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설입 가는 버스와 녹두 가는 버스도 잘 구분 못하고, 내 소속이 아닌 다른 단과대 건물에 가려면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하는 새내기인 내가 학생총회에 간 첫 번째 이유. 3월 11일,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학교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팔다리를 잡고 밖으로 내동댕이치던 직원들의 술 내음 섞인 고함도 기억하고, 학생들을 우리 속의 원숭이 구경하듯 쳐다보던 보직교수들의 위선적인 냉소도 기억한다. 그 장면을 목도하고 행정관 앞에서 친구들과 껴안고 펑펑 울며 말했었다. 우리 4·4 총회에 꼭 모이자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학교를 용서하지 말자고.

두 번째 이유. 나의 학교가 무너지는 것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학문의 장을 꿈꾸며 입학한 학교인데 막상 들어와보니 내가 생각한 학교의 이데아와는 설입에서 윗공대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학생들의 정당한 투쟁을 ‘반지성적’ 행위로 매도하면서까지 지으려는 게 사람도, 교육도 없고 오직 ‘돈’을 위한 기형적인 캠퍼스라니. 학교의 이런 모습에 모순을 느꼈을 뿐더러, 이를 방관하면 과연 학교에서 교육이 제대로 설 자리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가끔은 현수막을 들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확성기를 잡으며 외쳤다. 4·4 총회에 꼭 모여 달라고. 학교의 주인인 우리 모두가 학교를 바꿔나가자고.

그렇게 다짐하며 총회가 열리는 날까지 기다렸다. 총회 날, 그렇게 넓은 아크로가 사람들로 꽉 찬 것을 보고 놀랐고, 마음이 벅차기까지 했다.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행정관 침탈 다음 주 월요일에 열렸던 집회에서 이천 명에 가까운 학우들이 모여 행진을 하는 것을 보고 총회가 성사되리라고 직감했다. 반대로, 행정관 안에도 직원들이 모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저들도 우리가 3월 11일 겪은 공포를 느끼고 있을까.’

그렇게 찾아올 것만 같지 않던 우리 학교의 민주주의가 다시 아크로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천여 명의 학우들에 의해 성낙인 총장 퇴진 요구 건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기조 유지 건이 가결됐다. 하지만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이천여 명 학우들의 뜻은, 열다섯 명의 총운위원들에 의해 묵살 당했다. 추운 밤 딱딱한 돌바닥에 앉아 미세먼지를 들이마시면서도 한 표를 행사한 학우들의 의견은 기만당했다. 총학생회가를 부르는데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그렇게 느낀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총회 다음 날 학우들의 말을 들어봐도 우리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회의감, 학생들의 투쟁을 가로막은 총운위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있었다. ‘이럴거면 왜 총회를 열었던 것이냐’ ‘다음부터 총회에 가고 싶지 않다. 또 이런 식으로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정할 것 아닌가.’ 총운위가 학내 민주주의에 입힌 상처는 꽤 크다. 시행세칙을 무시하고 학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뜻을 멋대로 박탈한 것 뿐만 아니라, 학내 정치에 참여하려는 학우들의 의지마저도 짓밟았다. 심지어 이후 총운위에서 그들의 자세를 봐도, 총회에서 결정한 것들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취할 수밖에 없다.

총운위는 그 날 모인 이천여 명의 학우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데 총운위가 그것을 꺼려한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인가. 관악의 봄을 되찾아 오려는 우리에게는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는데, 바로 몇 발짝만 남아있는 그 길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하지연
(인문광역·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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