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정호 기자

 

▲이번에 완간한 『한국사 이야기』는 생활사, 민중사 중심의 책이다. 생활사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기존의 역사서들이 민중사, 생활사에 거의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민중사는 백정, 노비 등 당시 피지배 계층을 비롯해 우리 역사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생활환경에서 살았는지 알려준다.

딱딱하고 건조했던 역사서와 달리 쉽고 재미있는 역사책을 쓰는 데 중점을 뒀다. 이것이 나의 역사관이다.


▲저서에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 서술했다. 최근 역사 교과서에 이같은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역사 서술이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가감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2차적인 문제이고 그들이 조국의 독립을 우선시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그 동안 김일성은 물론 박헌영 등 남로당 계열의 업적은 남쪽의 역사 서술에서 배제돼 왔음에도 일부 학자들에 의해 사회주의 계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돼 왔다. 결국 연구업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제도의 제약에 역사교육이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친일 진상 규명 역시 중요한 이슈다.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동안 여러 시민단체의 요구에 의해 친일 문제, 동학농민혁명 문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문제, 정신대 문제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특별법 제정 등이 진척돼 왔다. 시민단체가 이러한 운동을 하는 것은 특별히 여당 세력을 지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신장을 위해 꾸준히 해 온 운동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법안이 조사 대상을 중좌 이상으로 제한한 것이나, 조사 과정에서 내용을 공포하면 처벌을 받게 한다던지 하는 것은 원래 의미를 반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법 제정 이후에 개정법을 제출한 상태인데 한나라당에서는 국가 보안법 폐기와 함께 계속 반대하고 있다. 민주국가와 인권을 지향하는 지금 과거에 무고하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복권시키는 것이 과거사 청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그것은 낙성대경제연구소 등 일부 경제사학계의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상품시장을 개발하려는 것으로 제국주의적 정책이다. 돼지 키울 때 돼지 생각해서 살찌우는가? 다 잡아먹으려 하는 것 아닌가. 일본도 우리나라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확보의 차원에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불거진 정신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돈 때문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도 없지 않다. 또 초기에는  정신대라고 해도 공장 노동자로 취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후기로 올수록 대부분 강제, 사기 동원인 경우가 많다. 자발적인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이를 가지고 ‘자발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역사 왜곡이다.

과거사 청산의 핵심은 무고하게 피해받은 사람들을 복권시키는 것


▲‘지구화’ 시대에 민족주의를 논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물론 ‘민족’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규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식민지기 이후 적어도 공유하고 있는 민족적 정서 정도는 있다고 봐야 한다. 흔히 민족 개념은 식민지 국민들의 자각을 통해 발전한 근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19세기 말 외세의 침탈 등에서 민족독립국가를 지향했다. 그 과정에서 민족의식이 생긴 것이며 적어도 이를 실체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공격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저항적, 방어적 민족주의이다. 일본이 전범의 신사를 참배하고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등 우리 역사가 왜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민족주의를 해체한다면, 이는 무장해제하는 것과 같다. 민족 개념 없이 인권만을 존중하자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얘기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해 말해달라.

 

영토 회복보다 우리 역사,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분히 감정적이고 국수적인 우리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 만주 회복을 주장하는 ‘다물운동’이 그 사례다. ‘다물’이란 고구려 시대의 동맹체와 같은 의미로 이를 회복하자는 운동인데, 백두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등의 감정적인 행동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옛 영토를 회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뺏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구려사를 바로 잡지 않으면 우리 역사는 모두 흔들리게 된다.

중국도 고구려사가 한국 역사임을 다 알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라고 조작하고 있다.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통일 이후를 위한 대비의 측면이다. 앞으로 통일 후 중국이 ‘고구려는 중국 역사니까 대동강 이북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를 위한 빌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과거 소련 해체 과정에서 많은 소수민족들이 그랬듯 통일 후 많은 조선족이북한 주민들과 결합해 독립을 요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 조선족은 중국 소수 민족 50여 개 중 인구 수로는 11위이지만 단결력이 강하고 의식수준도 높다. 따라서 조선족도 티벳처럼 독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고, 중국이 이를 억압하는 데 하나의 역사적 무기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간도 문제다. 간도는 18~19세기 우리나라 이주 농민들이 개척했다. 이후 청의 강희제가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는 등 간도 영유권을 놓고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 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우리의 외교권을 가져간 일본이 만주를 차지하기 위해 1909년 중국과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중국 땅이 되었다. 앞으로 통일국가가 되면 간독 국경문제가 다시 제기 될 수 있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학자는 자신의 학문을 통해 사회운동 하는 것이 바람직해

 


▲자신만의 역사관이 있다면.

 

나는 역사를 쓰면서 ‘개혁’과 ‘평등’이라는 화두를 중시한다. 인간은 가만히 두면 썩는다. 그때는 개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에 오면 신분 제도가 거의 대부분 해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양반-상놈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평민들도 신분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이는 양반 입장에서는 사회질서가 문란해지는 것이지만 평민 입장에서는 평등운동인 것이다. 또 이러한 운동들이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면 곧 개혁이 된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다. 실학파나 정조의 개혁이 다른 학자들보다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인터뷰 온 자네들만 봐도 우리집 마당 감나무를 인상적으로 볼 수도 있고, 이 동네 맑은 공기가 좋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역사관이라는 것도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와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며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무엇을 자세히 보고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관이 도출되는 것이다.

 

 

▲학문과 사회운동과의 관계는.

 

나는 현장을 뛰면서 역사를 해 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자라면 운동에 참여하더라도 데모나 집회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글을 통해 가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부터 글을 통해 독재에 저항해 왔고 또 역사의 소재 자체도 고답적인 것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된 얘기들이나 진보적인 역사학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의도에서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도 발족한 것이었다. 사실 당시 도청 도 당했고, 언제 잡혀갈지 몰라 겁도 많이 났었다. 그러나 학술운동 단체인 만큼 함부로 손대지 못했던 것 같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학자가 할 일이 많다. 항상 운동을 하면서도 학자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학생들에게 인문정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싶다. 물론 돈도 벌어야 하고 경제가 발전해야 학문이나 문화도 발전하는 법이다. 그러나 너무 실용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문정신이 성숙한 지식인이 되어 주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분간은 고구려와 관련한 강연회가 많다. 강연을 통해서 대중 의식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사회 활동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사회 활동보다는 책을 쓰는 일에 몰두할 것이다. 지식인의 본령은 책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동학농민전쟁사』를 2년 정도 후에 내 놓는 것이 목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