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관악의 봄을 열어젖힌 것은 흐드러진 봄꽃이 아니라 서릿발 같은 물대포였다. 본부점거가 해를 넘기면서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본부와 학생들의 대립은 해소할 수 없는 것이 돼 버렸고,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공간에는 극단의 증오와 폭력만이 상처로 새겨졌다. 본부점거와 실시협약 철회에 대한 정견의 차이는 학생사회 내부에도 치유하기 어려운 분열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본부점거는 3.11 폭력 사태라는 비극과 4.4 학생총회 파행이라는 웃지 못할 코미디로 끝이 났다. 상대가 손에 칼을 쥐고 있는지 총을 쥐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한쪽 손은 잡고 있어야 한다는 협상의 원칙이 무색하게도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만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흥캠퍼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캠퍼스 밖으로 눈을 돌려도 봄의 풍경은 찬란하기보다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광기 어린 경마장 안에서 대중들은 정당이라는 안장에 올라탄 채 출마한 5명의 주자가 ‘치매’ ‘조폭’ ‘특혜’ 따위의 카더라에 걸려 비틀거리는 광경에 열광한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됐을 때 대한민국의 경제정책, 복지정책, 노동정책, 안보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경기장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매서운 추위를 광장의 촛불로 녹여버린 위대한 시민들은 어쩌면 “이게 나라냐”라는 절망과 분노에 지치고 질려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드디어 뭍으로 올라왔지만 9명의 미수습자, 그리고 3년 전 그날의 진실은 아직도 잔인한 암흑의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국경을 구분하지 않듯, 한반도에 들이닥친 슬픔의 봄도 남북을 가리지 않나 보다. 태평양 너머에서는 북한 선제타격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북한의 협박에는 광기의 끝이 날카롭게 벼려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한·중 양국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와중에 미·러 대립의 불똥은 시리아에서 동아시아로 언제 옮겨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처럼 한반도의 종말시계가 초를 다투는 엄중한 판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안보 공백은 처참하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군통수권자로서 국가를 보위하던 전직 대통령은 한반도의 안보 위협에 맞서는 대신 감옥에서 벽지와 변기와 씨름하고 있고, 육군참모총장은 방산비리와 병영부조리가 아닌, 동성애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국민은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만 하다.

미친 세상의 풍파는 『대학신문』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대학신문』 기사는 글쓴이와 편집장만 읽는다는, 교수님들 세대에서부터 내려오던 악질스러운 유머가 멋쩍게도 현재 『대학신문』은 학내 이슈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날카로운 분석, 흥미로운 기고, 따뜻한 인터뷰로 가득 채워져 삶에 위안을 주던 『대학신문』의 지면이 백지로 발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학내 구성원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편집권 수호와 언론 자유를 위한 기자단의 투쟁이 정의로운 결과를 거둘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미세먼지로 덮여 희뿌연 하늘이 요즘 정치의 풍경과 더할 나위 없이 부합하는 봄은 정치의 계절이라 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수업료가 크게 비싸지는 않기를 소망해 본다.

강성식
정치외교학부 석사과정·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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