나 아예 서울대를 포함하지 않는 네트워크 역시 고려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공립대와 사립대의 포함 여부 역시 논의의 대상이다. 이 논의틀에서 사립대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개입을 받는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할지,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형 사립대’로 남을지 선택할 수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의 주도 하에 네트워크와 연합을 맺게 되고, 독립형 사립대의 경우에는 자율적으로 참여 여부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네트워크의 범위가 결정되면 결합된 대학들의 운영 형태와 교육과정, 학사제도에 대한 논의 역시 이뤄져야 한다. 우선 대학의 형태를 결정해야 하는데, 단과대학인지 종합대학인지에 따라 교육과정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립대들이 단과대학으로 운영된다면 자격을 갖춘 학생들을 입학시킨 후 교양과정 기간을 거쳐 원하는 대학으로 배분시키는 학제개편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국립대들이 각각 종합대학으로 남는다면, 굳이 앞에서의 과정은 필요하지 않다. 또 입학 시 어떻게 인원을 선발하고 배치하며 졸업할 때 학위 수여는 어떤 대학의 이름으로 할지 등에 대한 세심한 고려와 결정이 필요하다.

서울대 폐지, 올바른 선택인가?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공립대학을 대상으로 한 대학체제 개편안은 ‘서울대 폐지론’으로 간주되며 ‘스누라이프’나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입시 정상화와 학벌주의 타파를 위해 현재까지 제시된 정책 중 가장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평준화 방안, 과연 어떤 점에서 논란이 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위의 거점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1. 대학 서열화, 없앨 수 있는가?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과연 국공립대학 평준화를 통해 대학 서열화의 철폐가 가능한지의 여부다. 학내에서는 “학벌서열 1위인 서울대가 평준화되더라도 명문 사립대학이 제1대학으로서의 역할을 해 학벌주의는 여전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 역시 존재한다. 많은 국립대가 서울대 수준의 질 높은 강의를 제공한다면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사립대가 더는 최상위 명문대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김영석 교수(경상대 사회교육과)는 “국립 거점 대학이 서울대 수준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등록금이 비싼 명문 사립대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떨어져 결국 네트워크에 합류하는 방법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해당 의견은 낙관적인 전망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학내의 A교수는 “뛰어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명문 사립대의 경우 대학통합네트워크에 굳이 포함되지 않아도 학생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즉, 대학통합네트워크의 참여 여부를 사립대의 자율에 맡긴다면 명문 사립대는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은 채 최상위 학생을 유치하며 현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개선이 동반되지 않고 이뤄지는 대학 평준화가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청년 취업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대학 평준화가 이뤄지면, 이들 모두 고용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교육 없는 세상’ 김성수 정책위원은 “공기업의 지역 할당제와 같이 거점 국립대 네트워크 졸업자의 취업 기회가 어느 정도 보장돼야 성공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석 교수 역시 “정책 도입 이전에 각종 제도를 정비하며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신중한 준비 및 기반 강화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2. 재정지원과 역량강화는 가능할까?

성공적으로 정책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립대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확충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본부 측에서 밝힌 서울대의 국고 출연금은 2017년 기준 4,550억 원이다. 보조출연금, 등록금, 발전기금, 연구비 등을 모두 합치면 서울대의 총예산은 1조 5,000억 원이다. 모든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서울대의 예산에 버금가는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영석 교수는 “고등교육 교부금법을 통해 서울대에 버금가는 국립대 예산의 확보가 가능해진다”며 “충분한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의 역량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교수는 “고등교육 교부금법은 조세개편을 의미한다”며 “획기적인 수준의 증세 없이는 대학예산 충원이 불가능하다”고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서울대의 국제적 위상 약화 역시 서울대가 대학통합네트워크에 참여했을 때 가장 크게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다. 서울대가 받는 재정적 지원보다 대학 발전이 더디다는 지적에 A교수는 “세계 유수 명문대의 경우 서울대 예산의 4~5배,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의 명문대의 경우 서울대 예산의 2~3배에 이른다”고 답했다. 서울대가 국립대 중 독보적으로 많은 금액의 예산을 지원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세계 유수의 대학에 비해서는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통합네트워크 참여 이후 서울대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재정지원을 기대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며 “재정 확보가 인재 유치와 연구 수행으로 이어지는 대학 구조에서 이전과 같은 예산 수준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현재의 국제적 입지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3. 공적 책임과 수월성, 서울대는?

대학이 어느 정도의 공적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를 포함하는 보통교육 과정에서는 모든 학생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때의 교육은 ‘복지’의 개념에 가깝다. 반면 대학 교육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고등교육으로서 국가의 훌륭한 인적자원을 성장시켜 사회로 배출해내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투자’의 개념에 가깝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개념이 다시 평가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7년 대학 진학률은 69.7%이다. 절반을 훌쩍 넘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만큼 고등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김성수 정책위원은 “급변하는 지식과 기술을 익혀 새로운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며 “고품질의 고등교육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은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공적 책무성’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재를 선발해 효율적으로 교육하는 ‘수월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서울대는 현재 여러 수시 제도를 마련해 지역과 사회계층 면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일정 비율로 입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적책임을 일정 부분 수행해오고 있다. A교수는 “일정 수준 공적 책임을 지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공적 책임을 이유로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는 서울대만의 선발방식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삽화: 박진희 기자 jinyhere@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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