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인의 한 사람으로서 4월 14일을 기념하는 국내의 목소리가 잠잠해 안타까운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게 됐다. 밸런타인데이도 아니고 화이트데이도 아니고 대체 4월 14일은 또 무슨 엉뚱한 기념일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4월 14일은 바로 대한민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해 세계통상 무대에 진출한 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광복과 동시에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받고자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GATT 가입을 추진했다. 1950년에 이미 GATT 체약국단과 가입협상을 완료했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국내 비준에 실패해 가입이 좌절됐다. 이후 1963년 GATT 사무총장이 우리나라에 GATT 가입을 권유한다. 우리 정부는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정책의 일환으로 가입을 결정하고 1966년 9월부터 체약국단과 가입협상을 벌였다.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공식 정부로 인정치 않는 쿠바 대표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 5개월간의 신속한 가입 협상을 거쳐 우리나라는 1967년 4월 14일 GATT의 71번째 체약국으로 다자통상체제의 일원이 됐다. 전 세계가 놀란 무역 성장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GATT 가입의 의의는 우리나라가 단순히 국제사회에 한자리 차지했다는 것 이상이다. GATT는 관세인하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일례로 GATT 출범 직후 21.8%에 달하던 주요국 평균 관세율이 1995년에는 3.1%까지 인하됐다. 또 GATT는 최혜국 대우 원칙이라는 강력한 무역 원칙을 내세운다. 모든 회원국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므로 후발주자로서 관세양허 협상에 참여하지 못했던 우리나라도 기존 회원국들의 관세양허 혜택을 일괄적으로 받는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관세 인하 효과를 얻기 위해 70개의 양자협상을 진행해야 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GATT가 요술 방망이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GATT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1982년이 돼서야 GATT에 가입한 태국과 비교해보자. 1967년 태국의 1인당 GDP는 166달러로 우리보다 약 10달러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1981년 태국의 1인당 GDP는 720달러에 머문 반면 우리는 약 2천 달러까지 상승했다. 경제정책, 정치 환경 등도 고려해야겠지만 GATT 가입의 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준 국제기구에 불과했던 GATT는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국제무역질서를 관장하는 명실상부한 국제기구로 재편됐다. 상품 무역만을 담당하던 GATT에 비해 WTO는 농산물 무역, 서비스 무역, 지식재산권 규범을 포괄한다. 또 무역정책검토 제도와 분쟁해결양해 등이 신설돼 투명성과 법에 기반을 둔 무역 질서가 강화됐다. 위생 및 식물 위생, 기술무역장벽, 무역구제 조치에 관한 다자통상규범이 확립됐으며 정보기술협정, 정부조달협정 등 분야별 협정이 체결됐다.

GATT/WTO 체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세계통상의 체제가 ‘힘에 기반을 둔 체제’에서 ‘법에 기반을 둔 체제’로 변모한 점이다. 강대국의 일방적 무역정책의 희생양이었던 개발도상국들이 분쟁해결 제도를 활용해 강대국을 상대로 자국의 통상 이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GATT 시절 우리나라가 당사자로 참여한 분쟁은 세 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1997년 ‘미국-컬러 TV사건’ 이후에는 우리 정부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분쟁해결절차를 활용했다. 그 결과 2016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분쟁해결절차를 세계에서 10번째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장승화 교수와 김현종 교수를 WTO 상소 기구 재판관으로 배출하는 등 세계통상체제에서 우리의 통상법 수호 의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우리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다자통상체제가 도하 라운드 타결 지연, 양자주의, 신보호무역주의의 여파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는 재앙”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외상 입은 다자통상체제에 소금을 뿌리고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우리에게는 일방적인 수입규제 조치를 부과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WTO 규범을 준수하는 척하며 뒤로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가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양자협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통상 난국을 헤쳐 나가기는 쉽지 않다. 경기장을 다자협상장으로 바꾼다면 승산은 있다. 우리 편을 확보해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고 통상분쟁 경험을 바탕으로 분쟁해결절차를 이용해 다자적 해결을 모색할 수도 있다. 다자통상체제의 유지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이유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는 GATT/WTO 체제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제는 우리의 통상이익을 위해서라도 다자통상체제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올해만이라도 4월 14일을 가트 데이로 기념하는 건 어떨까.

곽동철
국제학과 박사과정·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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