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와의 대화 | 임솔아 시인을 만나다

임솔아 작가의 소설 『최선의 삶』의 표지에는 고개를 수그린 소녀가 서 있다. 힘없이 떨궈진 고개는 소녀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소녀는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굳게 쥐고 있다. 고개는 숙일지언정 소녀는 자신만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 소녀는 임솔아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 중퇴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합격하기까지 그는 그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아왔다. 그 속에서 생겨난 악몽과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자신들은 그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시 「옆구리를 긁다」로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장편소설 『최선의 삶』으로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작가로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적하면서도 조금은 소란스러운, 한 카페에서 임솔아 작가를 만나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좋지 않은 세상, 어서 벗어나렴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 『최선의 삶』 중

『최선의 삶』의 주인공인 강이는 부모의 바람 때문에 명문고에 위장 전입하게 된 소녀다. 하지만 가난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 때문에 강이는 학교 내에서 따돌림 받는 외부인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질 낮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출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세상과 섞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강이의 최선을 받아주지 않는다. 십대 때부터 이어진 임솔아 작가의 악몽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강이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도 가출로 인한 고등학교 중퇴, 그 후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 등 잘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삶’을 살았지만 세상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명절 때 만나는 친척들은 저를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으로 취급했어요”라며 “최선을 다해서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그 방식들에는 끝없는 노력, 진지한 태도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비아냥거림이거나 폭력 같은 것도 있다. 그는 “방식만 다를 뿐 소설의 모든 인물들이 그들 각각의 최선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요”라며 강이를 걱정했던 강이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강이의 어머니에게는 강이를 걱정하고 위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그 최선이 폭력적이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세상이 강이를, 그리고 임솔아 작가의 최선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 역시 제도권 내의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세계로의 피난을 위해 절로 갔지만, 그곳도 기존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인생의 바닥을 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봄이 돼 꽃들이 피어나면 그가 머물렀던 절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꽃은 금방 시들었고, 관광객을 많이 모아야 하는 절은 밤마다 새 꽃을 한 트럭 싣고 와서 시든 꽃을 전부 뽑아내고 새 꽃으로 다시 심는 작업을 했다. 그는 “이와 비슷했던 일들을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버리고 다시 살아있는 것들로 교체하는, 조금이라도 시들면 또 다시 죽여버리는, 그런 세상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선지 임솔아 작가는 “어릴 때는 제가 서른 살 넘어서까지 살 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세상과 사회를 유지하는 제도권 밖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고, 제도권 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제도권 내에서 타협하며 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오랫동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시인과 소설가로서 등단하며 얻은 어느 정도의 안락함과 편안함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그는 “양가감정이 동시에 있는 것 같다”며 “타협이 주는 안락함이 편안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도 든다”고 말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과거의 임솔아는 세상과 타협한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임솔아를 찾아와 그 앞에 마주서고, 그를 바라본다. 과거의 그, 과거의 ‘나’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나’는 현재의 ‘나’를 찾아오고 그는 수많은 ‘나’ 사이에서 작품을 만들어낸다.

벗어나지 못하니 ‘나’는 살아있음을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모래」 중

임솔아 작가의 시에는 ‘나’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소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의 악몽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어야 그에 대해 쓸 수 있을 텐데 타인에 관한 것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며 타인보다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자기 자신도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슬픔 같은 감정을 느낄 때나 마음속에서 자아가 분열할 때를 포착해 시에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에 꼭 ‘나’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 「모래」에서는 ‘악착같이 매달린 물방울’ ‘술래’와 ‘숨은 아이’ ‘벌거벗은 돼지 인형’ 등 다양한 타인과 사물이 등장한다. 마지막 연의 한 구절인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에서 ‘무수한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타인을 지칭한다. 그는 “타인이 이해되는 순간은 한정돼있다”며 “혼자 있는 사물들의 모습은 타인이 나로 느껴질 때를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타인이 ‘나’로 느껴지는 한정된 순간에는 타인에 대해 말한 것도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에 그는 “오히려 조금 떨어져 있을 때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밖에 없음에도, 내 옆에 기댄 애인이 오히려 한없이 멀어 보일 때가 있다. 반면 방음이 안 되는 옆집 자취방에서 자취생이 울 때면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 또 다른 ‘나’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는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매미의 허물을 주워본 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매미의 허물은 엄청 정교하고 힘을 조금만 줘도 쉽게 바스러져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시 「노래의 일」의 ‘지푸라기 끝에 간신히 매달린 매미 허물들을 주웠다’라는 구절에서 매미의 허물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게 있어서 매미의 허물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물 중 하나였고, 그랬기에 그는 “매미의 허물을 발견하면 매우 소중히 여겼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솔아 작가가 ‘나’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이 그가 타인에 대해 아무 고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너’ ‘당신’이나 ‘우리’를 지칭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너’ ‘당신’이라는 단어가 시에 들어오면 이들이 누구인지 드러내기가 어려워진다. 시 속에 ‘너’가 나오려면 ‘너’라는 인물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는 “이런 인물의 등장은 시 자체로는 이상해지기가 쉬워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같은」의 ‘맨발의 소년’, 「개처럼」의 ‘눈동자가 검은 아이’, 「계속」의 ‘노인은 쓰러졌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달려갔다’ 등의 표현에서 나오는 소년, 아이, 노인, 여자 등 지칭하는 바가 명확한 표현만을 시에 등장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는 “예외적인 경우 ‘너’ 같은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이게 조금 위험하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며 “‘너’ ‘당신’이나 ‘우리’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해요”라고 말했다.

