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취재부장

지난해 5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체결에서부터 4일(화) 전체학생총회(총회)에 이르기까지, 거진 1년 가까이 학생사회는 시흥캠퍼스 문제에 대한 움직임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 ‘투쟁의 시간’은 엄청난 성과를 냈다기보다는 서울대 학생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과정에 가까웠다. 학생사회는 결국 스스로가 기성 정치판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이 문제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본부와 이에 맞서는 학생들’이라는 본부 대 학생 프레임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려고,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고, 그렇게 해서 학생사회의 움직임을 우리 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하려고 그런 행동을 해온 것이 아니라고 혹자는 반발할지도 모른다. 정말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학생사회가 시흥캠퍼스 사안에 대응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이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평범한 학생들이 가볍게 던진 표 하나, 별 생각 없이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겐 명분과 주장의 근거가 됐으며, 양측을 특정한 진영으로 가두고 비방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정치적인 프레이밍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시는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총회 전 본부점거본부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했던 ‘본부가 실시협약 철회 기조에 찬성을 호소하는 현수막과 자보만 철거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들 수 있다. 정말로 자보 철거가 그렇게 이뤄지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므로 확신할 수 없다. 어쨌거나 이는 ‘우리는 실시협약 철회 기조유지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달리 본부로부터 핍박받고 있는 피해자’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하게 피력하는 행동이다. 동시에 ‘본부를 무조건적인 가해자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정의로운 학생들과 같은 편이 아니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총회 표결 결과 학생들의 총의가 ‘실시협약 철회 기조 유지’로 드러났으니, 아주 성공적인 정치 행위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총운영위원회(총운위)가 이번 총회를 파행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강경한 투쟁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프레이밍을 위한 ‘건수’를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5일 있었던 제22차 총운위에서 몇몇 참관인들은 “총운위와 성낙인 총장은 환상의 짝꿍”과 같은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그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경 노선의 학생들은 이제 총운위와 실시협약 철회 기조 반대를 원하는 학생들을 본부와 별 차이가 없는 집단으로 규정해버렸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총운위는 총회에 있었던 학생들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했으며 학생 대표자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했고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 기조 유지’라는 학생 총의를 실현할 만한 강경한 투쟁방안에 소극적이니까. 현실적으로 재투표가 이뤄질 수 없었으며 재투표를 했더라도 본부점거와 같은 강경책이 행동방안으로 의결됐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은 그들의 고려사항에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다. 현실이라는 맥락을 지워버리고 원칙과 명분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손쉬운 방법인가.

이제 학생사회 내부 갈등의 골은 더 이상 메워질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서로를 ‘정치적인 적’으로 규정 내려 버린 상황에서 과연 그들이 앞으로 손을 잡게 될지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생들은 이제 윤리적인 기준이 아닌 정치적인 기준을 들이대 자신은 올바르고 상대편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친 본부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매도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곳은 한없이 정치적인 곳이 돼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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