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서
사회학과 석사과정

지하철 안에서 말없이 스마트폰에 눈길을 고정하던 이들이 어떤 역에서 한꺼번에 내린다. 개찰구를 나와 동일한 출구로 향한다. 같은 곳에 모인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한다. 이들의 수를 두고 누군가는 수십만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수백만이라고 했다. 아무렴 어떤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인파가 동일한 시공간에 몇 달간 모이기로 약속하고, 약속을 지켰다. 그 ‘성과’와 무관하게 이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였다. 이 기적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적이 꼭 멀리서 대규모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4일, 다른 때와 장소였다면 절대 그만큼 모이지 못했을 이들이 모였다. 그 중 누군가는 강의실에서 당신의 앞에 앉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식당에서 당신의 뒤에 선 줄의 일부를 이을 것이다. 무심히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동일한 시공간에 모여 의사를 확인했다. 우리가 어딘가에 소속돼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을 통해서다.

두 달 전, 학부 졸업을 앞두고 문득 아득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이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물론 이렇게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을 듣고 과제물을 제출하며 이수한 학점들의 총계로서 주어지는 졸업장에서 찾을 수 있는 이름이 있다. 학교 식당을 이용할 때마다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얼마간의 할인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학생사회’니 ‘대학사회’니 하는 말로 가리키는 것이 단지 이러한 행정적 의미의 소속만은 아닐 것이다. 저런 말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차라리 졸업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몇몇 학생들이 높이 들었던 피켓에서, 학생식당에서 배식을 받을 때 생협 노동자들이 착용하고 있는 리본에서다. 리본과 피켓에 쓰인 구호를 따라 어딘가에 모인 우리는 묻는다. ‘이것이 국가인가?’라고 물음으로써 통치 수단을 스스로 배반했던 현실을 탄핵했듯이, ‘이것이 대학인가?’ 라고 물음으로써 캠퍼스 곳곳에서 교육되고 있는 언어의 진실성을 추궁한다. 공동체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다른 구성원들이 단 하나의 언어를 바라보며 함께 모인 광장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속을 확인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물론 이 놀라움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광장은 금세 닫히고 언어는 연약하기에, 한 번의 기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언어와 현실의 괴리를 좁히려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자료를 모으고 대자보와 문건을 쓰며, 잡지와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자가 되고자 선거에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노력 끝에 열린 광장의 유산을 공동의 기억으로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미래에 열릴 또 다른 광장을 예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점점으로 남아 있다가 어딘가로 사라졌을 수도 있는 낱낱의 한숨들이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고마움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광장이 순간의 기적이 아닌 일상의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바로 이들이 돼야 하기에. 어쩌면 ‘저 준비라는 말조차 특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각자의 말과 글을 가지고 광장에 나오기를 기원한다’고 적었다가,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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