임솔아 작가에게 자신의 글은 이야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 "특정한 메시지보다는 울분 같은 감정이나 흘러가는 날들의 덩어리 같은 거예요"라며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작품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인내와 사고, 시를 만들어내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예보」 중

임솔아 작가는 시를 느리게 쓰는 편이다. 그는 “「아홉 살」「아름다움」처럼, 가끔 기적처럼 시가 한 번에 써질 때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마감할 때마다 그런 기적을 상상하곤 해요”라며 웃었지만, 대부분 그의 시들은 오랜 고민 끝에 탄생한다. 보통 그는 메모장에 생각나는 것을 모아두고, 이를 바탕으로 시를 쓴다. 임솔아 작가는 시에 들어갈 단어 하나를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이틀까지 찾는다. 오랫동안 단어와 표현을 고민하며 시를 쓰는 그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시와 천재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며 “집요할수록, 오래 앉아있을수록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라고 자신의 창작관을 설명했다.

그는 시를 쓸 때 참고하기 위해 한동안 단어사전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단어, 내가 절대 쓸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을 모아놓는 사전이 있었다”며 “요즘은 잘 안 쓰지만 지금도 단어를 모은다”고 말했다. 임솔아 작가는 새로이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그가 처음 시를 읽기 시작했을 때 읽었던 김종삼 시인의 「두꺼비의 역사」에 나오는 ‘두꺼비 한 마리가 맞은편으로 어기적 뻐기적 기어가고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기적 뻐기적’이라는 단어를 가리키며 “만든 말임에도 불구하고 두꺼비가 기어가는 모습을 너무 정확히 나타내서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 시를 보고서 그는 새로운 단어들을 모아놓고 서로 조합하는 식으로 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새로이 그가 만들어낸 단어 중 하나가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제목에 등장하는 ‘괴괴한’이라는 말이다. 그는 “기괴한 날씨라고 하면 기괴하다기보다는 너무 평범한 느낌이었어요”라며 단어를 새로이 만든 이유를 말했다. ‘거거한’ ‘괵괵한’ 등 다양한 단어의 조합을 늘어놓고서 고른 것이 ‘괴괴한’이었다. 하지만 단어를 새로이 만든다고 해서 항상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번에 꽂히는 단어도 있지만, 그나마 제일 나은 것으로 타협하는 경우도 있죠”라고 말했다.

임솔아 작가의 작품은 ‘나’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이와 동시에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등장인물은 그에게 있어서는 ‘나’지만, 이 인물들이 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것처럼 독특하거나 특별한 자아를 가진 이들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현재 20대, 30대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정서를 가진 평범한 사람에 가깝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머리를 감거나 전공 서적을 읽는 장면들은 모두 ‘나’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같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분명히 그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에겐 죽기 전 꼭 써야 할 자신의 악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신의 첫 장편 소설인 『최선의 삶』을 언급하며 “딱 이 소설만큼의 악몽이 비워졌다”고 말했다. 그에게 쌓여있는 악몽 모두를 글로 내보낸다면 이를 전부 비워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타협에 대해 생각이 바뀌면서 새로운 악몽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제도권에 들어오긴 했지만, 제 일로 생계유지가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더라고요”라며 운을 뗀 그는, “제도권 내 질서들과 끝내 타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요”라고 말했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타협과 화해를 해냈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타협과 화해를 할 수 없다면 제도권 내에서 지내기가 다시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내던져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제도권 밖의 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쓸쓸함을 담담히 말했다.

사진캡션: 임솔아 작가에게 자신의 글은 이야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 “특정한 메시지보다는 울분 같은 감정이나 흘러가는 날들의 덩어리 같은 거예요”라며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작품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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